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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비스를 출시만 하면 종료는 누가 해

진짜 가치 있는 일이 뭘까

by 내가 지은 세상

회사에 서비스 종료(fade-out) 업무만 맡은 팀이 있다고 한다. 이전에는 서비스를 출시한 담당자가 종료까지도 책임을 졌으나, 서비스 출시만 해도 할 일이 너무 많아지다 보니 종료 업무만 따로 하는 팀이 생긴 것이다. 서비스를 출시하는 것도 아니고, 만들어진 서비스를 운영하는 것도 아니고, 필요가 다 한 것들 뒤처리만 하고 있으니 의욕이 안 날 것 같다는 분위기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조악하고 필요 없는 서비스와 제품을 만들어내어 사람들에게 물리적(환경오염), 정신적(인지적 공해) 피해를 주는 것보다 수명이 다하거나 필요 없어진 서비스를 잘 정리하는 게 더 가치 있는 일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대학교 때도 비슷한 생각을 했었다. 공업 디자인을 전공하고 제품 및 공간 디자인을 공부했는데, 새로운 제품을 디자인하기 위해 리서치를 하다 보면 이미 세상에 너무 많은 제품과 서비스가 있어서 나까지 거기에 뭘 더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구가, 사람들이 소화불량에 걸릴 것 같았다. 어설프게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느니, 세상의 필요 없는 것들을 정리하고 지우는 역할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나는 기술의 최전선에서 AI 서비스를 기획하는 일을 하고 있다. 내가 만들고 있는 서비스가 사람들에게 어떤 파장을 미칠 것인지 깊게 생각해 볼 여유 없이 내게 주어진 일들을 일정에 맞춰 해내려고 달리기만 한다. 어떻게 하면 사용자들을 유혹하여 더 많이 모을지, 어떻게 하면 사용자들이 우리 서비스에 빠져서 못 나가게 할지만 생각한다.

언젠가는 내가 오래 생각해 왔던 것처럼 세상의 제품과 서비스를 규제하고 가이드하는 역할을 하고 싶다. 이 분야에 몸담고 있다가 언젠가는 AI가 올바른 방향에서 제 역할을 할 수 있게 AI 윤리를 세우는 일을 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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