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중과 상연, 내 안의 두 사람

by 구름 위 기록자

인도 레이오버의 긴 밤, 미뤄 두었던 숙제처럼 넷플릭스 〈은중과 상연〉을 틀었다.
SNS를 통해 얼개는 알고 있었다. 두 친구의 질투와 우정, 그리고 결국은 한 사람의 이야기.

그럼에도 재생 버튼을 누르기 전, 묘하게 주저했다.

어쩌면 내 삶에도 있었을 법한 기억을 건드릴까 두려웠던 걸까.

두려움이라기보다, 망설임이었다.


잔잔한 전개 속에서 어린 시절의 내가 곳곳에 숨어 있었다.
늘 빛나 보이던 친구, 그 친구와의 밀착과 거리두기, 질투와 우정이 뒤엉킨 시간들.
극은 은중의 시선으로 시작되지만, 어느 순간부터 나는 은중을 넘어 상연의 마음을 따라가게 되었다.


상연이 가장 어두운 시간에 떠올린 이는 은중이었다.
“밝아서 힘든 사람.”
그녀가 거의 마지막쯤 그녀의 마음속 고백을 쏟아낼 때,

스크린을 바라보던 나 역시 상연을 미워하다가도 결국 안아주고 싶었다.

그러나 가까울수록 독이 되는 관계가 있듯, 두 사람은 결국 각자의 길을 가야 했다.
은중의 선의가 때론 상연에게 사치와 위선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도와줄수록 스스로가 상처 입고도 놓지 못한 은중 역시, 단순히 착해서만은 아니었을 터.
끊을 수 없던 끈이 결국 상연의 선택으로 무참히 파괴될 때, 그들만의 겨울이 찾아왔다.


나는 그 겨울 속 은중이 더욱 귀하게 느껴졌다.
차가운 바람에도 머무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려는 사람.


상연 또한 끝없는 어둠을 견뎌냈다. 악바리든 오기든, 결국 자신을 증명하게 만든 힘이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녀는 그녀 곁을 내어주지도, 바라보지도 못했다.


그녀가 그토록 불행을 말하면서도, 마음을 내어준 사람들은 있었다.

은중, 은중의 엄마, 상학선배, 그녀의 오빠 그리고 어쩌면 그녀의 전 남편까지.
그럼에도 상연은 스스로의 벽을 더 높였다. 과연 그 안으로 누가 들어가 그녀를 구원할 수 있을까.


그런 그녀는 죽음을 앞두고서야 모든 것에 인사를 건넨다고 했다.

자신의 주변에 모든 순간이 다 소중해졌기 때문이다.

그녀의 단단한 가드를 내려놓게 한 것이, 아이러니하게도 죽음의 문턱이라니.

그리고 그녀가 행복했던 순간은, 그렇게 애증이었던 은중에게서 용서를 받고 마침내

자신이 받아들여졌다고 믿었을 때였다.


생각해 보면 나 역시 상연처럼 “모든 것이 잘 안 된다”는 어둠 속에 있었던 적이 있다.
그때 나를 일으켜 주려던 사람들이 있었다.

그래서 그 겨울을 잘 이겨낼 수 있었다.


상연을 향한 시청자들의 분노는 미움이 아니라, 어쩌면 함께 울고 싶은 애정일지도 모른다.

은중에게 있던 친구들의 애정처럼, 우리가 상연을 일으켜주고 싶어서 그런 애정이라고 생각한다.


매 회차 시작에 보이는, “너는 참 좋겠다.”
처음엔 은중이 상연에게 건네는 줄 알았지만, 끝내 서로에게 보내는 말이었음을 깨닫는다.

송혜진 작가의 말처럼, 우리는 누구의 은중이자 상연으로 살아간다.
하지만 나는 스스로에게만큼은 은중이 되고 싶다.
하루가 고되고 힘들어도, 자신을 파괴하며 태워버리지 않기.
외로운 세상에서 자신을 지키는 용기,

숨고싶은 과거를 불태울지라도 미래까지 태워선 안 된다는 다짐.


나 역시 내가 만난 수많은 은중과 상연, 그리고 내 안의 은중과 상연 덕에 지금의 내가 되었다.
불안정하더라도, 언젠가는 지금보다 더 단단히 걸어가리라 믿는다.

다음 오프에는 한 번 더 곱씹으며 이 드라마를 볼 것이다.

내 안의 상연과 은중을 안아주기 위해.

그리고 내 인생의 은중들에게 고맙다고 전하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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