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과 함께 말을 넘긴다
저녁 무렵, 온 가족이 티비를 보며 같은 식탁에 앉아 식사를 했다. 가족이 모여있는 공간 속에는 침묵이 나체로 서 있는 듯했다. 이불 삼아 덮은 티비 소리로도 침묵의 민망함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긁어모아도 넷뿐인 우리 식구는 그저 서로의 존재 여부만 확인하듯 식사 시간을 보낸 지 오래였다. 어렸을 때는 애써 헛기침을 해서라도 소리를 뱉으려고, 그래서 식탁 한가운데 벌거벗은 저 침묵의 낯 붉은 얼굴을 가려주려고 노력했었다. 뽀얗고, 하이얀 내 작은 소리의 손은 침묵의 두 뺨을 어루만지며 그의 외로움을 위로했다. 그럼에도 남은 세 자리를 채우고 있는 이들은 신호가 끊긴 전화처럼 그저 뚝-뚝-뚝- 소리만을 내며, 밥그릇에 얼굴을 파묻으며, 나오려던 말을 밥으로 다시 목구멍 아래로 내리려는 것처럼 그저 식사만... 처음에는 그런 조용함이 두렵기도 했었다. 밥만 꾸역꾸역 식도로 내려보내던 가족들이 어쩌다 뱉는 소리들은 지지직거리는 라디오처럼 선명하지 못했다. 잡다한 소음도 들려왔다. 자동차 경적 소리, 취한 누군가가 부르는 노랫소리, 타자소리, 연필소리, 책장을 넘기는 소리, 혀를 차는 소리, 신랄한 험담을 나누는 무리의 커다란 속삭임, 머리를 구석에 숨긴 채 우는 어린아이의 소리 등등... 나온 소리들이 손을 뻗으면, 시커멓게 때가 낀 그들의 손톱이 눈에 들어왔다. 그것들이 식탁 위를 침범할 때면, 침묵은 두려움에 덜덜 떨며 몸을 한껏 움츠렸다. 식탁 위를 점령한 소리들은 그것들의 더러운 손으로, 여기저기 상처가 가득한, 흙이 잔뜩 묻은 그 더러운 손으로, 새파랗게 질린 침묵의 얼굴과 온몸에, 자신과 같은 새까만 때를 묻혀댔다. 한참 침묵을 비웃다가, 다시 가족들의 목구멍으로 차가운 밥과 함께 내려가 사라져 버렸다.
여전히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저 침묵의 붉어진 뺨을 나는 이제 쓰다듬지 않는다. 아니, 못하는 건가. 침묵의 민망함이 행복인 줄 몰랐을 때처럼, 한 없이 맑았던 나의 손으로 그것의 공허함을 안아주고 싶다. 그러나 찝찝한 행복을 놓고 싶지 않은 먼지 같은 소망에, 나는 소리를 식사했다. 소화되지 못한 말들이 낙엽처럼 위에 겹겹이 쌓였다. 위산도 녹이지 못한, 나의 말들은 퇴적되고 굳어져 내 소리의 손톱 밑에 남았다. 그렇게 깎이지 못한 소리의 손톱은 휘어지고 비틀어졌고, 씻어낼 수 없을 만큼 단단한 응어리를 그 속에 가두었다. 이내 답답함을 견디지 못한 소리들은 못난 손톱으로 내 안을 긁어대기 시작했다. 특정할 수 없는 고통과 함께 끼익- 소름 끼치는 손톱의 연주들이 내 장에서, 위에서 들려왔다. 어쩌면 가족들은 침묵을 방치하는 게 아니라, 가장 시끄러운 침묵을 견디고 있었나 보다.
손톱을 깎을 때면 나는 한 번씩 손톱 밑을 본다. 그 밑엔 노랗게 변색된 내 말들이 남아있다.
침묵은 이제 더 이상 얼굴을 붉히지 않고, 나도 차게 식은 침묵의 두 뺨을 어루만지지 않는다. 아니,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