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투심 때문에요.”
갤러리를 운영하는 뉴요커를 만났다. 그는 꽤 성공한 듯 보였고, 꽤 부유한 듯 보였다. 그가 한참을 자신의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묻는다. “요나는 왜 뉴욕에 왔어요?” 나는 이유 없이 뉴욕에 왔기에 어려운 질문이라고 대답했다. 내가 왜 뉴욕에 왔지, 왜 오고 싶어 했던가 곰곰이 생각하다가 문득 그 계기가 생각난다.
최근 주변에서 해외로 진학하는 친구들을 보고선 괜스레 부러웠다. 그런데 계속 보게 되니 부러움은 어느새 질투로 변해 있었다. 내가 해외에서 미술을 공부했다면 어땠을까, 해외에서 일을 했다면 어땠을까, 해외에 살고 있다면 어땠을까. 만약에, 만약에, 만약에 하던 생각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 불현듯 뉴욕으로 가야겠다는 확고한 신념에 빠져든다.
불구덩이라도 그 길을 가야만 직성이 풀리는 신념에 기름을 부으리라. 그 끝이 어딘지, 어떤 식으로든 결론이 나리라. 한번 가보고 살만한 곳인가 아닌가 보자는 생각도 있었다. 나는 난생처음 보는 사람에게 나를 말하기 시작했다. 질투심으로 물꼬를 튼 나의 이야기는 두 손을 붙잡아도 삐죽 대는 듯이 마구잡이로 흘러갔다.
한참을 듣던 그는 또 묻는다. “요나의 삶을 살아가는데 핵심적인 동기가 뭐예요?” 나는 답한다. “복수심이요.”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비교적 쉽게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나의 생을 걸고 복수심은 내 삶에 존재하는 유일한 동력이다. 그 이유도, 대상도 특정할 수는 없다. 다만 결과로 인정받기 위해 살았던 지난 삶이 그것을 증명할 뿐이다.
언젠가부터 항상 악에 받쳐 있었다. 그것이 원래 나인지, 변질된 나인지는 모른다. 한 순간도 피할 수 없었던 시선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움이 없던 순간들, 아무것도 못하고 속절없이 가버린 시간들에 하소연할 틈도 없이 나는 복수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은 부족하고, 또 충분하지 않기에 포기하지 않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