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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약을 못 삼키는 어른의 식습관 진화기

by 수수

나는 알약을 못 삼킨다.
비타민C나 오메가3 같은 건, 크기가 거의 폭탄 수준이다. 목에 넣으면 막혀버릴 것 같은 불안감이 올라오고, 물을 아무리 마셔도 안 내려간다. 500ml로도 안된다.
그래서 결국, 나는 이 나이까지도 가루약을 먹는 사람이다.


어렸을 때는 단점 같았다.
어른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약을 한 번에 삼키고, “그게 뭐가 어렵냐”는 표정으로 물을 마시니까, 영영 어른이 못 된 느낌이랄까?


나는 그러한 이유로, 비타민 알약 대신 자연스럽게 음식에서 영양을 찾게 되었다. 채반이 들어간 컵형 도시락에 브로콜리, 방울토마토, 샐러리 같은 걸 담아서 하루에 한 컵씩 먹는다.


직장생활 하면서 시작한 습관이라 오래 해왔다고 하기엔 그렇지만 확실히 어느 순간부터는 피곤이 줄고, 늘 가스가 차 있던 배가 편해졌다. 단순한 기분 탓은 아닌게 확실하다.


그러다보니 점점 더 흥미가 생겼다.

“브로콜리는 얼마나 삶아야 영양소가 덜 날아갈까?”
“샐러리는 생으로 먹는 게 좋을까?”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찾아보게 된다. 어떤 채소에 어떤 비타민이 들어 있고, 그게 나한테 어떤 작용을 하는지도 알게 된다. 그러면 또 먹고 싶어진다.


그렇게 조금씩 조합을 바꿔가며 먹다 보니, 그 안에서 ‘재미’가 생겼다. 내가 후천적으로 만들어낸 가장 좋은 습관 중 하나다. 누가 시켜서 한 것도, 체중을 줄이려는 목표도 없었다. 그저 내 몸을 이해하려고 하다 보니 생긴 결과다.


몸을 관찰하고, 거기서 얻은 데이터를 바탕으로 다음 선택을 하는 일. 내 몸을 이해하고 내 방식대로 관리할 줄 알게 된 거다. 어떻게 보면 이것도 알약을 삼키는 것 만큼 어른스러운 것 아닐까?

‘어떻게 내 몸을 이해하고 돌보느냐’라는 것.

나한테 맞는 방향은 내가 찾아가면 되는 거고, 그게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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