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간과 공간을 함께하는 남편에게 보내는 시편지
빛이 아롱지어
부부의 집을 짓고
아이의 이름을 짓고
한땀 한땀 부모의 마음을 길어올려
알록달록 네 마음이 모인 집을 다져나가고
시간이 흐르면서
노부모의 쓸쓸함에 죄책감을 안고
아이의 방황에 무력감을 안고
건강검진 결과에 초조함을 안고
쏙쏙 빠지는 월급에 한숨을 짓고
이제는 그만 지어도 되련만
몸이 일개미의 속도에 익숙해져
여전히 무거운 바퀴를 질질 끌고
밀고 밀리며 내달리는 당신과 나
30년 전 은은한 달빛이 좋아
부부가 된 우리
여름을 접고 가을을 향해 서서히 차오르는 달빛이 속삭입니다
30년 전의 사랑을 다시 만나라고
그 계단에 앉아 은빛을 바라보며
잔잔한 위로에 깊이 파묻혔던
그 문을 열어보라고
양수가 차오르고 흐르는 시간을 지나
또 다른 당신과 나를 만나기까지
고통의 숨소리가 깊어져가도
그날을 떠올리기만 하면
흐뭇한 미소로 한껏 부풀어졌던
30년 전의 달빛
그 빛이 지금도
속삭이고 있다는 것을
오늘에서야 알았습니다.
누군가의 자녀라는 이름에서
누군가의 부모라는 이름까지
누군가의 무엇이라는 존재로 이어지는
무거운 언어를 내리고, 이제는
나 그리고 당신
세상을 처음 만난 것처럼
30년 전, 달빛 아래에서
다시 피어났으면 좋겠습니다.
우리의 시간은 오후 3시쯤이 아닐까요
불타오르는 빛이 서서히 지나가고
점점이 노을빛으로 번져
그때 그 은빛과 다시 만나게 된다면
서로 다른 것을 기대하며 소홀했던 마음
간섭과 비난으로 덫에 갇힌 마음
눈 그늘을 짙게 한
켜켜이 쌓인 아픈 시간들을 바라보며
어느새 여기까지 왔다고
이제 곧 저무는 시간 앞에서
시곗바늘에 매달린 일개미 되어
포근하게 품어주지 못했던
마음들까지 모두
달빛으로 아름답겠지
우리 사랑이
잔잔하게 여기까지 왔다고
고마워할 것 같습니다.
당신과 내가 지은 사랑
달빛으로 남을 사랑
- 2025.09.06.
오십 더하기 셋, 남편의 생일이었습니다.
그날 아침은 너무 피곤해서 늦게 일어났는데
남편이 미역국을 끓였습니다.
참 부끄럽지만 고백합니다.
다른 사람들을 위한 마음은 쉽게 고백하지만
남편을 향한 마음은 이상하게도 쉽게 써지지 않았습니다.
왜 그럴까요?
미역국 하나 제대로 끓여주지 못했던 날이
참 특별해서 그런 날,
휘청거리는 제 마음을 가다듬고
남편을 향한 제 마음을 고스란히 보여줄 수 있는
언어만을 떠올려
시의 그릇에 담아보았습니다.
그때 그 달빛을 기억한다면
모두 다 괜찮을 거라는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주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