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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풍경

그냥 그려낼 뿐

by abecekonyv

그림이란 대체 무엇인가. 사실 우리의 생각을 그리는게 아닐까. 철학의 모든 문제는 사실 심신이원론의 문제이다. 우리가 인식하는 세상이 곧 실재인가? 그것은 아무도 모른다. 이 질문은 현대 뇌과학과도 연결되는 질문이다. 감각질의 문제. 그리고 영국 경험주의자들과 데카르트를 이어서 현대 과학에까지 이어지는 인류의 큰 질문이다. 그것이 언제쯤 밝혀질 지는 요원해보인다. 과학이라는게 극적인 패러다임을 바꾸는 사람이 나오기도 하지만, 한발 한발 내딛는 성격을 가지기 때문에, 언젠가는 해결되리라는 믿음이 존재하게 된다.


소설에서 풍경 묘사란 어떤 역할을 수행하는가. 사실 우리는 풍경에서 모든 것을 본다고 말하지만, 그것을 모든 것이라고 말 할 수는 없다. 돌과 산이 장엄하게 어우러지는 산 속의 풍경을 묘사한다면, 적어도 그 실재에 엮여진 생각이다. 그것에 영원한 관념을 종속시킨다면, 현실에서 점점 멀어진다. 따라서 묘사라는 것은 그림이다. 그림이 그리는 것은 대상과 인식의 결부이기 때문이다. 온전한 사상을 그려내기란 불가능하다. 오로지 배경이란 인식과 실재의 결합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배경을 관념으로 설명한다는 것은 관념에 종속되는 것이지, 풍경이 주는 자기 기능을 잃은 것이다. 얕게 깔리는 분위기라는 것은 힘은 약할지언정 앞으로의 결과를 암시한다. 우리의 환경이 사회적인 성취를 예측하듯이 말이다. 콩 심은데 콩난다는 말은 인과율을 말한다. 배경을 묘사한다는 것은 외려 씨를 뿌리는 것이다. 소설 속에서 배경이란 씨와 같다. 우리가 흔히 문학에서 드러내고자 하는 것들을 씨라고 생각할진 모르지만, 오히려 배경이 씨의 기능과 같다. 모든 것의 가능성. 그러나 아직 발아하지 않은 종자의 모든 것. 배경 인물, 대화, 성격, 시나리오 등은 토양에 가까운 것이다. 그것은 확실하기 때문이다. 확실하진 않더라도 비옥한 토양은 식물의 생장을 결정짓는 확고부동한 조건이다. 따라서 배경 묘사란 파종하는 것이다. 그것이 나든 안나든, 우리는 배경이라는 씨앗을 뿌린다.


소설을 아주 넓게 본다면, 파종의 글쓰기이다. 일전에 나는 문학이 말하기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는 뉘앙스의 글을 쓴적이 있다. 그에 따르면 나의 지론이란, 소설은 애매모호하고 얕게 깔린 이야기이다. 그것이 현실과 어떻게 결합하는지는 작가가 알 수는 없다. 내부로 수렴하는 것이 소설이다. 밀란 쿤데라는 그런 소설의 특성을 직관한 것 같다. 소멸의 글쓰기. 그는 활자가 마치 얕게 흐려져 백지가 될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그것이 말하는 것은 소멸의 글쓰기이다. 내부로 수렴하여 0이 되는 글쓰기. 오로지 자신의 내부 구조에만 상충되어 부딪히고 그런 역학 작용이 자아내는 제로의 글쓰기 말이다. 작용과 반작용은 항상 동일하다. 그러나 실재에선 공기저항 같은 외부힘으로 그것이 서로 달라지게 된다. 그러나 텍스트는 다르다. 오로지 종이 위에 살포시 깔려서 서로 내부에만 종속된다. 텍스트의 세계에서 외압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오로지 닫혀있는 세계이기 떄문이다. 따라서 텍스트는 점점 소실되는 거이다.


그렇다면 그런 무화된 글쓰기는 우리에게 어떤 효용이 있는가. 사실 문학을 비롯해서 인문학의 쓸모를 직접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것에 대해 쓸모를 한다는 게 의미가 없는 이야기일 수도 있다. 그러나 효용에 대한 이야기도 피해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텍스트가 사라질지언정 문학의 구조는 살아남게 된다. 텍스트의 소실은 구체성의 소실이다. 그러나 그것이 다른 소설과의 구별점을 두는 차이는 분명 소설의 구조가 된다. 문체 역시 존재하지 않는다. 단지 구상의 구조만이 존재하게 된다. 문체는 기교이고 주체이다. 그러나 그것이 가지는 한계 때문에, 우리는 그것만으로는 구별하기 어려워진다. 그러나 인간은 개념적으로 인식하기에, 구조가 차이를 만들어 낸다. 따라서 텍스트의 소멸이 우리에게 남기는 것은, 우리의 인식 구조에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그것이 구체적인 물질이나 지식을 선물하진 않지만, 우리의 생각의 벡터, 혹은 정리된 체계를 부수는 역할을 한다. 책은 얼어붙은 강을 깨부수는 도끼여야 한다는 카프카의 말마냥, 우리의 사고 체계를 부수는 글쓰기만이 살아남게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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