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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페 에이드 Oct 12. 2021

[소설] 이 이야기는 픽션입니다(19)

All for you (by 쿨)

그냥 그렇게 지낸 지 1년, 이제는 고백을 해야겠다는 마음을 먹었죠. 정확히 얘기하면 위기감을 느꼈다고 해야하나? 어쩌다 간만에 쭈랑 둘이서 점심을 먹게 됐는데, 쭈가 얘길 해주더라구요. 지난주에 걔가 상협 선배를 만났다고. 쭈의 대학 동아리 친구가 결혼을 하게 됐다고 하더라구요. 그리고 쭈와 상협이, 걔는 대학때 같은 동아리였어요. 다시 말해, 상협이와 걔의 대학 동아리 친구가 결혼을 한다고 할 수 있죠. 결혼식을 무시할 수도 없는게 결혼한다는 친구가 둘과 친했나봐요. 어쨌든 상협이와 걔는 여전히 어색한 사이다보니, 일단 그 어색함을 없애보려고 둘이 만났대요. 뭐, 그냥 만나서 안부만 묻고 밥만 먹었다고 하니까요. 서로 다시 결합하고 싶은 생각은 죽어도 없었다고 쭈가 얘기하더라구요. 쭈랑 헤어진 후, 바보한테 물어보니 바보도 그 일을 알고 있다고 하더라구요. 내가 괜히 신경쓸까봐 얘기는 안했대요. 그리고 얘기 안해도 된다고 생각한게, 상협이도 형식적으로 나갔고, 추호도 다시 만날 생각 없다고 못박았다고 하더라구요.


저도 솔직히 둘이 만났다고 걔들이 다시 만날 거라는 생각은 안했어요. 그리고 걔가 옛날 헤어진 남자친구들과 가끔 연락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거든요. 그럼 무슨 위기감이 들었냐? 그냥 상협이랑 걔가 만났다는 얘길 듣자마자 그때 일이 떠올랐는거예요. 걔한테 고백하지도 못하고 집근처만 몇날며칠 서성였던 그 때, 그렇게 어물쩡 거리다가 다른 남자와 먼저 사귀고, 닭쫓던 개 신세가 되었던 그 때... 문득 나 지금 뭐하나? 라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친한 선후배 사이로 만족하느냐? 그 때, 기차역에서 고백한지도 1년이 지났다. 걔가 가진 마음의 상처도 충분히 아물 시간이다. 그러니까 상협이와도 만날 수 있었겠지. 만약 아직도 상처를 갖고 있고, 날 받아주지 못한다면? 아니, 그냥 내가 마음에 안들어서 또 차인다면? 바보같은 생각 하지 말자. 이딴 생각만 계속 하다가 또 걔를 놓칠 것이냐? 아무것도 못하고 소중한 사람 놓치는 것 보다는 차라리 차이는게 낫지 않냐? 그날 밤 오만 생각을 떠울리며 잠자리를 뒤척였죠.


 이틀정도는 고민했지만, 예전과는 달리 금방 마음을 잡을  있었어요. 이번에야말로 확실하게 고백하자. 괜히 타이밍같은거 재지 말자. 그리고 만약 차이면... 그냥 끝내자. 그렇게 다짐했죠. 인생 삼세판이라고 하잖아요. 이번이 세번째 고백이니 이번에 차이면 진짜 그냥 끝이라고 생각했죠. , 첫번째 고백이야 소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으로 한거라 고백이라고 하긴 애매했지만... 여튼 그렇게 마음을 먹고 걔한테 연락했어요. 다행히도 시간이 된다고 하더라구요. 연락했을 때는 걔가 고향인 김천에  있었는데, 다음날 대구로 돌아간다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이런저런 핑계 되며 만날 구실을 만들었고, 결국 대구에 도착하면 만나서 점심 같이 먹기로 약속을 잡았죠.


5월 9일 월요일. 아직 날짜 기억하고 있네요. 걔가 어버이날 때문에 김천 올라갔었기 때문에 더 확실히 기억하고 있어요. 덤으로 월요일은 부서회의가 있어서 웬만하면 연차 못쓰는데, 팀장님한테 이번만 제발 봐달라고, 중요한 일 있다고, 만약 급한 일 생기면 저녁에라도 출근한다고 사정사정해서 간신히 연차를 쓸 수 있었죠. 이별하는 날도 아니고 고백하는 날인데, 비가 참 많이 내리더라구요. 한시간 정도 일찍 역에 도착해서 걔를 기다렸어요. 심심하지는 않았어요. 오히려 너무 머릿속이 복잡해서 시간이 잘 가더라구요. 걔가 고백을 받아주고, 걔가 나를 차고, 걔가 고백을 받아주고, 걔가 나를 차고... 머릿속에서 걔랑 사귀기 시작하거나, 내가 차이기를 수백번 반복재생되더라구요. 걔가 역에 보이고 서로 인사하고, 비 많이 온다고 우산은 챙겨왔냐고, 점심 어디 갈까 물어보고... 평소와 다름 없이 대화를 나누었지만, 속으로는 엄청 긴장하고 있었죠. 가슴은 계속 두근거렸는데, 걔가 그것까지 눈치챘는지는 모르겠네요.


점심은 돈까스 집으로 정했어요. 전에 친구들과 시내 나왔다가 돈까스 맛집을 찾았대요. 메뉴보단 장소가 중요했던 저는 그냥 오케이 했죠. 돈까스 집은 시내에서 약간 바깥쪽 구역, 그리고 지하에 있었죠. 조용했기 때문에 이야기 하긴 좋았어요. 서로 메뉴를 고르고, 최근 근황에 대해서 계속 얘기했죠. 도서관 얘기,  얘기, 게임하고 만화얘기. 대화는 나름 자연스럽게 나누었지만,  머릿속은 아니었죠. 머릿속엔 계속 고백, 고백, 고백할 타이밍만 생각하고 있었죠. 그러다 주문한 메뉴가 나왔죠. 메뉴를 받으면서 잠깐 대화를 멈춘  . 밥먹고 고백할까?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순간 이러다  고백 못하고 흐지부지 넘어간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죠. 타이밍? 오늘은 타이밍 따위 신경 안쓰기로 하지 않았냐? 그렇게 순간적으로  자신을 질책한 ,  한잔 마시고 컵을 내려놓는 걔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어요.


밥 먹기 전이라 혹시라도 체할까봐 그렇긴한데... 이제 나 받아줄 수 있나? 나랑 사귈래?


지금 생각하면 ... 아니 많이 거지같은 멘트이긴 하다마는, 고백에 그런게 어딨습니까? 그냥 냅다 지르는 거지. 그땐 나름 각오하고 밷은 말이었어요.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고, 걔가 무슨 대답을  것인가만 기다리며, 빳빳하게 굳은 채로 걔만 바라봤죠.  머릿속에는 걔가 그래요라는 말과 죄송해요라는 말을 번갈아가며 울렸죠.


 말을 들은 걔는 잠깐 멍한 표정을 지었어요. 그리고  컵에 물을 한잔  따라 마셨어요. 그리고 컵을 내리고  바라보았어요. 빙긋 웃으면서요. 그리고 대답해 줬어요.


선배, 담배 끊으면요.


말이 나오지 않아서, 그저 고개만 위아래로 끄덕였어요. 연신 응 응 이라고만 대답했어요. 그런 날 보면 걔는 계속 웃어줬어요. 난 반대로 흐르는 눈물 닦으면서 안우는 척을 했죠.


5년 가까이 걸렸어요. 걔 옆에 서기까지... 이제야 걔와 함께 걸어갈 수 있게 되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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