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워졌다는 문장 앞에서

100번째 기록, 행성 2의 시작 (행성 -19)

by 이청목

행성 시리즈에 발행하려고 했다.


늘 하던 것처럼 발행 버튼을 누르기 직전이었다.


그런데 화면에 낯선 문장이 떴다.


“더 이상 새로운 글을 연재할 수 없는

브런치 북입니다.”


순간 숨이 멎는 느낌이었다.


처음에는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 못해서

뭘 잘못 눌렀나 싶었다.


혹시 그동안 써온 글들이 사라진 건 아닐까,

실수로 무언가를 지워버린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그 짧은 몇 초 동안

머릿속에서는 온갖 최악의 장면이 지나갔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다시 한번 시도해 보았다.


결과는 같았다.


이번에는 당황하지 않고

천천히 문장을 읽었다.


“연재할 수 있는 최대 분량을 모두 채웠습니다.

다른 브런치 북을 선택해 주세요.”


그제야 이해했다.


사라진 것이 아니라 채워졌다는 뜻이었다.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11월 12일,

행성 시리즈 첫 화를 시작으로

어느덧 31화가 되었다.


브런치 북에는

30화까지만 담을 수 있다는 사실을

그때 처음 알았다.


그리고 지금,

이 글은 브런치에서 쓰는 100번째 글이다.


2025년 7월,

나는 브런치에 첫 글을 올렸다.


월, 수, 금,

주 3회는 반드시 글을 발행하겠다고

다짐했었다.


누가 강요한 약속은 아니었다.

스스로에게 한 약속이었다.


처음부터 쉽지 않을 거라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막상 시작해 보니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버거웠다.


이혼 후,

아직 아물지 않은 마음으로 글을 썼고,

수술 후 병원 침대에서도

발행 시간을 맞췄다.


몸은 누워 있었지만

마음은 글을 붙잡고 있었다.


누가 시켜서 그런 건 아니었다.


다만 글을 쓰지 않으면

내 안에 쌓인 감정이 길을 잃은 채

부풀어져 터져 버릴 것 같았다.


글은 나에게

숨구멍 같은 것이었다.


처음 썼던 글들을 다시 읽어 봤다.

지금의 글과는 많이 다르다.


감정을 분출하듯 써 내려간 문장들.

정제되지 않은 표현들.


오타가 있어도

고치지 못한 채 남겨둔 글도 있었고,

상처처럼 남아 다시 보지 못한 글도 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니

그 문장들 또한 나를 이루는 일부였다.


이제는 감정을 그대로 쏟아내기보다는

다듬고 눌러 담은 글을 쓰려고 한다.


내가 성장한 만큼

글도 함께 성장한 것 같다.


아픔을 과장하지 않고

슬픔을 소비하지 않는 글.


나와 독자가

서로 공감할 수 있는 글을 쓰고 싶다.


내가 글을 쓰는 이유는 단순하다.


내가 쓴 글을 읽고


“나도 그랬다”


혹은

“나만 그런 게 아니었구나” 하고

잠시라도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행복 성장기는

거창한 성공 이야기가 아니다.


행복감이

–50에서 시작해 0으로

올라가는 기록이다.


어쩌면 남들에게는

아주 사소한 변화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에게는 분명한 성장이었다.



이제

새로운 브런치 북을 열어야 한다.

끝난 것이 아니라

다음 장으로 넘어가는 것이다.


행성은 계속 이어진다.


처음 목표했던 것처럼

행복 성장기 –19부터 다시 시작해

0이 될 때까지 계속 쓰려 한다.


지금 이 글은

브런치에서 100번째 글이자

행성 2의 첫 장이다.


100이라는 숫자가

대단한 기록처럼 느껴지지는 않는다.


다만

멈추지 않았다는 증거다.


나는 여전히 배우는 중이고

행복은 아직 완성형이 아니다.

그래서 멈추지 않는다.


오늘도 한 칸,

조용히 앞으로 간다.


그래서 나는 행복하다.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