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치 않을 추억으로 남은 찬란한 청춘에게 미움을 담아
그냥 그런 시절이 누구나 있는 것 같다.
가장 날것이며, 수면 위로 모든 것을 내놓고 다녔음에도 무서운 게 없고 책임도 지기 싫었던 시절.
스물이 되고 가장 먼저 느낀 게 있다면 그건 아마 시간의 소중함을 잃었다는 것이라 생각한다.
정확히 일 년만 돌아간다고 해도 분 단위로 스케줄을 짜고, 누구보다 일찍 일어나 준비를 끝마쳐 두 시간 뒤의 약속을 기다리며 그 시간을 허무맹랑하게 채우는 것이 아니라, 같은 친구라도 이전과는 다른 추억을 만들기 위해 단조로움을 탈피하고자 새로운 카페는 어디가 있을까, 조금 더 맛이 있는 식당이 있을까 등의… 하다못해 즉석 사진기의 새로운 프레임이 들어왔나 따위의 검색과 미래 망상으로 내 시간을 채웠다.
만나는 시간은 웃음을 참을 수 없다면 타인의 시선은 모르겠다며 길가에서 큰 소리로 웃어버리고, 돈이 부족해 이천 원짜리 디저트도 사기 꺼려지며 카페인에 약하지만 가장 싼 아메리카노를 마시면서 이야기꽃을 피웠다.
그게 전부다.
월요일부터 금요일, 아침부터 시작해 해가 저물면 끝나는 일과의 똑같은 레퍼토리를 끝내고 겨우 얻은 마흔여덟 시간 중 여섯 시간만을 할애해 "이번 주말에 놀자!"라는 말을 그렇게 채웠다.
변수가 있기도 했다.
야간 학습을 안 하겠다고 나가거나, 일찍 끝나는 날에는 괜스레 속박하는 듯한 교복은 체육복으로 환복하고 근처 문구점이나 잡화점을 돌아다니며 저 물건이 내 거면 얼마나 좋을까? 따위의 실없는 궁상을 떨기도 했다.
그렇게 아껴 모은 돈으로 외식이라며 저가의 햄버거를 사 먹기도 했다.
지금의 나는 구속력이 없다.
복장도 자유롭고, 원하면 술과 담배 등을 합법적으로 친구들과 시도해도 되며 밖에서 자거나 고가의 커피를 사 먹어도 된다.
돈이 부족하면 일을 해도 되고, 월요일 아침이 무섭지도 않다. 또 사이가 안 좋은 사람과 평일을 꾸역꾸역 부딪치며 살지 않아도 된다.
이 얼마나 황홀하고 즐거운 인생이겠냐마는, 어떠한 존재가 나타나 영혼을 바치면 학창 시절을 다시 주겠다 약속한다면 나는 기꺼이 응할 것이다.
똑같은 친구와 다툼해도 된다. 무리에서 소외될까 두려움에 떠는 시간이 다시 생겨도 된다. 내가 뱉었던 말을 바꿀 기회가 없어도 된다. 아침 일곱 시에 학교를 나오라고 해도, 무조건 교복을 착용하라고 강요해도 된다.
무조건 응할 것이다, 나는.
학창 시절 내내 이 순간이 다시 돌아오지 않을 시간이란 생각은 틈틈이 공허한 시간 사이로 비집고 들어왔다.
이를 기반으로 스물에 적응하려고 했는데도 나는 여전히 과거가 그립고, 그 찰나가 보고 싶다.
스물이 되고 삼 년이 지나면 나아질까, 아마도 그렇지 않을 것 같다.
우리 아버지도 쉰이 넘어 고등학교 시절을 떠올려 안주 삼기도 하신다.
수많은 번뇌와 후회, 그 사이에 피어난 행복이 내 학창 시절의 전부이지만 무섭기도 하고 불편한 게 많았던 고등학교 그 삼 년이 뭐라고 나의 십수 년을 잠식시킨다.
너무나 괘씸하고 힘들지만, 많이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