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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페 에이드 Sep 25. 2021

[소설]이 이야기는 픽션입니다 (16)

비겁맨 (by 윤덕원)

약속장소는 시내에 있는, 바보랑 자주가는 치킨집이었어요. 원래는  만난 , 지인 만나서 저녁까지 먹으려고 했는데, 그냥 만나서 커피나 한잔 하고 저녁은 취소했죠. 바보한테는  늦을거라고 말은 해놨지만, 그래도 택시타고 부랴부랴 약속장소로 갔죠. 도착하니 이미 바보랑 상협이가 메뉴 시켜놓고 이것저것 얘기 나누고 있더라구요. 피쳐  이상 비어있는거 보니 이미 두어잔 마셨나 보더라구요. 바보한텐  왔다, 상협이한텐 오랜만이네라고 인사를 건네고 자리에 앉았죠.  5초정도? 잠깐 어색한 침묵이 흘렀죠. 일단 한잔 받아라며 바보가  잔에 맥주를 따르지 않았으면  침묵이 계속 갔을 거예요.


나 걔랑 헤어질거 같아요. 서로 맥주잔을 부딧히고 한잔 마시니 상협이가 그렇게 말하더라구요. 아무 말도 안했어요. 크게 놀라지도 않았고요. 어느정도 추측은 했어요. 상협이랑 걔 사이가 그렇게 좋지 않았다는 걸요. 걔들이 사귀기 시작한 지 6개월 정도 됐나?. 연애를 시작하면서 단톡방에 말을 적게 남기던 걔였는데, 얼마 전부터 다시 말이 늘기 시작하더라구요. 그리고 쭈와 친구들이랑 어디 놀러 갈 계획을 많이 세우더라구요. 아, 이건 쭈한테 들었어요. 쭈가 처음에 남해쪽 놀러가려는데 괜찮은 카페 추천좀 해달라고 하더라구요. 그리고 그 다음주에 또 다른 지역 카페 물어봐서 요새 카페투어라도 하냐고 물어보니, 걔랑 친구들이랑 격주로 멀리 놀러다니기로 계획을 잡았다고 하더라구요. 뭐 걔가 이리저리 놀러 좀 다니고 싶다고 얘기했대요. 그리고 결정적으로 어느 순간부터 상협이 얘기가 나오지 않는 거예요. 그리고 연애관련 얘기도 나오지 않았구요. 원래 연애하는거 티 잘 안내는 걔였고, 단톡방에 내가 있으니 그래도 좀 연애얘기 피하나 싶었는데, 쭈나 다른 친구들한테도 연애 얘기 잘 안한다고 하더라구요. 어쩌다가 쭈랑 밥 먹으면서 상협이 얘기 했는데, 쭈가 그 얘길 해주더라구요. 그렇다고 헤어진건 아직 아니라고 얘기하는거 보니, 최소한 둘이 문제는 있겠구나 그렇게 추측만 하고 있었어요.


대충 감은 잡았다. 알고 있었다. 그런 얘기는 하지 않았어요. 그냥 왜 여기 날 불렀는지만 물어봤어요. 이유는 자기도 잘 모르겠대요. 그냥 답답하고 누구한테 하소연 하고 싶은데 떠오르는 사람이 없었대요. 그냥 그나마 걔랑 가까운 내가 생각났대요. 그래서 자기형, 즉 바보한테 부탁해서 나랑 자리 마련해 달라고 했대요. 그렇게 상협이의 이야기가 시작됐어요.


2년 전부터 걔를 좋아했대요. 태기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짝사랑으로 지냈다 하더라구요. 그러다 스터디 때문에 가깝게 지냈고, 결국 사귀기 시작했고요. 이 부분은 이미 쭈한테 들은 얘기니 대충 얘기하고 넘어갈께요. 상협이도 가슴앓이 많이 했으니 처음엔 되게 좋았대요. 걔도 진지하게 자기 만나려고 하니, 어떻게든 기쁘게 해주고 싶었나봐요. 그리고 동시에 걔가 자유분방하고 인맥도 넓은거 알고 있으니, 최대한 그런 부분은 인정해 줄려고 했나봐요. 그래서 솔직히 질투는 좀 있었지만, 그래도 다른 남자친구, 아 여기서 남자친구는 그냥 남자사람친구예요. 어쨌든 다른 남자들 만나는거 그냥 놔뒀대요. 거기에는 나도 포함되어 있었고요. 아까 얘기했죠? 바보랑 나, 그리고 얘들 커플이랑 술 마셨던거. 내가 걔를 좋아하는거 알지만, 걔가 나를 아는 선배로 지내고 싶어했기에 그래서 일부러 자리 만든 거라 하더라구요. 아까도 얘기했지만, 직접 나를 보면서 스스로 마음을 다 잡고 싶었나봐요. 내 여자친구는 주변에 친한 사람 많지만, 그래도 남자친구는 나 하나 뿐이다. 내가 얘를 좋아하고 얘도 나를 위해 변하고 있다. 그렇게 생각하며 걔를 만났다 하더라구요. 하지만 그렇게 한 3달 정도 지내니, 점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하더라구요. 걔가 나만 바라보는 것까지 바라는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어느정도는 신경써 줬으면 했는데, 걔가 점점 자기한테 신경쓰지 않게 되었다 하더라구요. 서로 만나다가도 친구가 연락왔다고 먼저 가버리고, 데이트 약속 잡아놔도 교회 행사 갑자기 잡혔다고 친구들이 만나자고 해서 데이트 날짜 미뤄버리고... 자기 주변은 엄청 챙기는데, 정작 남자친구인 자기는 뒷전으로 밀고 있다는 느낌, 아니 남자친구가 과연 맞는지라는 생각이 들었대요. 그래도 초반에는 상협이도 걔한테 나도 좀 챙겨달라고 말하고, 걔도 그러겠다고 얘기하고 그랬는데, 그래도 나아지지 않았다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최근에 이것 때문에 다투게 되었고, 거의 헤어지는 상황까지 왔대요. 오늘도 이것 때문에 전화로 싸우고, 결국 걔한테 다시는 만나지 말자는 소리를 들었대요. 아마 공방에서 걔가 받은 전화가 이거였나봐요.


