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문객

by 이광

언젠가 지인이 카톡으로 보내준 글인데 며칠 후 필자가 속한 단톡방에 같은 글이 또 올라왔습니다. 출처가 분명하지 않고 여러모로 살펴보니 꾸며낸 이야기겠다 싶었는데 여러 사람들이 퍼 나른 모양입니다. 이를 그대로 옮겨봅니다.


[ 어디로 갈 것인가? ]


정년 퇴임한 지 몇 개월 되지 않은 한 교수가 방송에 출연할 일이 생겨서 방송국에 갔다.

낯선 분위기에 눌려 두리번거리며 수위 아저씨에게 다가갔더니 말도 꺼내기 전에 “어디서 왔어요” 라고 묻더라는 것.

퇴직해서 소속이 없어진 그분은 당황한 나머지 “집에서 왔어요”라고 대답해 한바탕 웃은 적이 있는데 다른 한 교수도 방송국에서 똑같은 경우를 당한 모양이다. 그러나 성격이 대찬 그분은 이렇게 호통을 쳤다고 한다.

“여보시오. 어디서 왔냐고 묻지 말고, 어디로 갈 것인지 물어보시오. 나 ○○프로에서 출연해 달라고 해서 왔소.”

마침 그 프로그램 진행자인 제자가 멀리서 보고 달려가 모셨다.

그 제자는 “역시 우리 교수님 말씀은 다 철학입니다.”

"우리의 인생에서도 어디서 왔는가 보다 어디로 갈 것인지가 더 중요한 게 아니겠습니까?” 라고 말했다

마치 지금의 자리가 영원하기라도 한 것처럼 어디로 갈 것인가는 모르고, 어디서 온 것만 내세우면 미래가 없다.

우리도 때때로 자문해야 한다.

‘어디로 갈 것인가?’



글을 읽고 나니 조금은 개운하지 않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집에서 왔어요"라 대답한 교수는 유머가 있는 사람이고, 반면 어디서 왔느냐는 물음을 되받아 어디로 갈 것인지 물어보라고 한 교수의 말씀도 일리는 있습니다. 어디로 간다는 것은 말 그대로 미래지향적이지만 어디서 왔다는 것 또한 한 사람의 소중한 기반이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야기의 속을 들여다보면 그 교수는 동년배일 수도 있는 수위를 가르치려 들었고 호통까지 치고 있습니다.

위의 글이 내포한 편향된 시각은 교수는 현명하고 수위는 사람도 몰라보고 실수를 저지른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다시 살펴보면 출입을 통제해야 할 방송국에서 수위는 방문객의 신분을 확인하는 직무를 수행하고 있었고, 교수는 그러한 그를 대화가 아닌 권위로 제압하려 한 것입니다. 어디서 왔느냐는 질문이 소속된 곳을 확인하려는 것보다 무슨 용무로 왔는지 묻는 것임을 그 교수도 모르지 않았을 텐데 말입니다.

교수를 모시러 온 제자의 발언도 짚어 보면 어디로 갈 것인가도 중요하지만 우리 인생은 어디서 왔는가도 중요한 사실 아닌가요. 어디서 왔느냐는 그 사람의 현재와 직결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요즘은 어디로 갈 것인가가 더 주목받는 세상이 되어버렸고, 그 과정에서의 도덕적 결함은 묻혀버리는 경우가 허다하지요. 과거는 과거일 뿐 현재나 미래만 생각하라는 현실주의가 우리 사회의 판도를 흔들고 있습니다.

지난해 친구의 후배가 쓴 책이 기억납니다. 30년 넘게 미국에 살며 사업을 해온 경험담이 담긴 책이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교포 사회에서 배은망덕의 배신행위가 있어도 그게 이슈로 크게 부각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즉 나만 피해가 없으면 다른 사람의 부도덕은 눈감아주는 경향이 만연한 것이지요.

일례로 이민 온 동포가 자신의 딱한 사정을 알고 받아준 슈퍼마켓 사장에게서 점포 운영 노하우를 익힌 후 길 건너편에 슈퍼마켓을 내거나 돈가스집 종업원으로 있다가 바로 옆 건물에 가게를 내고 경쟁을 붙는다던지 하는 경우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랍니다. 중국인, 일본인, 유태인 등 그 어떤 나라 사람들도 하지 않는 배신행위를 서슴치 않고 하기에 한국인의 적은 한국인이라는 말까지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러한 행위를 용인하고 기꺼이 손님이 되어주는 교포 사회의 아량은 어디서 온 것일까요. 친일 매국을 일삼은 자의 후손은 독립된 나라에서 떵떵거리며 사는데 독립운동가의 후손들은 애옥살이를 면치 못한 우리 사회의 문제와 관련이 있을까요.

우리는 도리에 어긋나도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에게 관대한 편입니다. 오히려 그렇게 하지 못한 사람들을 어리석다고 비웃기까지 합니다. 그야말로 천민자본주의의 사고방식이고 타인을 수단으로 삼는 고약한 처세술입니다.

진정한 미래는 진정한 과거에서 비롯됩니다. 그리고 그러한 믿음을 저버리지 않은 이들이 있기에 그래도 우리나라는 그릇된 길로 나아가지 않는 것 같습니다. 천민자본주의가 판을 치는 듯 보여도 홍익인간의 정신을 잃지 않은 이들 또한 건재하기에 정의가 무너지지 않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현종 시인의 시 <방문객>의 일부를 소개하며 글을 맺습니다.


사람이 온다는 건 실로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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