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햇빛 아래, 다른 하루를 사는 사람들
비인두암으로 치료 중인 환우분이 차에 올랐다.
나는 평소처럼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환우분도 짧게 웃으며 인사를 받아줬다.
차를 출발했다.
병원으로 가는 길,
햇빛이 강하게 내려오고 있었다.
따뜻하다는 느낌보다
뜨겁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계기판 온도는 15도였다.
오전 11시 30분.
3월인데,
여름이 먼저 와 있는 것 같았다.
차 안은 조용했다.
엔진 소리와
바퀴가 도로를 스치는 소리만
가볍게 이어졌다.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말을 꺼냈다.
“날씨가 참 좋네요.”
환우분은 창밖을 보다가
조용히 말했다.
“날씨가 좋으면 안 되는데.”
처음에는
잘못 들은 줄 알았다.
나는 한 박자 늦게 물었다.
“왜요, 무슨 일 있으신가요?”
환우분은 숨을 한 번 고르고
말을 이었다.
“날씨가 좋아도
나갈 수가 없잖아요.”
그 말에
더 이상 이어지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나는 잠시 앞만 보고 있었다.
운전대를 잡고 있었지만
머릿속은 멈춘 것처럼 조용해졌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괜찮다는 말도,
힘내시라는 말도
쉽게 꺼낼 수가 없었다.
돌아다니고 싶어도
어지러워서 나갈 수 없고,
맛있는 걸 먹고 싶어도
항암치료 부작용으로
속이 울렁거려서 먹을 수 없다고 했다.
나는 조용히 말했다.
“제가 괜한 말을 꺼냈네요.”
환우분은 괜찮다며
다시 창밖을 바라봤다.
차창 밖에는
노란 개나리꽃이 막 피어나고 있었다.
“우리 동네는
벌써 다 폈겠네.”
그 목소리는 작았지만
이상하게 오래 남았다.
나는 거울로
환우분의 표정을 잠시 봤다.
말하지 않은 이야기들이
그 안에 담겨 있었다.
보고 싶은 것,
가고 싶은 곳,
하고 싶은 시간들이
그대로 머물러 있는 것 같았다.
차는 그대로
병원을 향해 달렸다.
도착해서
차 문을 열었다.
환우분은 천천히 발을 내디뎠다.
한 걸음,
또 한 걸음.
평소보다 더 느리게 느껴졌다.
“이따가 끝나고 전화할게요.”
그 말을 남기고
병원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그 뒷모습을
잠시 보고 있었다.
다시 운전대를 잡고
다른 환우분을 향해 출발했다.
하지만 조금 전의 말이
계속 머릿속에 남았다.
날씨가 좋으면 안 된다는 말.
같은 햇빛을 보고 있어도
같은 하루를 살고 있는 건 아닐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그 햇빛 아래를 걷고 있지만,
누군가는
그 햇빛을 바라보는 것조차
쉽지 않은 하루를 보내고 있다.
나는 그 사실을
자주 잊고 사는 것 같다.
내 기준에서 괜찮은 하루가
누군가에게는
버티는 하루일 수도 있다는 걸.
그래서 말 한마디도
조금 더 천천히 꺼내야겠다고 생각했다.
같은 말을 건네더라도
한 번 더 생각하고,
같은 하루를 살아도
서로 다른 하루일 수 있다는 걸
잊지 않으려고 한다.
오늘도 나는
병원으로 가는 길을 달린다.
그리고 그 길 위에서
다른 하루를 살아가는 사람을
조용히 만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