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날에 함께 하고 싶은 사람
드라마를 볼 때 절대 꺼내지 말아야 하는 말이 있다. 바로, ‘만약에’다. 제아무리 집중해서 드라마를 보고 있었다 하더라도, 이 마법의 단어 하나면 드라마는 금세 뒷전이 된다. ‘만약에’ 뒤에는 언제나 곤란하고 재미있는 질문들이 뒤따라오기 마련이니까. “만약에 말이야... 네 애인이 <폭싹 속았수다>의 박영범(이준영)처럼 상견례 자리에서 숭늉을 안 떴어. 그럼 어떻게 할 거야?”와 같은 질문들. 누군가 질문을 던지면, 곧바로 누군가 한숨을 푹 내쉬며 손으로 머리를 짚는다. 그리고 이렇게 말하겠지. “난 절대 안 돼. 하... 생각만 해도 싫어!” 이렇게 우리는 가상의 일을 현실의 일보다 진지하고 심각하게 고민하곤 한다. 모든 질문의 끝에는 나름의 결론이 나기 마련이지만, 20년의 드라마 인생 동안 답을 내리지 못한 질문이 하나 있다.
"만약에 말이야. 비가 엄청나게 쏟아지는 날, 네가 우산을 안 챙겼어. 그때 옆에서 우산을 씌워주는 사람이 좋아, 아니면 같이 비를 맞아주는 사람이 좋아?"
“나이 9살에 조실부모하고 사고무탁하여 혈혈단신이...” <도깨비>의 은탁은 본인을 이렇게 소개한다. 집에서는 이모네 가족들에게 치이고, 학교에서는 친구들 사이에서 투명 인간 취급을 받는 삶이다. 설상가상으로 은탁의 곁에는 항상 귀신들이 머문다. 이처럼 은탁은 현실에 마음 붙일 사람 하나 없이, 이승과 저승 사이에서 외롭게 살아간다.
“또야? 지겹다, 진짜. 비 오는 인생” 그렇게 평생 비 오는 삶을 살아갈 것 같았던 은탁에게 어느 날, 누군가 처음으로 우산을 씌워준다. 도깨비다. 알바를 구해달라는 소원에 닭집에 가보라고 귀띔해주고, 이모네 식구들를 어떻게 좀 해달라는 소원에 세 식구를 뿔뿔이 흩어지게 만든다. 은탁을 축축하게 적시는 비를 막아주고, 심지어는 그 비를 멈춰주기까지 한다. 은탁에게 도깨비는, 숨 쉬듯 찾아오는 고난을 어떻게든 해결해주는 존재다. 은탁의 삶이 장애물 달리기라면 도깨비는 은탁이 편안하게 달릴 수 있도록, 그렇게 결승선에서 은탁이 웃을 수 있도록, 그 앞에서 장애물을 모두 없애준다. 그런 사랑이다.
덕분에 은탁은 더 이상 이전처럼 외롭게 살지 않는다. 도깨비 덕에 찾아가게 된 치킨집에서는 쿨한 보호자(?)인 사장님을 만나고, 피해 다니기만 했던 귀신들과도 가까워진다. 친구도 생긴다. 장애물이 없어진 트랙에서 옆도 보고, 뒤돌아보기도 하며 이전과는 다른 삶을 만들어간다.
<어느 날 우리집 현관으로 멸망이 들어왔다>의 탁동경 역시, 삶이 결코 순탄치 않다. 10살에 사고로 부모를 잃고, 철없는 동생과 함께 살아왔다. 그저 현실에 떠밀리듯 들어온 직장에서 ‘다들 이렇게 살아’라는 말을 되뇌이며 하루하루 살아간다. 뇌종양 선고를 받기 전까지는. 지루한 삶, 남자친구의 바람, 거기에 뇌종양까지... 쌓이고 쌓인 불행에 동경은 하늘을 향해 소리친다. “세상 다 망해라!‘라고.
하늘에 저주를 퍼붓던 그날, 동경의 현관으로 이상한 존재가 들어온다. 자신이 멸망이란다. 세상 다 망하게 해달라는 동경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찾아온 멸망. 그렇게 동경의 삶에 끼어든 멸망의 사랑은 도깨비의 사랑과는 다르다. 우산을 씌워주는 대신, 손을 붙잡고 빗속을 같이 뛴다. 힘들어하는 동경이 마음껏 울 수 있도록 조용한 바다에 데려가준다. 동경에게 처한 고난들을 직접 해결해주기보다는 동경을 지켜봐주는 방식으로 해결한다. 도깨비의 사랑이 장애물을 없애주는 사랑이라면, 멸망의 사랑은 장애물을 함께 뛰어주는 사랑인 셈이다.
“비 별 거 아니지. 그냥 맞으면 돼. 맞고 뛰어오면 금방 집이야.”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날, 멸망은 동경의 손을 잡고 뛰어가며 말한다. 시간이 지나 멸망이 동경의 곁에 없을 때도, 동경은 비 오는 날이면 이 말을 떠올린다. 그렇게 동경은 쏟아지는 빗속에서도 숨 한 번 크게 쉬고 뛰어갈 수 있는 사람이 된다.
비와 우산. 다소 추상적이게 느껴지는 이 질문은 슬픔과 고난을 어떤 사람과 함께 지나고 싶은지를 묻는 질문이다. <도깨비>의 도깨비처럼 고난을 해결해주는 사람이 좋은지, <어느 날 현관으로 멸망이 들어왔다>의 멸망처럼 고난을 함께 견뎌주는 사람이 좋은지.
프랑스의 작가 프랑시스 카르코는 사랑을 이렇게 정의한다. 사랑이란 우산을 씌워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비를 맞는 것이라고. 그러나 누군가는 이 정의에 고개를 갸웃할지도 모른다. ‘함께 비를 맞으면 둘 다 감기에 걸릴 뿐이지 않나?’라고 말이다.
나는 아직 답을 정하지 못했다. 누군가 이 질문을 던질 때면, 드라마 속 수많은 인물들을 떠올리며 고민해보지만 항상 같은 결론에 도달한다. “둘 다 좋은 것 같은데... 넌?” 답변을 대신한 반문은 또다시 길고 긴 토론으로 이어지곤 한다. 둘 중에 고르지는 못해도, 긴 대화 속에 알게 되는 것은 있다. 사랑이란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조금 덜 힘들게 살아갈 수 있도록, 그럼으로써 조금 더 웃으며 살아갔으면 하는 마음이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