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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급이 줄어든 대신, 대화가 늘었다

가계의 중심이 바뀌며 얻은 의외의 평온함

by 머니데일리

퇴사는 어느 날 갑자기 오지 않았다

아내는 몇 달 전부터 자주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곤 했다. 일이 힘든 건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그 피로가 일상까지 스며든 건 비교적 최근의 일이었다.


퇴사는 그렇게, 어느 날 갑자기 결정된 게 아니었다. 말은 없었지만, 퇴근 후에 길어지는 침묵과 주말마다 피곤하다는 말이 늘어난 걸 보면서 나는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날, 아내가 ‘나, 그만두려고’라고 말했을 때, 놀라지 않았다.

다만, 이제부터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에 대한 막연한 걱정이 슬며시 마음에 들어왔다.


둘이 버는 삶에서, 하나로 버티는 삶으로

아내의 퇴사 후 가장 먼저 바뀐 건 ‘우리 집 수입 구조’였다.

그전까지는 굳이 계산하지 않아도 괜찮았다. 월급은 매달 들어왔고, 지출은 대강 비슷했으니까.


하지만 이제는 ‘얼마를 벌고, 얼마를 써야 하는지’를 매일같이 생각하게 됐다.
외식은 줄었고, 습관처럼 쓰던 택시 대신 버스를 타기 시작했다.


쇼핑 앱은 지웠고, 매일 아침 텀블러에 커피를 내려 담는 게 새로운 루틴이 됐다.
단순히 돈을 아끼는 게 아니라, 생활의 우선순위를 다시 정리해가는 시간이었다.


어쩌면, 처음으로 돈 이야기를 제대로 했다

결혼 후 우리는 돈에 대해 자세히 이야기해본 적이 없었다.
월급이 들어오면 쓰고, 모이면 좋고, 부족하면 좀 아쉽고. 그 정도였다.


하지만 아내의 퇴사 이후, 처음으로 테이블에 앉아 가계부를 열고 마주 앉았다.
'우리는 얼마를 쓰고 있고, 앞으로 어떻게 써야 할까?'
생각보다 솔직한 이야기들이 오갔다.


‘나는 불안해서 저축이 줄어드는 게 무서워’,
‘나는 나중에 하고 싶은 일이 있어서 지금 좀 쉬고 싶어’
돈 이야기를 하면서 우리는 서로의 마음속을 조금 더 알게 됐다.


돈이 줄어들수록 마음은 가까워졌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수입이 줄어든 지금이 오히려 더 평온하다.
무언가를 더 갖기보다는, 지금 있는 것을 함께 쓰는 법을 배우고 있다.


아내는 퇴사 이후 표정이 훨씬 부드러워졌고, 나는 퇴근 후 '오늘 하루 어땠어?'라는 말을 먼저 하게 됐다.
주말에는 함께 장을 보고, 집에서 밥을 해 먹는 시간이 늘었다.


그 안에서 우리는 대화를 나눴고, 웃었고, 가끔은 아무 말 없이 함께 앉아 있는 시간을 즐겼다.
돈으로는 살 수 없던 그런 순간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었다.


다시 일하지 않아도 괜찮은 삶을 위해

당장 내일의 안정보다, 조금 느리더라도 단단한 삶을 만들고 싶어졌다.
아내는 언젠가 자신만의 작은 작업실을 갖고 싶다고 말했고,

나는 지금보다 자유로운 시간을 갖는 삶을 꿈꾸게 됐다.


퇴사는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다.
우리는 지금, 단 하나의 월급으로 버티는 법을 배우며 '두 사람의 시간'을 더 많이 갖게 되었다.


그리고 그 시간 속에서 천천히, ‘다시 일하지 않아도 괜찮은 삶’을 준비하고 있다.
비록 숫자는 줄었지만, 마음은 조금 더 넉넉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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