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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명록 May 30. 2023

이중적 삶에 대한 고백

2021년 5월의 어느날

지난 8년의 삶을 고백한다. 아침에 길을 나서면서 퇴근할 때까지 나는 숨을 쉬지 않는다. 정확하게 나의 일상에는 숨이 없다. 퇴근이라는 의식과 안도감은 하루동안 참았던 숨을 급하게나마 내쉴 수 있는 요인이다. 자다가 불현듯 깬 것처럼 아슬아슬한 호흡의 주기는 안정을 찾고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간다.

숨을 쉬지 않겠다는 내면의 암시와 집착, 그리고 숨을 쉬면 안 된다는 강박으로 꽉 찬 주먹이 서서히 기지개를 켠다. 터널처럼 어둡고 적막한 나의 동굴로 돌아와 천천히 숨을 들이마신다. 다시금 휴- 하고 내쉬며 하루동안 비어있던 나의 공간을 채워본다.


지난 8년간의 이중생활은 얼핏 알아채지 못할 만큼 아주 완벽했다. 아니 완벽하게 숨겨온 줄로만 알았다. 비록 숨은 존재하지 않고 피가 통하지 않아 하얗게 질린 얼굴로 매일 동료와 마주 보고 웃고 떠들지만 어느 누구도 나에게 숨이 없다는 사실을 알아채진 못했다. 나는 지난 8년간 이 사실을 숨겼다는 것에 은근한 자부심을 느끼며 일할 수 있었다. 마치 그 누구도 해내지 못한 일을 내가 해낸 것 같은 진한 성취감 마저 느낄 수 있었다.

연이은 출장을 다녀온 날이었다. 지나치게 피곤한 채로 핏기를 잃은 얼굴의 낯은 해가 뜨면서 그늘이 밝아지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드러났다. 눈치가 빠른 상사는 물론 사실은 모른 채로 피곤해 보이니 내일은 쉬라는 의도를 알 수 없는 배려를 해주었다. 덕분에 하루 시간을 벌었다는 생각과 동시에 주말까지 적어도 3일간은 숨과 함께 평범한 장애물도 없는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설렘으로 퇴근을 했다.


그러나 그때부터 일은 이상하게 흘러가기 시작했다. 매일처럼 퇴근을 하면서 숨을 급하게 내쉬다가 아주 천천히 숨의 공간을 마련할 준비를 하던 내 몸은 급격하게 굳어졌다. 옅은 어둠에 적당히 어질러진 나의 동굴에 들어와서도 나는 적응하지 못하고 숨을 쉴 수 없었다. 머릿속으로 숨에 대한 집착은 강해지고 얼마간은 고요 속에서 기다려보기로 했다. 시간이 필요한지도 모른다고 속으로 되뇌고 청소를 하는 등 다른 것에 집중하는 척을 한다. 그러면서도 계속 숨을 쉬고 있는지 아닌지에 신경이 바짝 곤두서 있다.

한동안은 여전히 숨이 돌아오지 않았다. 일상 루틴과 같았던 몸의 기억이 한순간 바뀐 것일까. 어디서부터 잘못 끼워진 것인지 머릿속이 뒤숭숭하고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오늘 내쉬어야 할 숨을 해내지 않으면 숨의 공간이 텅 빈 상태로 출근을 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일터와 내 공간의 경계가 흐려져 혼란이 생길 수도 있다. 숨의 공간에서 장면 전환이 언제 어떻게 이뤄질지 예측할 수 없는 통제 불능의 상태가 올 수도 있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히기 시작했다.


지난 8년간 나의 자아는 지배자(간수)의 철저한 통제와 관리 속에서 하루도 빠짐없이 루틴을 유지했다. 사회에서 숨을 쉬지 않고 나의 공간으로 돌아와서는 숨을 내쉬는 규칙을 정확하게 적용하고 시키는 대로 일정대로 몸을 움직였다. 그렇게 유배된 나의 자아는 엄격한 간수의 감시로 유지되고 운영되는 시스템이었다. 그런 완벽한 시스템이 흔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어떤 날은 숨을 헐떡이는 나를 보며 스스로 놀란 나머지 아침 회의 중 급하게 자리를 벗어나기도 하고, 밀린 업무를 처리하다 말고 화장실에 바닥에 주저앉아 한동안 벽에 기댄 채 회오리가 지나가기만을 기다려야 했다. 나는 갑자기 이 평화로운 질서에 위기가 왔다는 것을 직감했다. 이대로는 나의 실체, 나의 정체가 발각될 것이라는 두려움과 동시에 일 잘하는 사람이라는 어렵게 쌓아 올린 평판이 모래성처럼 파도에 쓸려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이라는 불안에 시달렸다. 시키는 일을 제때 하지 못하거나 상사가 지시한 일을 잊어버려 전달하지 않는 등 평소와 다르게 놓치고 어딘가 자꾸 어긋나기 시작했다. 나도 나를 컨트롤하지 못했고, 누구도 이런 나를 이해하지 못했다.


보다 못한 동료 중 한 명은 조심스레 나에게 시간을 청했다. 요즘 무슨 일이 있느냐 힘든 일이 있으면 도와주마고 친절한 얼굴로 물어왔다. 불편한 관심에도 나는 평정심을 유지한 채 최대한 느긋하게 말했다. “집에 일이 좀 있어서요..” 동료들은 무슨 일이냐며 진심으로 걱정해 주는 모양이었다. 나는  기대에 부응해 저들이 물고 뜯을 무언가를 꺼내놓아야만 했다. “부모님이 헤어지기로 하셔서 여러 사정이 좋지 않네요”라고 마지못해 말했다. 그리고 솔직하게 털어놓는 것처럼 슬픈 기색으로 보이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그들은 얼마간 나를 안타깝게 여기며 위로해 주었고 또 얼마간은 조용했다.

그러나 나는 좀처럼 안정을 찾기가 어려웠고, 불안과 공포로 긴장이 수축한 상태를 유지하면서 몸은 점점 야위어갔다. 무리한 탓은 아닌지 오랜 기간의 습관이 몸의 다른 기능을 못쓰게 만든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호흡을 흔들고 있는 것은 무언가 이상 신호이다. 원인을 찾는 사이에도 호흡과 무호흡 사이 경계는 더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동안 내가 지켜온 보통의 삶이 부서지고 있다.


이번 일을 계기로 지난 삶에 대해 되돌아본다. 그러던 와중에 불안에 일정한 패턴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사실 나는 숨이 없다는 것도 모르고 있었다. 정확하게 말하면 숨이 왜 필요한지 몰랐던 것 같다. 애초에 내게는 숨이 없었기에 존재의 필요도 부재의 고통도 잊고 있었던 것이다. 호흡의 시작과 끝, 간격의 주기가 타인과는 다른 것이 아닐까. 어느샌가 나는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숨을 쉬고 있지 않았고 그렇게 밖엔 말을 할 수가 없다. 그렇게 오랜 습관과 강박적 사고는 콘크리트처럼 굳어져 쉽게 변형되지 않았다.


사람은 무언가 잃고 나서야 그 의미를 깨닫는다. 어딘가 아픈 후에야 건강을 돌보고, 가까운 사람이 떠나고 나면 소중함을 깨닫는 식이다. 나 역시 인생의 전부라 여겼던 직장을 나오고 나서야 나의 존재적 가치는 절실하고, 희미한 삶의 목적은 비로소 뚜렷해지기 시작했다. 우울증과 공황장애로 소모된 이중적 삶을 의식하고 나니 일과 삶을 분리할 수 있게 되었고 그제서야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이 보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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