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업주부에서 작가
23.03.2026
날씨: 내 마음처럼 변덕스러운 네덜란드 하늘. 해가 떴나 싶으면 비가 온다.
상태: 직업을 찾으려다 직업병(주부습진)을 가진 나.
내 인생을 바꾼 문장이 하나 있다.
"직장을 다니는 동안 직업을 만드세요. 직장은 정년이 있지만 직업은 정년이 없습니다.“
이 말을 들었을 때 전율이 일었다. 17년 차 공무원 명함을 잠시 내려놓고 네덜란드로 올 때 내 머릿속엔 원대한 계획이 있었다. 해외 살이라는 기가 막힌 재료로 글을 써서 돌아갈 땐 번듯한 작가라는 직업을 손에 쥐리라. 2년이면 충분하다고 믿었다.
하지만 네덜란드 신은 나에게 작가 대신 전업주부 타이틀을 선물했다. 작가로서의 고뇌? 그런 건 사치였다. 현실은 새벽 5시 30분에 일어나 아이들 도시락을 만들며 졸음과 사투를 벌이는 일이었고 등하교를 책임지는 인간 네비게이션, 즉 베이비시터였다. 글감을 고민하는 게 아니라 매일 "오늘 저녁엔 또 뭘 해 먹이나"를 고민하는 일상이었다.
그러다 슬럼프는 예고 없이 그러나 아주 깊게 찾아왔다. 저녁을 먹고 나면 가족들은 2층으로 올라가 자기들만의 시간을 보낸다. 1층 주방에 홀로 남은 나는 산더미 같은 접시들을 보며 생각했다.
'나는 아빠인가, 아니면 이 집 일꾼인가?' 한국에서 얌전히 공무원이나 할걸. 내가 여기서 뭐 하고 있나 싶었다. 감사함을 모르는 가족들이 괜히 미워 보였다. 내 꿈인 직업 만들기는 주방 가스레인지 불꽃보다 희미해져 갔다.
그런데 말이다. 시행착오 없는 인생은 없더라. 바닥을 치고 나니 비로소 보였다. 내가 그토록 집착했던 2년 안의 승부가 오히려 나를 갉아먹고 있었다는 걸.
치열한 전투(?) 끝에 와이프가 도시락을 넘겨받고, 내가 저녁에만 집중하게 되면서 조금씩 숨통이 트였다. 그러자 들리기 시작했다. 내가 그동안 쓴 글들이, 내가 억지로 뛰었던 그 걸음들이, 그리고 이 지독한 슬럼프 자체가 실은 직업(작가)으로 가는 가장 생생한 취재 과정이었다는 사실이.
직업은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내 삶의 흉터로 만들어가는 것이었다.
이제 한국으로 돌아갈 날이 4달 남았다. 누군가는 말한다. "고작 4달 동안 뭘 하겠어? 그냥 힘 빼지 말고 즐기다 와." 하지만 화란댁 짬밥으로 다져진 나는 이제 다르게 말한다.
"4달이나 남았네. 시작하기 딱 좋은 시간이다.“
여기는 내 꿈이 무너진 폐허가 아니다. 진짜 내 직업을 만들기 위해 나를 흔들어 깨운 훈련소였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이건 일기가 아니다.
직업을 찾아가는 한 남자의 반격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