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엄마의 역할을 내려놓기로 했다

by 류하정

아침이 밝았다.

아이를 깨워 옷을 입히고, 간단한 아침을 준비해 먹인 뒤, 등교 준비를 마친 아이는 가방을 메고 나를 향해 밝게 웃으며 말했다.


“엄마, 학교 가요. 저 준비 다 했어요.”


나는 아이의 얼굴을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가방을 챙기고 현관문을 나섰다.

아이의 작고 따스한 손을 잡고 학교까지 함께 걸어가는 길, 그 짧은 시간은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평화를 마주하는 순간이었다.


아이의 등교를 마치고 조용히 집으로 돌아온 나는, 곧바로 노트북과 필기구를 챙겨 도서관으로 향했다.

그곳은 오늘도 내가 숨 쉴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었고, 비로소 내가 ‘나’로 존재할 수 있는 장소였다.

내 이름으로 계약된 집, 내가 돈을 내는 그 집은 이제 더 이상 나의 안식처가 아니었다.


동생은 안방에 틀어박혀 노트북을 두드리거나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있었고, 엄마는 거실에 앉아 말없이 핸드폰을 바라보며 깊은 한숨만 내쉬곤 했다.
그 정적은 평온이 아닌 긴장이었고, 내가 그 속에 머무는 순간, 공기가 무겁게 내려앉는 듯한 압박이 가슴을 짓눌렀다.


냉장고에 넣어둔 식재료가 조금만 부족해도 그들은 무심하게 물었다.


“이건 왜 안 사왔어?”
“이거 없으면 어쩌려고 그래?”


툭 던지는 말처럼 들렸지만, 그 말들 속에는 언제나 불만과 요구가 숨어 있었고, 나는 그 숨은 뜻을 읽어야 했다.


그들은 한 번도 스스로 해보겠다는 태도를 보인 적이 없었다.
마치 무언의 가족 규칙처럼 모든 수고는 내 몫이었고, 그 위에 아무렇지 않게 올라타 있는 것이 그들에게는 너무나 자연스러웠다.


나는 그 구조를 알고 있었지만, 감히 무너뜨릴 수 없었다.
왜냐하면, 여전히 내 안에는 ‘그래도 가족이니까’라는 말이 깊은 뿌리처럼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도서관에 도착하면 나는 늘 똑같은 자리를 찾아 앉는다.
구석 자리, 콘센트가 있는 창가 쪽.
그곳에 앉아 창문 너머로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을 바라보며 오늘 하루의 감정을 가만히 다독인다.

나는 그 순간마다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는 지금 어디쯤 와 있는 걸까.’


노트북을 켜고 글을 쓰려 해도, 머릿속은 금세 하얘지고, 가슴 한가운데에 웅크리고 있는 감정들이 목울대를 막아 올라오려 했다.
손끝은 떨리고, 마음은 울컥했지만, 눈물은 그저 눈물일 뿐이라는 듯 조용히 삼켜야 했다.
‘여기서 울면 안 돼.’
그 다짐 하나로 나 자신을 붙잡았다.


나는 매일 무너지고 싶었다.
하지만 무너질 수도 없었기에, 무너지지 않는 법부터 배워야 했다.
그렇게 버티고, 참고, 흘려보내는 것을 반복하는 동안 어느 순간 나는 깨달았다.


이건 도망이 아니었다.
이건 생존이었다.
내가 숨을 곳이 없었기에, 숨을 틈이라도 만들어야 했다. 그래서 찾은 곳이 도서관이었고, 책상이었고, 그리고 글쓰기였다.


집에서는 아무도 내 안부를 묻지 않았다.
“요즘 힘들지 않아?”, “몸은 괜찮아?”, “허리는 좀 나아졌어?”
“너무 오래 앉아 있지 말고, 중간에 일어나서 스트레칭도 하고, 좀 쉬어야 해.”
그런 말은 단 한 번도 들은 적이 없다.