솔직히 말해서... 이거 내 두 번째 실수! 전에 소잃고 외양간 고친다고, 늦게 걔 찾아가서 좋아했다고 얘기한게 첫 번째 실수라면, 상협이 얘기 들으면서도 마음속으로 걔 편을 들었는게 두 번째 실수라고 생각해요. 역시나 얘기하기 부끄럽네요. 상협이도 나처럼 걔를 한참 좋아했고, 이제야 걔를 잡았는데 이렇게 헤어지는 상황까지 온게 안타깝다고 생각했지만... 난 그때 그렇게 생각했어요. 걔가 상협이가 생각하는거 이상으로 자유분방하고 사람 만나는 걸 좋아한다고... 걔가 사람 많이 만나는 건 이미 알고 있다면, 그냥 그대로 둬야된다고 생각했어요. 남자든 여자든 상관없이, 누구도 넘볼 수 없게 내가 걔한테 가장 좋은 사람으로 있으면 되는거 아니냐? 그렇게 생각했죠. 그리고... 그때 나도 술 좀 많이 마셨는지 조언이랍시고 이 얘기 그대로 상협이한테 해버렸죠. 걔가 그래도 너 때문에 화장같은 거도 배우고, 옷도 여성스러운거 찾고 그러던데... 어쨌든 너 신경쓰는 거잖아. 걔한테 누가 붙든 뭔 상관이냐? 걔가 그래도 이사람이 내 옆에 있다, 이 사람이 많은 사람들 중에 최고다. 그렇게 생각하게 만들면 되잖아... 라고 되도 안한 헛소리를 했죠... 지금 생각해도 부끄럽네요... 그런 얘기 따위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좀 있다 다시 얘기하겠지만 진짜 반성해요.

술 취해서 그랬을 꺼라 생각해요. 상협이도 내 헛소리를 어느정도 수긍하는 거 같았고, 자기가 좀 더 걔를 이해했어야 했나라는 생각이 들었대요. 그러다 상협이가 어떻게 해야할까라고 묻더군요. 너도 헤어질거 같다고만 얘기했고, 걔도 다시는 만나지 말자고만 했지, 헤어진 건 아니지 않느냐? 여자들 화나면 한번씩 만나지 말자 그런얘기 하잖아. 그러니 그냥 화나서 그런걸 수도 있으니 한번 찾아가서 얘기 해 보는게 낫지 않겠냐? 대충 그런식으로 얘기했나봐요. 사랑의 라이벌로서, 선배로서 하는 조언 그런건 아니었어요. 속으로는 헤어지길 바란다? 그런것도 아니었어요. 그냥 술 취해서 별 생각없이 그런식으로 얘기한 거 같아요. 진짜 뭔 상각으로 그런 얘길 했는지 모르겠네요. 지금이라도 핑계를 대자면... 음... 그냥 걔랑 상협이가 잘 지내는 모습 보는게 보기 좋아서? 그래서 그런 소릴 했다고 대충 생각하고 넘어가죠.


그렇게 불편하면서도 속시원했던 삼자대면을 끝냈어요. 물론 바보는 내 부른거 말고 크게 한건 없지만요. 그렇게 다음날이 되었고, 저녁에 기차타고 경기도로 올라가고 있는데 문자가 한통 오더라구요. 상협이가 보냈더라구요.


오늘 찾아갔는데, 결국 헤어졌어요. 난 더 이상 걔를 어떻게 만나야할지 모르겠어요. 만약 아직 걔한테 마음 있다면, 형이 잘 되기를 바랄께요. 대충 이런 내용의 문자였어요. 씁쓸하더라구요. 상협이도 걔 참 좋아했는데... 한참을 바라보다 간신히 만나던데...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남자친구랑 헤어져서 기쁘기는커녕, 그냥 상협이가 안타까워 괜히 씁쓸하더라구요. 괜히 나까지 우울한 기분이 들더라구요. 나중에  한번 술 사줘야겠다. 그런 생각밖에 안들었어요.

상협이랑 걔, 그리고 내 이야기는 그렇게 끝나게 되었지만... 그래도 어쨌든... 결과적으로 내가 잃어버린, 아니 놓쳐버린... 평생 돌아오지 못할 것이라 생각한 기회가 다시한번 찾아오게 된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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