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푸기
전연희
샘에서 물을 푸다 해 뜨는 쪽 보곤 하지
한 동이 채우기 전 바가지에 뜨는 모래
그 모래 가라앉히려 참 느리게 가는 생
대신동 살던 시절 초등학생이었던 필자는 새벽마다 아버지를 따라 구덕산을 올랐습니다. 늦잠도 자고 싶었겠지만 하산하며 들르는 작은 목장에서 마시는 흰 염소 갓 짠 젖을 포기할 수 없었지요. 산 중턱엔 샘이 있어 거기서 얼굴을 씻었습니다. 웬만큼 날이 춥지 않으면 아버지를 따라 등목까지 했습니다. 찬물을 온몸에 끼얹고 마른 수건으로 닦을 때의 상쾌함은 어려서부터 길들어진 것입니다.
초장을 읽으며 그 시절 구덕산을 오르던 추억이 떠오릅니다. 아마 화자는 하루치 물을 긷기 위해 새벽녘에 샘을 찾았나 봅니다. 동이 트면 해 뜨는 쪽 보곤 하’는 모습에는 해보다 일찍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들의 여유가 느껴집니다. 샘물을 바가지로 연거푸 푸다 보면 모래가 뜨는 수 있지요. 그러면 동이에 물을 부을 때 모래가 섞이지 않도록 잘 가라앉혀야 합니다. 산에서 등목할 때도 바가지로 물을 끼얹다 보면 흙 알갱이가 살결에 닿는 걸 느끼곤 했습니다.
바가지로 물을 푸는 일은 우리 사는 모습을 비추어줍니다. ‘한 동이 채우기 전 바가지에 뜨는 모래’는 행위에 대한 반작용입니다. 바가지에 담긴 모래는 현실에서 일어나는 감정일 수도 있고 어떤 징조를 암시하기도 합니다. 그 모래를 가라앉히려면 참고 기다려야 합니다. ‘참 느리게 가는 생’이라는 종장 후구가 압권입니다. 그동안 우리는 너무 급하게 살아왔습니다. ‘빨리빨리’로 통하는 바쁜 삶은 풍요를 안겨주었지만, 그만큼 모래도 생기기 마련입니다. 느리게 가는 생 또한 체득할 수 있다면 ‘빨리빨리’로 인한 모래도 자연스레 가라앉을 것입니다. 한 해를 보내며 내 안에 모래가 얼마나 쌓였는지 되돌아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