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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페 에이드 Sep 22. 2021

[소설]이 이야기는 픽션입니다 (15)

다시 나란히 (by 옐로우 벤치)

 사건, 그러니까 걔가 상협이랑 사귀고 나는 머리에  떨어지고여튼  이후 4개월 정도 지났을 , 걔가 직장을 그만두고 고향으로 돌아갔어요. 계약만료날이 되었는데, 그냥 재계약을 안했대요. 급여도 적고 6일인게 많이 부담됐나봐요. 원래 대학교랑 직장 때문에 대구에서 혼자 살고 있었는데, 이번기회에  쉬기도 하고, 공부도 다시 시작할까 싶어서 고향으로 돌아갔다 하더라구요. 나야 걔량 멀어지는 중이었고 차라리  됐다 생각하며 퇴사기념 더치커피를 마지막으로  이상 커피를 주지 않기로 결심했어요. 그래서 더치툴 깨졌다고, 더이상 더치커피 못만든다고 거짓말을 했고요. 참고로 마지막 커피는 쭈한테 전달해 달라고 부탁했어요.


그 와중에 걔가 내 커피 먹고 싶다고 연락이 온 거죠. 내 커피 너무 땡긴다고, 혹시 한병 받을 수 있냐고, 언제 대구 내려오냐고, 대구 한번 내려가야 되는데 선배 내려오는 날 맞추겠다고… 나름 독하게 마음 먹었었어요. 멀어지자, 그냥 나랑 걔는 인연이 아니었나보다, 그냥 자연스럽게 멀어지다가 서로 연락 끊자… 라고 마음 먹은건 단지 ‘나름’ 이었나봐요. 내 커피가 먹고 싶고, 대구에서 날짜 맞춰서 만나자는 그 말에… 언제 그런 다짐을 했냐는 듯이 기분이 들떠서 당장 이번주 내려간다고 해버렸죠. 마침 더치툴도 새로 샀다고 얘기했고요. 바보같죠? 내가 생각해도 바보 맞았어요. 만날 수 있다는 것 하나에 독하게 굳힌 마음을 내 스스로 무너뜨렸으니까요.

어쨌든 그렇게 토요일이 되었고, 걔를 만났죠. 그냥 내 커피 좋아하니까 갖다주는 거다. 그냥 선후배 사이로 만나는 거다. 이렇게 속으로 몇번이고 다짐했지만, 역시나 막상 얼굴을 보니 그딴 다짐 했던가?라는 상태가 된거죠. 직접 얼굴 보는건 두달만인가? 전에 상협이랑 같이 본 뒤로 한번인가 정도밖에 얼굴 안보고, 나머지는 톡으로만 연락했으니까요. 어쨌든 오랜만에 걔를 봤지만 달라진 건 없더라구요. 운동화에 청바지, 그리고 후드티에 포니테일, 예전 모습 그대로였죠. 아니, 상협이랑 만날땐 조금 꾸미기도 했으니 어찌보면 상협이 만나기 전으로 돌아왔다고 하는게 맞을라나? 전혀 어색함 없는 걔 인사에 나도 웃으면서 반갑게 답했고, 같이 걸으면서 요즘 어떻게 지내니, 일은 어떻니, 쭈랑 놀러 잘 갔다왔느니, 이것저것 잡다구리한 얘기를 나누며 같이 걸었어요. 물론 상협이 얘긴 빼고요. 커피를 건네 줄 때, 이거 진짜 그리웠다며 기뻐하는 걔 얼굴을 보니… 음… 뭐라 설명해야할까? 그냥 좋더라구요.


걔 말로는 커피도 받고 싶었고, 그거 말고도 대구사는 친구한테 빌린 책 돌려줘야 되서 대구 한번 내려왔어야 했대요. 그래서 나도 이번주 내려오겠다… 뭐 걔땜에 급하게 내려오기로 정했지만요. 여튼 그래서 친구한테도 오늘 책 돌려주기로 약속했대요. 근데 친구가 토요일에도 일하다보니 한 5시에 퇴근해서 그때까지 할일이 없다고, 낮에 게임이나 하면서 시간때울까 그러더라구요. 이 기회를 놓칠 수 없잖아요? 그래서 말했죠.


나 커피 볶으러 가야 되는데, 공방 같이 안갈래?


