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몰입노트28화] 미진이를 통해 본 '승리의 함정'

교육 통찰

by 민이


“얘들아, 우리 유령의 집 컨셉으로 갈래?”

축제 준비가 한창인 학교. 친구들은 삼삼오오 모여 부스 아이디어를 짜내고, 중3 미진이는 기말고사가 끝나자마자 축제 준비에 정신이 없다.


이번엔 학교 괴담 콘셉트다.

3층 과학실에서 무언가 움직이고, 사라진 선배가 아직도 교실을 떠돌고, 방송실에서는 정체 모를 목소리가 울린다는 설정. 조명은 최소화하고, 입구에는 “주의: 심장이 약한 학생은 입장 금지”라는 팻말.

분장한 친구가 갑자기 튀어나와 무표정으로 문을 쾅 닫으면, 그 자리에서 기절할 정도로 놀라겠지.


최근 중학교 축제는 예전과 정말 다르다.

1990~2000년대 기준으로 ‘부스 문화’는 대학생들의 전유물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지금은 학생 자치활동을 중시하면서 중학생도 직접 기획하는 부스 축제가 기본 옵션이 됐다.

예전처럼 공연만 하고 끝나는 게 아니라, 학생들이 스스로 만들고 운영하는, 체험 중심의 축제로 완전히 바뀐 것이다.


그런데 들뜬 미진이를 바라보는 엄마의 표정은 복잡하다.

고등학교 진학을 앞두고 진로 고민이 깊어져야 할 시기인데, 축제에만 마음이 가 있는 것 같아서다.


@ 자율학점제 시대, 진로 고민은 더 빨라졌다


요즘 교육에서 가장 큰 변화는 단연 고교 자율학점제다.

대학처럼 고등학생도 자신의 진로와 흥미에 따라 과목을 선택하고,

총 192학점 이상을 이수하면 졸업하는 시스템이다.


문·이과 구분이 사라지고, 학생 개개인이 서로 다른 시간표로 수업을 듣는 시대.

고1 때는 공통과목을 배우고, 고1 겨울부터 고2 교육과정을 신청한다.


대입에서도 ‘어떤 과목을 선택했는가’가 중요한 평가 요소가 되다 보니,

진로 고민 시점이 ‘대학 진학 → 고교 진학’으로 앞당겨진 셈이다.


사실 미진이도 엄마의 고민을 모르는 건 아니다.

중2까지는 전 과목 95점 이상을 받았던 학생이니, 자신감이 있었고 실제로 잘해왔다.

하지만 중3이 되면서 성적이 흔들리고, 고등 선행을 시작해야 할 시점인데도 그녀는 잠시 멈춰 서 있다.


@ 미진이가 꼭 알아야 할 개념: ‘승리의 함정’


나는 이 시점에서 미진이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바로 ‘승리의 함정(Victory Trap)’, 혹은 ‘승리 후유증’이라는 개념이다.


나폴레옹은 수많은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며 자신을 완전히 믿게 되었다.

“이번에도 된다”는 착각은 전략을 바꾸지 못하게 만들고, 결국 러시아에서 큰 패배를 맞았다.


많이 이기면 인간의 뇌는 착각한다.


“나는 무조건 옳다.”


“이번에도 또 된다.”


“전략을 바꿀 필요 없지.”


자기 판단을 과대평가하고, 실수를 못 보고, 조언은 불편하게 느껴지고,

“내가 더 잘 알아”라는 자동 모드가 켜진다.


문제는 바로 여기다.

기존 방식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 순간에도 계속 밀어붙인다는 것.


나폴레옹의 실패는 결국 거만함에서 비롯됐다.

자기 과신, 과한 확장, 전략 수정 실패.

학습에서도 똑같다.


성적이 한 번 잘 나오면

“나 영어 좀 한다”,

“이번에도 되겠지”

이런 생각이 은근히 올라온다. 그게 진짜 위험하다.


성적이 잘 나올수록 기본을 다시 확인하고,

겸손하게 약점을 바라보는 태도가 필요하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배움의 출발점은 ‘내가 아직 모르는 게 많다’는 인식에서 시작되니까.


@ 지금의 학생들은 시대가 바뀐 만큼 다른 방식으로 성장 중이다


지금 학생들은 예전처럼 양적인 공부만 하던 시대에 살지 않는다.

다양한 경험을 통해 진로를 탐색하고, 자기 강점을 찾으려는 흐름이 강하다.

축제 준비도, 동아리 활동도 모두 그 과정 속 일부다.


물론 잠시 놀이동산에서 솜사탕을 맛보듯 즐기는 순간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결국 집에 돌아갈 시간을 스스로 인지하고,

자신의 위치를 체크하며 한 단계씩 성장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나는 미진이가 그걸 충분히 해낼 학생이라고 믿는다.

지금의 들뜸도, 잠시 멈춘 걸음도 모두 성장 과정 속 한 장면일 뿐이다.

그 안에는 여전히 크게 성장할 수 있는 에너지와 잠재력이 단단히 자리 잡고 있으니까.



keyword
작가의 이전글[몰입노트27화] 미진이가 발견한 성장의 본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