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락하는 삶의 의미

영화 《더 폴The Fall》리뷰 | 감독 타셈 싱

by 데미안에너지

치유의 서사 : 스턴트맨 로이 워커에서 아이 알렉산드리아로 흐르는 여정


1920년 로스앤젤레스 병원에 하반신 마비 상태인 로이가 누워 있다. 오른 팔을 다친 알렉산드리아는 병원을 탐험하다가 로이를 만난다. 로이는 스스로 목숨을 끊기 위해 알렉산드리아를 판타지 모험담으로 유인해, 이야기에 참여하게 만든다. 의도는 알렉산드리아에게 모르핀을 몰래 훔쳐오게 하기 위해서였다.


로이가 끌고 가는 초반부의 이야기는 수동적이다. 이야기를 도구로 사용하기 때문에 현실을 회피하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등장인물들의 표정이나 분위기도 어둡고 정적이다. 이야기 진행이 도망 다니는 구조를 취하는 것은 로이가 자살을 계획하고 있고 삶을 절망적으로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둡고 무너진 로이의 감정이 투영되어 진행된다.

그런데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알렉산드리아의 능동적인 참여가 서사를 바꾼다. 로이는 이야기에 거리를 두지만 알렉산드리아는 이야기 속으로 거침없이 빠져든다. 이야기를 도구가 아니라 목적으로 소비하기 때문이다. 알렉산드리아의 이야기 참여는 현실을 바꾸는 적극성을 띄게 된다. 아이의 천진난만함과 유쾌함까지 더해지면서 로이는 점점 삶으로 올라온다.

로이를 위해 모르핀을 훔치다 다친 알렉산드리아 곁에서 이야기를 하는 로이는 이야기의 주체가 알렉산드리아가 되어 있다는 점을 인식한다. 이야기 속 이야기는 비극이지만 이야기를 하는 로이와 듣는 알렉산드리아는 희극으로 전환된다.


알렉산드리아의 능동적인 참여가 이야기를 바꾸면서 현실의 삶도 달라지는 매력적인 영화다. 알렉산드리아 또한 부재하는 아빠에 대한 환상을 품고 있던 아이다. 로이의 이야기 속에서 그녀는 아빠를 영웅으로 투사한다. 초반에는 로이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통해 아빠의 빈자리를 채우고자 하지만 이야기는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는다. 로이의 내면이 이야기 초반을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알렉산드리아는 아이처럼 로이의 파괴적이고 우울한 이야기에 저항한다. 듣기만 하던 알렉산드리아가 창작자로 변모하는 과정을 통해 현실을 주체적으로 사는 변화가 일어난다. 알렉산드리아는 아빠의 빈자리를 판타지로 채우려 하지 않고, 로이를 이해하며 모르핀을 훔치기 위해 움직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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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적 미학 : 영상미와 유머


영화 속에서 로이가 진행하는 이야기는 영상미가 반전을 이루면서 시각적 미학을 극대화시킨다. 병원의 어둡고 우울한 분위기가 로이와 알렉산드리아의 모험 판타지에서는 동화적인 상상력을 자극하는 장면으로 바뀌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CG로 여겨질 만큼 독특하고 지구에는 없을 것 같은 풍부한 장면이 눈앞에 펼쳐진다. 감독이 인도, 남아공, 루마니아 등 24개국에서 찍은 장면은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확고하게 넘나들면서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고대 도시, 붉은 사막, 절벽이나 숲속, 강가에 서 있는 인물들의 의상과 표정들이 색체적 강렬함으로 어른인 로이와 아이인 알렉산드리아의 정서적 거리를 좁히고 밝은 톤으로 연결한다. 예상하지 못한 아이의 웃음소리 같은 유머가 판타지 이야기 속에 담겨 있다.

판타지 이야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병원에서 다른 삶을 사는 구조로 되어 있다. 현실과 환상의 경계가 아이의 해맑음으로 무장해제되게 만든 구성이다. 감독의 영리한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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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락하고 나서야 삶을 깨닫는다


로이는 죽기 위해 스턴트를 하다 병원에 누워 있는 신세가 된다. 결국 알렉산드리아가 모르핀을 훔치다 뇌수술을 하게 되면서 물리적으로 추락하게 된다. 로이는 알렉산드리아의 추락에 책임이 있었다.

알렉산드리아의 추락은 로이가 추락에서 회복하는 계기가 된다. 그는 자기의 고통을 마주하고 삶의 의미와 관계를 회복할 수 있게 된다.

영화 초반부에서 로이는 죽기 위해 스턴트를 했다면 후반부에서 로이는 살기 위해 스턴트 연기를 한다. 끊임없이 추락하는 스턴트로 삶을 이어가는 로이의 추락은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인다. 추락하고 나서야 비로소 자기의 삶을 이해하고 수용하는 단계에 이르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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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이 1920년대 병원이고 현실이 고통스러울수록 이야기는 더 화려하고 환상을 향해 나간다. 지금 나의 현실이 로이와 같다면 모험 판타지가 위로를 줄 것이다. 그래서 문학작품과 예술은 허구지만 현실을 담고 있다.

로이가 알렉산드리아의 추락을 보면서 현실을 마주하고 돌아온 것처럼 고통을 이야기하고 다듬는 과정에서 치유를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추락은 곧 회복과 같은 선상에 있다는 메시지를 영화는 전한다. 삶과 죽음이 같은 것처럼.

2006년에 개봉했고 2024년에 재개봉한 영화 《더 폴》은 시대를 앞서갔다고 생각한다. 추락한 자의 고통에서 추락 이후 살아나는 인간의 가능성을 보여준 감독의 철학이 설득력 있게 다가온 영화였다.

추락은 환상을 벗고 타인의 고통을 공감하며 현실을 직시하는 주체적 존재로 성장하는 전환점이다. 내 인생의 청자가 아니라 능동적인 주체자가 되도록, 내 인생에서 명사로 홀로 서도록 만든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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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생성 이미지입니다.”

#더폴 #TheFall #타셈싱


✍ 다음 연재 – 도서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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