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연송 (by 윤종신)
담배 안 피게 생겼다는 말은 많이 듣긴 했습니다마는... 실제로도 담배 별로 안 좋아했고요. 나름 모범적으로 자라오다 보니 담배는 그냥 나쁘다고만 생각했죠. 군대 가기 전까지는 말이예요. 남자들 보면 대부분 군대에서 담배 배운다고 하잖아요. 저도 뭐 그 중 하나였어요. 단지 조금 다른 점이라면, 웬만하면 이등병이나 일병때 담배 배우는데, 전 말년때 배웠다는 거 정도? 말년이 되게 꼬였거든요. 행정병이었는데 후임이 안들어와서 하루에 한시간씩 자면서 군생활 하고 그랬어요. 수면부족으로 몰려오는 졸음을 쫓으려고 하다보니 담배를 물게 되었죠. 담배대신 커피마시면 안됐냐고요? 그땐 이미 카페인에 면역이라도 생겼는지, 커피로는 절대로 잠을 못 쫓더라구요.
그렇게 담배를 피기 시작할 때는 쉽게 끊을 수 있을 줄 알았어요. 군대 전역하면 바로 담배 끊어야지라고 생각했으니까요. 근데 그렇게 쉽게 끊을 수 있었으면, 괜히 신년에 사람들이 금연선언하고 3일만에 포기하고 그러진 않았겠죠. 전역하고 나서 이것만 피고 끊자, 이것만 피고 끊자 그러다가 저도 깨닫게 되었죠. 담배 이거 쉽게 못끊는 거라고... 나중에야 깨닫게 됐는데, 피도 그렇고 술도 그렇고 내가 뭐 하나에 맛들이면 쉽게 못 끊는 성격, 아니 체질이라고 해야하나? 여튼 쉽게 못 끊더라구요. 저도 매년 1월 1일 금연선언했다가 일주일만에 다시 담배물고, 술내기했다가 그냥 내가 술사주고 담배물고, 보조제까지 써봤는데 보조제 쓰면서 담배물고... 진짜 쉽게 못끊더라구요. 진짜 좋아서 피는게 아니라 못끊어서 피는 상황이 되더라구요.
그렇게 10년을 피운 담배를 그날 이후 완전히 끊었죠. 솔직히 말하면 걔랑 헤어지고 난 후, 3대 정도 남은 담배를 다 피우긴 했어요. 마지막 담배를 버리면서 이젠 진짜로 안녕이라 생각하며, 내일부터는 절대로 담배 피우지 않는다고 다짐했죠. 그렇게 끊기 힘들었던 담배, 좋아하는 사람이 걸리게 되니 어떻게든 끊게 되더라구요. 물론 보조제의 힘도 제법 빌렸어요. 진짜 금연껌 몇통씩 사놓고 담배 생각날때마다 그것만 씹었죠. 팀장한테도 담배 끊는다 선언하고, 일하다가 껌 씹고 있어도 좀 봐달라고 얘기했죠. 그리고 만나는 사람마다 내가 소문냈죠. 나 담배 끊었다고. 내 스스로 그렇게 소문내야 남의 눈 때문이라도 내가 담배 안 필수 있을꺼고 다른 사람들이 나한테 담배도 안 권할 테니까요. 덤으로 일하다가 껌 씹고 있는거 보여도 아~ 금연땜에 그러나보다라고 사람들이 생각할 수 있으니까요. 그렇게 몇달동안 껌만 씹으면서 지냈죠. 물론 이거 껌 씹으면 금단증상은 어느정도 해소되지만, 그렇다고 담배 피고 싶은 생각이 안 나는건 절대로 아니예요. 껌에 어느정도 익숙해지고, 힘든일 생기면 진짜 딱 한대만 물었으면 싶거든요. 그래서 금연 시작할때부터 다짐한 게 있어요. 이거 한대만 피면 걔랑은 끝이다. 앞으로 절대로 못 본다. 그렇게 한 다짐은 아무리 힘들고 흔들려도 내가 담배를 입에 물지 못하도록 꼭 붙들어줬죠. 나중에 깨닫게 되었지만 진심으로 한 다짐이란거... 이거 참 무섭더라구요. 사람을 지탱해 주기도 하지만, 사람을 붙들어매는 족쇄가 되기도 하더라구요. 그렇게 껌의 힘을 빌려서 금단증상도 이겨내고, 1년정도 지나니 담배를 피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더라구요. 물론 부작용으로 어떤 연예인 말마따나 금연껌을 못 끊어서 문제였지... 나중에는 학교 안에서도 저 쌤 금연껌 못끊어서 계속 껌씹고 있다고 소문났으니까요. 뭐 그래도 껌도 점점 줄여나가고, 나중에는 목캔디라는 대체제로 갈아타고, 그 목캔디도 나중에는 끊었으니까요. 한 목캔디만 3개월 정도는 먹었던거 같네요.
그만큼 걔를 참 좋아했고, 그만큼 걔한테 진심이었어요. 담배피는 사람은 잘 알꺼예요. 이거 끊는게 얼마나 어려운 것이라는 걸 말이예요. 목숨을 걸거나 그에 상응하는 사건이 없으면 쉽게 못끊어요. 저한테는 그랬어요. 걔한테 목숨... 목숨까진 좀 오버인거 같고, 걔는 내 모든것이었고, 인생 그 자체였어요. 그땐 말이예요.
그래서 힘들고, 겁먹고, 외롭고, 상처를 받아도... 담배만은 피울 수 없었어요. 그것마저 피웠다간 실낱같은 관계가 바로 끊어질 거라고 생각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