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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서평집

<괴수 8호>, 히비노 카프카에 대하여

by 최시헌

히비노 카프카는 어릴 적 괴수에게 마을이 파괴당해 소꿉친구 아시로 미나와 함께 방위대원이 되기로 결심하지만 시험에서 여러 반 탈락한 후 괴수의 사후처리를 담당하는 몬스터 스위퍼라는 업체에서 일하는 중이다. 반면 소꿉친구 아시로 미나는 히비노 카프카가 맥주를 마시며 보는 뉴스 화면에도 나올만큼 유명한 방위대원이 되어있었다. 그녀는 전무후무한 괴수 토벌기록을 갈아치우는 최고의 방위대원이었다.

그렇게 무기력한 일상을 보내던 카프카는 열정이 넘치는 청년인 이치카와 레노라는 신입을 만나게 된다. 그는 꿈을 포기한 카프카를 한심하게 보면서도 카프카를 불쌍히 여겨 그가 마지막으로 방위대원에 지원하도록 돕는다. 그러나 괴수에게 공격당하던 중에 소형 괴수가 몸 속으로 들어가면서 인간형 괴수로 변하는 능력을 가지게 되면서 대괴수이자 방위대원으로서의 삶을 살아가게 된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괴수를 조종하는 능력을 가진 안간형 괴수인 괴수 10호와 익룡계 괴수가 침공해온다. 토벌을 완료해가는 와중에 괴수 10호가 죽으면서 거대한 괴수 폭탄을 상공에서 떨어뜨리자 카프카는 자신이 괴수임이 밝혀짐에도 괴수로 변신해 폭발을 저지한다.

그는 곧 실험실로 끌려가 방위대 장관의 주도하에 그가 끝까지 인간으로서의 이성을 유지할 수 있는지를 보기 위해 한계까지 공격을 받는다. 결국 본능에 사로잡혀 괴수가 되려던 순간, 미나와의 약속을 떠올려 카프카는 자신의 심장인 핵을 움켜쥐게 되고 정상으로 돌아오면서 자신이 히비노 카프카라고 말한다.

그렇지만 괴수 9호가 새롭게 등장해 방위대 장관을 죽인 이후로 카프카도 언젠가는 인간으로 돌아오지 못할 수 있다는 말을 듣는다. 그럼에도 카프카는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훈련을 하여 9호와 결전을 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의식을 잃어 패배하려던 순간 소형괴수의 정체가 밝혀진다. 그것은 1657년에 도마뱀형 괴수에게 죽어나간 토벌자들의 원혼이 섞여 생긴 결과물이었다. 결국 그의 도움으로 카프카는 괴수 9호를 이기고 원혼들을 승천시키며 살아남게 된다.

이 만화에서 단연 도드라지는 모티프는 프란츠 카프카와 그의 작품 변신이다. 애초에 주인공의 이름이 카프카이고 그 주인공도 변신의 그레고리처럼 ‘변신'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레고리와 카프카의 변신은 같지 않다. 그레고리는 무력하고 추한 벌레로 변했지만 카프카는 역대 가장 장력한 괴수로 꼽히는 데다가 인간 사회에서 업적을 남겼다.

이렇게 상반되는 두 인물의 상황 속에서 그레고리의 희망은 짓밟히지만 카프카는 그 자신이 괴수들이 침공하는 세계의 마지막 희망이 된다. 이 만화의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 해석은 마치 메시아를 기다리는 듯한 발터 벤야민의 신학적 비평과 유사한 부분이 있다고 본다.

벤야민에 따르면 카프카가 살아가던 시대는 전통의 질서는 붕괴하는데 새로운 질서는 나타나지 않는 소외의 시대였고 카프카는 이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했다고 한다. 이러한 전세적 힘은 카프카에게 죄로 미래는 그에 대한 속죄와 형벌로 이어진다. 가령 알 수 없는 이유로 그레고리가 해충으로 변하듯이 망각된 죄에 대해 형벌을 받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형벌에 희망이 있다면 그것이 유예될 때 뿐이다. 벤야민은 카프카의 작품들에서 인간의 역사를 실패와 불행의 역사로 보면서도 아직 그것을 되돌릴 수 있다는 희망의 관점을 찾는다. 카프카는 세계의 규칙을 정해놓지 않았다. 그러한 공백은 실패한 세계에 새 페이지를 추가하게 해줄 예언적 가능성이 된다.

히비노 카프카도 처음에는 하찮은 존재였다. 하지만 인간의 적인 괴수로서의 변신이 외려 그를 메시아로 만들어버린다. 초반에는 벤야민의 관점과 별반 차이가 없지만 작품이 전개됨에 따라 서사의 순서가 전복되어 평범함이 비범함이 되고 터부가 구원이 된다.

결국 벤야민은 실패된 역사를 되살리려는 제한적인 역사 신학을 주장했지만 <괴수 8호>는 이를 한 번 더 뒤집어 실패된 역사를 구원 직전에 치루어야 할 수난으로 본다. (이는 소형괴수가 1657년에 희생된 토벌자들의 원혼이었다는 데에 해당한다.)

결국 <괴수 8호>의 엔딩은 단순한 소년만화의 혈기넘치는 해피엔딩만이 아니라 우리의 역사 철학에도 생각해볼만한 함의를 지닌다. 즉 과거는 실패가 아닌 수난이었을 뿐 우리는 새 시대의 문을 열고 이미 걸어가고 있음을 기억하며 그 종착지가 해피엔딩이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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