전에 나한테 커피 어디서 볶냐고 물어봤을때, 공방 따로 있어서 거기서 볶는다고 했는데 기억나세요? 다시 얘기드리면, 커피동아리 사람들이 공동으로 쓰는 커피공방이 있어요. 에스프레소 머신하고 각종 추출도구, 그리고 커피 볶는 로스터기도 있고요. 아무래도 커피 볶으면 연기도 많이 나고, 재 날리는 거 땜에 이래저래 집에서 하긴 어려웠거든요. 그래서 월 회비 내고 공방에서 커피 볶았어요. 예전에 걔한테 공방얘기를 하니 흥미를 가지면서 꼭 한번 가보고 싶다고 했었거든요. 그래서 언젠가 꼭 한번 데리고 가겠다고 약속했는데, 그 후에 상협이랑 사귀게 되서 물거품이 되었던거죠. 어쨌든 마침 걔 만난 후 커피 볶으러 갈 계획이었는데, 걔가 친구 기다려야 된단 얘기 듣자마자 물거품이 된 약속이 떠오르더라구요. 걔도 공방 계속 가고 싶어했으니 바로 OK 하더라구요.

솔직히 그렇게 멋진 공방은 아니었지만, 걔는 눈을 반짝이며 공방을 둘러보더라구요. 아까도 말했듯 걔는 자기가 모르는 분야에 대한 호기심이 왕성했거든요. 에스프레소 머신이야 다른 커피가게에서 본다마는, 프렌치프레스나 모카포트, 이브릭 같은 평소에는 보기 힘든 추출기구가 신기했나 봐요. 마치 새로운 장난감을 보는 어린아이 같달까? 이것저것 설명하면서 나도 덕후본능이 발동해서 괜히 신났고, 그걸 또 얘가 재밌게 들어주니 더 신났죠. 특히 로스터기로 직접 커피 볶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말로만 듣던 로스팅 장면을 직접 본다고 한시도 눈을 떼지 않더라구요. 걔가 보고 있어 긴장한 것도 있고, 걔가 보고 있으니 더 멋있게 보이고 싶어 그날은 특히 신경써서 커피를 볶았네요. 괜히 원두 상태 자주 확인하고, 불도 온도랑 시간 맞춰서 천천히 조절하고, 괜히 이것저것 체크해가며 커피 볶았어요. 솔직히 원래는 그냥 불켜놓고 시간재면서 휴대폰 게임도 돌리면서 커피볶거든요. 아, 그래도 커피는 맛있게 볶을 수 있어요. 어쨌든 그렇게 볶은 커피를 바로 핸드드립으로 내려서 같이 먹었어요. 그날따라 특히 신경써서 볶아 그런지, 아니면 걔가 있어서 그런지 커피가 유난히 맛있더라구요. 걔도 가게꺼 보다 훨씬 맛있다고 기뻐했고요.


그렇게 커피볶는개 끝나고 뒷정리를 할때였죠. 걔한테 전화가 왔는데, 발신자를 확인하더니 표정이 어두워 지더라구요. 그리고 잠깐 전화좀 받고 온다고 얘기하고는 바깥으로 나갔어요. 그리고 공방청소가 끝나고 나서 걔가 돌아왔어요. 무슨 전화인지 궁금하긴 했지만 물어볼 수는 없었죠. 안 묻는게 당연한거고. 그리고 무슨 전화인지 대충 감 잡히는 부분도 있었으니까요. 그렇게 커피를 다 볶고나니 한 4시정도 되었어요. 친구한테 가는데 대충 40분 정도 걸리니 짧은 만남을 끝낼때가 되었죠. 버스정류장까지 배웅해주고, 걔가 탄 버스가 사라질때까지 계속 바라보았어요. 같이 있었던 시간은 짧았지만, 오랜만에 느껴보는 행복한 시간이었죠. 구름을 탄 듯 붕뜬 내 기분을 현실로 끌어내려준 건 바보의 전화였어요. 주머니에서 진동하는 휴대폰을 귀에 가져가니 수화기 너머에서 바보가 얘기하더라구요.


오늘 저녁에 상협이랑 술 먹을껀데, 너도 꼭 좀 와달라고. 아니, 웬만하면 무조건 나오라고 하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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