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들과 함께한 첫 제주여행

우리를 위한 금지어 # 행성 -41

by 이청목

가족들과 함께 첫 제주 여행을 다녀왔다.


각자의 가족끼리, 지인끼리는 다녀왔지만

엄마와 누나, 나, 이렇게 셋이 다녀온 건

처음이었다.


2박 3일의 짧은 여행이었다.


갑작스럽게 정해진 여행이었지만

우리는 알차게 보내기 위해,

각자 가고 싶은 곳 한 곳과

먹고 싶은 음식을 한 가지씩 선택하기로 했다.


설레는 마음으로 어머니 집에서 한데 모여

공항으로 출발했다.


새벽 세 시 반,

공항으로 가는 길은 한적하고

어둠만 가득했다.


공항 안에서 셀프 체크인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앞장서서 안내해 주었다.


누나와 엄마는 그런 나를 보며

든든하다며 추켜세워줬다.


뻔하고 기분 좋아지라고 하는 칭찬에

정말 기분이 좋아졌다.


만 7세의 막둥이 조카도

처음 타보는 비행기에 설레어했다.

사진을 찍어주면 씩 웃으면서,

갖가지 모델 자세를 취했다.


나는 여행 중에

우리가 더 좋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

한 가지씩 금지어를 내자는 제안을 했다.


여행 동안 감정이 상하지 않도록,

모두가 편안하게 지내기 위한 작은 장치였다.


그리고

금지어를 내뱉는 순간 1만 원씩 내야 했다.


엄마는 잔소리하지 않기.

우리가 엄마한테 잔소리하면 만 원을 내야 했다.

우리가 평소에

엄마한테 잔소리를 많이 했던 모양이다.


누나는 살 빼란 말 하지 않기.

우리가 누나에게 살과 관련된 얘기를 하면

만 원을 내야 했다.


나도 다이어트하고 있는 처지에서

누나에게 이런 말은 못 하는데

아무래도 엄마를 저격하는 것 같았다.


나는 과거 얘기하지 않기(돈 없는 거 포함)

과거 얘기를 하면

꼭 예전에 돈을 잘 벌던 시절과 비교가 된다.

그래서 과거 얘기를 하지 않는 것을 선택했다.


결코 만 원을 내지 않으리라는 다짐으로

금지어를 지키려 애썼다.




비행기를 처음 탄 막둥이는

두리번거리며 비행기에 탑승했다.


엄마는 막둥이에게 이건 이렇고 저건 저렇고

이따가 하늘 보면

구름이 가까이에 있을 거란 말을

쉼 없이 했다.


엄마도 두 번째 제주 여행이었지만,

처음 비행기를 타는 막둥이에게

이것저것 알려주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았다.


드디어 비행기가 하늘을 날기 시작했고,

조카는 신기한 듯 표정을 지었다.


KakaoTalk_20251209_161855008_01.jpg 제주로 가는 비행기


한참 창밖을 보며 새벽의 야경을 사진 찍고,

해가 떠오르는 사진을 찍고 나서야

곯아떨어졌다.


나도 잠시 눈을 감았다.


'띵띵띵'

이제 제주공항에 도착할 테니 창문을 열고

의자를 바로 세우라는 안내였다.


역시 제주도까지 가는 길은

졸려서 눈을 감으면,

도착한다고 안내가 나오는 애매한 거리다.




제주공항 밖으로 나왔다.


먹구름이 잔뜩 끼어있었고,

바람도 많이 불고 추웠다.


우리는 바람을 이겨내고

렌터카를 타고 새별오름으로 향했다.


새별오름에 도착하니

도심과 다르게 공기가 청량했다.


KakaoTalk_20251209_155619254_01.jpg 새별오름


마른풀 냄새가

차가운 공기와 섞여 콧속으로 들어왔다.

콧속이 뻥 뚫리며 숨을 계속 들이마시게 했다.


오름에는 관광 온 버스 몇 대가 전부였다.

할머니 할아버지들 대화 소리를 들어보니

어제만 해도 눈도 많이 오고 바람도 많이 불어서

여행을 제대로 즐기지 못했다고 했다.


그 말을 들으니

오히려 오늘이 좋은 날씨라서 다행이었다.


오름 정상까지 올라가고 싶었지만

슬러시처럼 눈이 녹아버린 오름은

우리에겐 좀 버거웠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바로 두 번째 장소,

라온 더마파크로 향했다.


더마파크는 말을 타며 공연을 하는 거라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만족하는 공연이었다.


북을 치며 함성을 지르며 시작하는 공연은,

처음부터 심장을 두근거리게 했다.


KakaoTalk_20251209_155619254_02.jpg 라온 더마파크


엄마와 나, 막내 조카가

공연을 재미있게 보고 있었다.


누나는 우리 가족이

이렇게 즐겁게 웃는 모습을 보며,

'왜 이제야 이런 시간을 가졌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눈시울이 붉어졌다고 했다.


꼭 제주가 아니더라고

어디든 갈 수 있었을 텐데,

우리가 이제야 함께 여행하는 게

미안했던 것 같았다.


우리는 맛있는 점심을 먹고

막둥이를 위해 알파카 목장으로 향했다.


알파카에게 당근 먹이를 주고 싶어 하는

막둥이를 위해 당근을 구매했다.


알파카가 거침없이 다가오고,

침까지 뱉는 모습을 보자

막둥이는 결국 용기를 내지 못했다.


막둥이는 풀이 죽어 있었다.


그런 막둥이를 다시 힘이 나게 한 건

귤 농장이었다.


KakaoTalk_20251209_161855008.jpg 제주도 귤 농장


귤 농장은 나도 처음 가봤다.

주렁주렁 탐스럽고,

맛있게 생긴 짙은 주황색 귤이 달려 있었다.


추운 날씨만 아니었다면

더 오래 머물며, 귤 향이 가득한 그 시간을

천천히 즐기고 싶었다.


첫날의 제주 여행은 이렇게 마무리가 되고,

저녁을 먹기 위해 숙소 근처

흑돼지 정육식당으로 향했다.


너무 맛있는 담백하고 껍질이 쫀득한 고기 맛에

우리 모두 감탄했다.


다시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편의점에 들러

막걸리와 주전부리를 사 왔다.


그리고 오늘 여행의 담소를 나눴다.


금지어를 정한 게 정말 잘했다고 생각했다.

비슷하게라도 말하려 하면

득달같이 “어! 금지어 만 원 내”를 외치면

다시 조용해졌다.


서로의 감정을 이해해 주고,

말하지 않아도 서로의 감정을

알게 되는 순간들이었다.


금지어 덕분인지, 여행 덕분인지

서로의 마음이

조금 더 가까워진 순간들이었다.


우리 가족의 첫 제주 여행.


첫날은

행복한 순간들이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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