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명록 Sep 26. 2023

투병인가 수용인가

아침부터 약을 먹는데 목 넘김이 불편하다. 먹기 싫다는 마음이 불쑥 올라온다. 기분이 가라앉고 우울해지는 데 있어 출근을 해야 하고 사업을 벌였다는 사실은 전혀 위로가 되지 않는다. 지금 내가 뭘 하고 있는 거지. 창 밖의 비는 한없이 나를 잠식해 간다.


병이란 싸우려 들면 한없이 나약해지는 나를 마주하고 받아들이면 편안해지는가 반면 희망은 사라진다. 주변에서는 소망을 가지라고 하지만 내가 낫는다는 것을 생각해 본 적이 있던가. 너무 오래 전의 기억이라 생각이 나질 않는다.


나는 병과 싸우고 싶지 않다. 그렇다고 받아들이는 것도 아니다. 그래야만 하니까 그래야 할 것 같아서 배고프면 밥을 먹고 잠이 들면 일어나야 하는 때가 있듯이 약을 먹고 남들과 같은 삶의 모양새를 갖추기 위해 출근을 한다.


투병인가 수용인가 하는 것은 시소처럼 매일 오르락내리락하는 현실 운동일지도 모른다. 어느 날엔 전투 의지에 불타올랐다가도 어느 날은 축 쳐진 몸과 마음을 내동댕이친다. 매일 흔들리던지 한쪽으로 기울던지 어쩌면 시소에서 내리지 못할 수도 있겠다.


이 영원한 난제 속에서 삶을 살아간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날들이 계속된다. 이직을 하고, 사업을 하는 삶의 새로운 변곡점에 매달려 생을 이어간다. 그것들이 나를 끌고 가는지도 모른다고 나는 생각한다.


정신과적으로 수용한다는 것은 포기하는 것이 아니다. 수용전념치료에서 보듯이 회피가 아닌 고통을 직면하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럴 때 상황을 좀 더 명확하게 직시하고 삶에서 진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


그러나 얼마나 많은 이들이 고통의 문턱에서 좌절하고 절망하는가. 오래도록 학습된 경험이 고통을 제대로 직면하거나 적극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게 한다. 고통의 감옥에 갇힌 채 자기만의 세상에서 내 고통이 제일 크다는 착각 속에 그저 살아간다.

매거진의 이전글 지하철이 위로가 되는 날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