내가 지쳐 보이기라도 하면 돌아오는 건 이랬다.


“지금 힘들면 어쩌려고 그래?”
“그 정도는 다들 해.”
“그래도 네가 해야지. 누가 해?”


그랬다.
나는 어느새 가족 안에서 ‘사람’이 아니라 ‘기능’이 되어 있었다.
‘돈을 벌어오는 기능’, ‘아이를 돌보는 기능’, ‘집을 유지시키는 기능’.
내 감정은 그 시스템 안에서 언제나 오류였고, 불편한 코드였다.


기능이 제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감정을 삭제해야만 했고, 그렇게 나는 고립되고, 지치고, 서서히 무너져갔다.

나는 매일 스스로에게 물었다.


‘이게 정말 사는 걸까?’
‘내가 나를 포기하고 있는데, 과연 이걸 삶이라 부를 수 있을까?’
답은 쉽게 오지 않았지만, 우연히 읽은 한 책에서 한 문장을 만났다.


“당신은 도망친 것이 아니라, 살아남은 것이다.”


그 문장을 읽는 순간, 숨이 턱 막히다가도 서서히 풀려나갔다.
그래, 나는 살아남기 위해 이 선택을 한 거였다.
내가 나를 지키기 위해, 무너지지 않기 위해,
모든 걸 참아내는 것이 아니라 그 구조 안에서 빠져나오는 법을 배우는 중이었던 것이다.


처음엔 나도 몰랐다.

이 구조가 얼마나 왜곡되어 있었는지,
그 안에서 내가 얼마나 비정상적인 방식으로 자신을 소진시키며 버티고 있었는지를.


엄마는 언제나 동생을 감싸며 말했다.
“얘는 원래 예민해. 성격이 좀 그렇잖아.”
“그래도 네 동생이잖아. 좀 이해해줘.”

하지만 나는 이제 더 이상 그런 말에 설득되지 않는다.
그 ‘이해’는 늘 나에게만 요구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아무도 이해해주지 않는 사람을 이해해야 했고, 고맙다는 말 한마디 없는 사람을 먹여 살려야 했으며,

공간조차 나눠주지 않는 이들과 함께 살면서도 '착한 사람'이길 강요받았다.

그러다 문득, 질문이 생겼다.


“왜 나는 나를 지키는 일에 죄책감을 느껴야 하지?”
“가족이라는 이유로, 왜 모든 경계가 무너져야만 하지?”


그 질문이 마음에 생겨난 날부터, 나는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하루 3시간이라도 나만의 시간을 확보하려 했고, 경제적 수입을 분리하고, 내가 버는 돈과 쓰는 돈을 구분하며 나 자신을 보호하려 애썼다.

그리고 내 감정을 정당화하기 위해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것은 단순한 치유가 아니었다.
회복이었다.
존엄의 회복.
존재로서의 회복이었다.


나는 여전히 아이를 등교시키고 도서관에 온다.
집은 여전히 불편하고, 엄마와 동생은 내가 변한 것을 눈치채지만, 그들은 여전히 무책임하며 나를 이해하려 들지 않는다.


그러나 이제 나는 더 이상 흔들리지 않는다.
이 공간에 오는 나는, 더 이상 도망치는 사람이 아니다.
나는 나를 지키기 위해 여기에 오고, 내 아이와의 삶을 온전하게 지켜내기 위해 이 결심을 지속하고 있다.


내가 나를 존중하기 시작하자 세상이 조금은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무너졌던 자존감은 아주 천천히, 그러나 분명하게 다시 세워지고 있었다.

이제 나는 말할 수 있다.


“도망친 것이 아니다. 나는 살아남은 것이다.”


그리고, 나는 더 이상 엄마라는 역할로만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엄마이기 전에 ‘사람’이고, ‘여자’이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 자신’이다.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지워졌던 나를, 이제는 내가 다시 써내려간다.


비로소, '나'라는 이름으로 살아가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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