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력 없는 대표의 화려한 몰락
나는 타고난 말재주로 영업을 꽤 잘했다. 겁이 없었다.
텔레마케팅 영업조직을 만들고 홈페이지 계약을 하루에도 몇 건씩 끌어오곤 했다.
그때는 지금처럼 고객들의 웹 지식이 높지 않았다.
막 개업한 사장님들이 간판을 달고 명함을 만들듯, 홈페이지 주소를 명함에 넣기 시작하던 시기였다.
그래서 영업이 ‘어렵지 않다’고 착각하기도 쉬웠다.
나는 어린 나이에 작은 성공을 빠르게 맛봤다.
인천 간석동에 2개 층 사무실을 얻었고, 스물세 살엔 직원이 50명 가까이 됐다.
회사는 커졌는데, 나는 너무 어렸다.
문제는 실력이었다.
나는 정식으로 개발을 배운 사람이 아니었다. 그저 내가 만든 현장에서 보고 따라 하며 배운 정도였다.
당시 홈페이지라는 건 UI/UX라는 개념도 없었다.
말하자면 전단지를 웹에 올려두는 수준이었다.
그 허술한 시대가 다행히(?) 내 무지를 가려줬다.
직원 채용도 감에 의존했다. 포트폴리오를 보고 “예쁘다” 싶으면 뽑았다.
나보다 나이 많은 직원들이 내 위에서 회사가 굴러갔다.
잘 알지 못하니 고객의 요구사항에 무조건 해주겠다고, 마구 계약을 했다.
그러다 조직은 점점 흔들렸다.
결국 임금 체불이 시작됐다.
누군가는 회사 PC나 기물을 가져갔고, 누군가는 내 사무실에서 농구를 했다.
20년이 넘었는데도 그때 농구하던 직원의 이름이 아직도 기억난다.
(대책없는 대표와 대책없는 직원들...)
그 농구공 튀기던 소리가 내 심장을 쥐어 비트는것같았다.
어린나이에 느껴본 힘든 시간으로 기억된다.
나는 직장을 다녀본 적이 없었다. 직원들의 마음을 이해할 준비도 없었다.
“왜 나한테들 이러지?” 억울함만 쌓였다.
지금 돌아보면, 모르는 채로 속도를 냈고, 그 속도를 감당할 시스템도 경험도 없었다.
어렸기에 가능했던 성공이, 어렸기에 무너진 셈이었다.(경험부족)
그래도 마지막까지 책임감 하나는 놓지 않았다.
빚이 쌓인 상태에서도 진행 중인 프로젝트를 끝까지 마무리하고 회사를 접었다.
카드사 독촉 전화가 쏟아졌고, 명절 떡값을 마련하려고 사채까지 써버린 나는 사채업체 전화까지 받게 됐다.
결국 나는 모든 전화를 꺼두고 숨어버렸다.
스물네 살이 감당하기엔 버거웠다.
(부모님 이야기는 여기서 길게 꺼내고 싶지 않다. 나는 어릴 때부터 누군가에게 기대는 방법을 배우지 못했다.
우리 사남매는 각자도생이었다.)
집주소를 두지 않고 친구 집을 전전했다.
주소를 두면 누군가 찾아오고 우편물이 날아올까 두려웠다.
2000년 초반, IMF에 금융의 흐름을 원활하게 하기위한 정책은 서민들의 빚으로 고스란히 남았다.
갚을 능력이 없는 나같은 대학생에게 조차 한도높은 카드를 발행했으니, 그러다보니, 정부에서는 신용회복위원회라는 비영리 기관은 만들었다.
결국, 나도 그곳을 찾아갔다.
내 빚을 조사한 뒤, 카드 사용처가 사업 운영과 관련된 것임을 확인해주셨다.
그리고 일정 부분 탕감 절차가 진행됐다.
나는 월 150만 원을 7년 동안 갚았다.
그렇게 신용을 회복했다.
신용회복을 끝낸 뒤에도, 한동안은 신용카드를 만들지 않았다.
그때부터 나는 ‘돈을 버는 법’보다 ‘돈과 신용을 대하는 태도’를 다시 배우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