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적
되돌아간 하루, 그리고 부재의 목소리
“이곳은 시간을 잃은 자들이 찾아오는 공간입니다.
단, 모두 초대를 받아야만 오죠.
하지만 당신은… 스스로 찾아왔어요.”
현우는 조용히 눈을 감는다.
그리고 고개를 천천히 끄덕인다.
“... 나에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어쩌면, 이미 알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윤정윤은 찻잔을 내려놓는다.
그 작지만 맑은 소리가 카페 안에 이상하게 크게 울린다.
“당신은 지금, 선택의 기로에 서 있습니다.”
“이곳에서는 하루를 대가로 과거를 바꿀 수 있습니다.
하루를 포기하면, 당신은 과거의 어느 순간으로 돌아갈 수 있죠.”
“하지만 신중해야 합니다.
지워진 하루는 절대 돌아오지 않습니다.
그 하루가 당신의 마지막이 될 수도 있으니까요.”
“…그 하루를 바꾸면…
난 다시 살 수 있는 겁니까?”
윤정윤은 고개를 천천히 저었다.
“삶은 거래의 결과가 아니라,
선택의 결과일 뿐이에요.”
“눈을 감고,
당신이 되돌리고 싶은 과거를 떠올리세요.
지금부터는… 바꿀 수 없습니다.”
“당신의 삶은,
지금부터 다시 시작됩니다.”
어둠 속.
깜빡이는 불빛.
멀리서 자동차 경적.
누군가의 다급한 외침.
현우는 숨을 헐떡이며 눈을 뜬다.
“여긴…?”
탁한 공기, 좁은 사무실.
창에는 먼지가 뿌옇게 내려앉았고,
달력에는 굵은 글씨로 적혀 있다.
[2005년 4월 16일]
그날이었다.
자신이 처음으로 모든 것을 배신하고,
욕망을 택했던 날.
그가 지워버린 하루가
다시 그의 품으로 돌아온 것이다.
전화벨이 울린다.
익숙한 목소리.
도진이었다.
“현우야, 놀라지 마!
우리 투자자 확정됐어!
오늘 미팅만 잘하면 우리, 정말 끝이야.
현우야, 아자! 아자!”
“이제 당당하게 우리 이름 걸고,
멋지게 살아보자, 알지?
우리가 얼마나 이 투자설명에 목숨 걸었는지…”
“현우야, 오늘이야.
미래산업 공동 대표, 강현우와 한도진.
둘도 없는 형제같은…!”
현우는 말없이 수화기를 움켜쥔다.
차오르는 숨, 온몸에 식은땀이 흐른다.
(속으로)
“이 목소리…
저 날, 마지막으로 들은 도진의 목소리였지.”
그날 이후,
도진은 사라졌다.
어디에도, 누구에게도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현우는 사업자금을 가지고 사라졌고,
그 대가로 도진은 삶 전체를 잃었다.
그날 이후—
강현우에게 ‘사람’은 단지 ‘도구’였다.
부모도, 아내도, 친구도.
돈을 위해서라면, 어떤 것이든 버릴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
그는 과거의 한복판에 다시 서 있다.
“도진… 도진…
지금 어디 있어… 내가 갈게.
주소 말해봐, 어서… 도진아!”
하지만 전화기는
뚜—뚜— 하는 소리만 남긴 채,
차갑게 끊어진다.
현우는 무너질 듯한 얼굴로
윤정윤을 찾는다.
“여긴…
제가 원하던 곳이 아니에요.
다시, 다른 기억 속으로 보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