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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페 에이드 Apr 30. 2022

[소설]이 이야기는 픽션입니다 (27)

그대로 있어 주면 돼 (by 몽니)

저녁 퍼레이드를 구경하면서도 머릿속에는 그 생각 뿐이었어요. 난 얘를 왜 만나고 있는가?

뒷풀이로 치킨집에서 맥주 한잔 할때도 머릿속에는 그 생각 뿐이었어요. 얘는 왜 나를 만나고 있는가?

바보집에 가서 잠들기 전까지 머릿속에는 그 생각 뿐이었어요. 난 도대체 얘한테 뭔가?

여담인데 나는 바보랑 같이 자고, 걔는 바보 마누라랑 다른방에서 같이자고 그랬어요. 뭐... 이제껏 얘기 들어봤으면 핑크빛 따윈 없을거라고는 생각하겠지만요.


다음 날, 아침을 먹고 우리는 나왔어요. 우리가 돌아가기 전에 바보네 부부가 배웅도 할 겸 경북궁쪽 구경도 가자고 하더라구요. 버스를 타고 가는데 나랑 걔는 따로 앉았어요. 나는 옆자리를 비워뒀는데, 내 뒤에 앉더라구요. 피곤해서 조금만 더 자고 싶다나? 나는 내가 뭘 잘못했나라는 생각도 좀 했지만, 이내 그냥 생각하는걸 관뒀어요. 어차피 그때는 나도 좀 삐져있는 상태라서 굳이 토달고 싶지도, 그리고 걔랑 얘기도 하고 싶진 않았거거든요. 지금 생각하면 그때 바보네한테 좀 미안하긴 하더라구요. 우리를 보면서 난처해 하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었거든요. 뭐 나중에 그때 얘기 하긴 했었는데, 바보가 얘기하더라구요. 그때 진짜 우리 안 사귀는것 처럼 보였다고요. 뭐...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만 문제였을까 싶네요.


경북궁을 돌아다니고, 사진을 찍고... 그리고 별 일은 없었어요. 그렇게 한두시간 걸어다녔지만 딱히 재미있는 일은 없었죠. 나도 별 말은 안했고, 그때 걔도 피곤했는지 연신 하품을 하면서 조용했어요. 결국 경북궁 한바퀴를 돌고 바로 버스터미널로 갔어요. 점심을 간단히 먹고 티켓을 끊어서, 버스에 올랐죠. 바보네 부부가 우릴 정스럽게 봤지만, 그땐 그렇게 신경쓰이지 않았어요. 지정석이 아니라서 제가 중간쯤 자리빈 곳 창가에 앉았어요. 역시나 걔는 제 뒤에 앉더라구요. 내 옆에 자리가 비었는데도. 역시나 잠 부족하다고 좀 자겠다고 하더라구요. 진짜 피곤한건지, 아니면 내 옆자리가 싫었는지 그건 아직도 모르겠어요. 그리고 그땐 그런것도 신경 안썼고요.


실은 어제부터 생각했던 것... 그 생각이 그때까지도 머릿속을 맴돌고 있었죠. 바보네 부부가 어색한 우리를 위해 말을 계속 할때도, 경북궁을 돌아다니면 둘 사진을 찍어줄때도, 점심을 먹을때도 전 머릿속에 나랑 걔에 대한 생각밖에 안했어요. 그리고 버스가 출발할 때 한가지 깨달은 것이 있었죠.


난 아직 얘 입에서 내가 '남자친구'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난 아직 얘 입에서 우리가 '사귄다'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잠깐 뒤를 돌아보니 걔는 이미 잠들었더라구요/ 나는 얘를 여자친구로 생각하지만 얘는 과연 그런가? 그때의 고백은 나의 착각이었을까? 설마 나 혼자 사귄다고 착각하고 있는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했어요. 혼란스러운 머릿속을 어쩌지도 못하고 그냥 창문만을 바라보았죠.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요? 어느 순간 저도 잠들었어요.


과연 내가 얘랑 헤어질 수 있을까?


잠들기 전 마지막으로 한 생각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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