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해 이야기 (by 박문치 feat. 강원우 of 일로와이로)
아직은 때가 아닐 뿐, 너무 급하게 다가갈 필요도 없고, 그렇다고 옛날처럼 우물쭈물 하지는 말고, 그냥 조금씩 조금씩 걔랑 가까워지자 그렇게 생각했죠. 그렇게 다시, 차였지만 어색하지는 않게, 친한 선후배 사이로 계속 지냈죠. 여튼 그 이후로도 나름 잘 만나면서 잘 놀았던 거 같아요.
그 이후 난 일을 그만두고 다시 대구로 내려왔어요. 계약기간이 만료되었거든요. 일반계약직이 아니라 행정조교처럼 들어와서 3년 넘게 계약직으로 일 할 수 있었는데, 결국 무기계약직으로 안넘겨주더라구요. 정도 많이 들어서 아쉬움도 많았지만, 이게 전화위복이라고 지금 직장인 K대학교 도서관에 정직원으로 취업할 수 있었던거죠. 내 직장이자 걔가 졸업한 학교, 걔랑 만날 수 있는 계기가 된 곳. K대학교 채용합격이 되었을때 기분이 묘하더라구요. 운명같은게 날 이끄나 해서요.
내 취업 이후 한달 뒤, 걔도 다시 대구로 내려왔어요. 아는 사람 추천 받아서 사립도서관에 취업이 된 거죠. 형식적이지만 걔 면접끝나고 잠깐 만났는데, 정장입고 구두신은거 그때 처음 봤어요. 본인은 이런거 역시 안어울린다고, 오히려 부끄럽다고 하며 싫어하던데, 내가 봤을땐 꽤 예뻤죠. 물론 내 눈에 콩깍지가 씌인 것도 있지만…
아… 놀이공원 간 적도 있네요. 안타깝게도 단 둘이 간 건 아니예요. 쭈랑 걔, 그래고 나 이렇게 셋이서 갔어요. 어느 날, 전국에서 제일 긴 롤러코스터 얘기하다가, 언젠가 셋이서 같이 타러가자고 했었거든요. 그런데 어쩌다보니 그 놀이공원 자유이용권 티켓이 생겨 놀러가게 됐죠. 둘이 가면 참 좋았지만, 어쨌든 전에 셋이가는걸로 얘기는 됐는지라… 자유이용권은 둘 주고 난 카드혜택으로 공짜 한번 가능하다고 얘기하고 카드긁었어요. 물론 거짓말. 안그러면 걔 성격에 자유이용권 안받고 자기가 돈 내겠다고 할꺼 알고 있었거든요. 어쨌든 그렇게 놀이공원에서 놀고… 아, 이 여편네들이 무서운거 잘 못탄다고 하더니, 전국에서 가장 길다는 롤러코스터를 몇번이나 타던지 원… 난 두번만 타도 멀미하겠던데…
그리고 그 해, 스노우보드를 배웠어요. 친구가 스노우보드 취미있는데, 그 친구가 스키장 가자고 꼬드기더라구요. 사나이라면 보드라는 말 한마디에 낚여 탔다가 뒈질뻔 했죠. 진짜 하루종일 구르면서 눈물이 다 나던데… 그래도 남자가 칼을 뽑았으면 무라도 썰어야지. 넘어지면서도 계속 타다보니 어느 새 안넘어지게 되었고, 어느 순간부터 설원을 달리게 되었죠. 눈을 가르며 속도를 느끼는 그 쾌감이란… 타보면 뭔 소린지 알꺼예요. 대신 한참 구를 건 각오해야돼요. 이런 스릴이라면 분명 걔도 좋아할꺼라 생각했는데, 그래서 보드 한번쯤 타러 안갈래라고 물어봤는데… 힘들거 같아서 싫다고 하더라구요. 그리고 의외로 뼈같은거 잘 부러져서, 왠지 넘어지면 크게 다칠거 같다고 하더라구요. 아쉽지만 어쩌겠어요. 본인이 그렇게 얘기하는데…
본인 말로는 망작 컬렉터라나? 걔가 희한한 취미가 있는데, 망한 영화 보는게 취미래요. 얼마나 망했는지 궁금해서 봤다가 후회하고, 그리고 자기만 당할 수 없어서 남한테도 봐라고 꼬드긴다나 뭐라나? 덕분에 나도 그… 제목 갑자기 생각 안난다. 그 영화 알죠? 아빠 일어나!라고 울면서 애가 외치는 영화. 걔가 꼭 한번 봐라고 해서 나도 VOD 결제해서 봤는데, 아빠가 일어나는게 아니라, 내가 TV앞에서 일어나고 싶더라구요. 영화가 끝나고 눈물이 나려고 했는데, 내 2시간이 이렇게 어이없이 낭비됐다는 사실이 너무 슬프더라구요. 아무튼 망한 영화 찾아보는거 말고도 걔가 보는 영화가 웬만하면 망하던데, 그 로봇 나와서 괴수랑 싸우는 영화. 1편이 대박났고 걔도 집에서 그 영화 보고 반해서 2편 나오자마자 같이 영화관 가서 봤거든요. 근데 영화 다 보고 나올 때, 둘이서 아무말도 안했어요. 그리고 그 2편이 나중에 거하게 말아먹은 후속작 리스트에 당당하게 올라가 있더라구요. 여튼 영화관 갈때까진 좋았는데… 영화만 좋았더라도…
뭐 그런식으로 걔랑 잘 아는 사이로, 계속 얘기하지만 좀 친한 선후배 사이로 계속 지냈어요. 그렇게 1년을 지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