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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세하게 묘사하기

2강 소설 쓰기 훈련 과제

by 박영선


해가 천문산 너머로 서서히 사라지고 있었다.

푸른 조명이 절벽을 타고 오르자, 산이 거대한 무대처럼 깨어났다.
바위 틈새에서 물기가 증발하며 희미한 안개가 피어올랐다.
공기에는 흙냄새와 향초 냄새가 섞여 있었다.
멀리서 들려오는 북소리가 산에 부딪혀 돌아왔다.
그 울림이 가슴속 어딘가를 천천히 흔들었다.


남편이 내 옆에서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 정도면 중국의 브로드웨이네.”
나는 짧게 웃고, 그 말이 공기 속으로 사라지는 걸 지켜보았다.


눈앞의 무대는 점점 밝아지고 있었다.
손끝에 미세한 금속의 감촉이 닿았다.
빛이 반사되어 은근하게 반짝였다.
그 작은 원 하나가 왠지 모르게 나를 편안하게 해 주는 것 같았다.


공연이 시작되었다.
하늘나라의 여우 요정 백호선이 왕의 청혼을 거절하고
인간 세상으로 내려오는 장면이었다.
흰 천이 바람을 받아 흔들리고, 조명이 그 천 위를 물들이며 움직였다.
배우의 팔동작은 새의 날개처럼 부드러웠고,
노래와 북소리가 교차하며 무대 전체가 파도처럼 출렁였다.
나는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조명 속에서 그녀가 나무꾼을 처음 만나는 순간,
시간이 잠시 멈춘 듯했다.


이야기는 단순했다.
사랑이 금지된 여인과, 사랑을 잃을 수밖에 없는 남자.
그들이 결국 헤어지고, 천년의 세월이 흘러 다시 만나는 이야기였다.
그 긴 기다림을 무대 위의 배우들은 몸으로 표현했다.
눈빛 하나, 손끝의 떨림 하나까지 섬세했다.
두 사람이 마침내 재회하는 장면에서,
하늘과 땅이 동시에 밝아졌다.
푸른빛과 금빛이 교차하며,
절벽 위로 하얀 천이 길게 흘렀다.


그 장면에서 나는 손을 내려다보았다.
빛이 닿은 곳이 은근히 반짝였다. 그 안에 묘한 온기가 있었다.
아무 말이 없어도 전해지는 온기였다.

남편이 내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천년은 무리지만, 백 년은 가능하지 않을까?”

그 말이 천문산의 바람 속으로 흩어졌다.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공연이 끝난 뒤, 사람들의 박수 소리가 산에 울려 퍼졌다.
조명이 꺼지고, 어둠이 내려앉았다.
산 위로 다시 별빛이 피어오르자,
나는 손가락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곳엔 여전히 빛이 남아 있었다.


찬란하지 않아도, 오래도록 사라지지 않을 빛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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