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의 나에게 해주고 싶은 말
집 앞 계단에 앉아 담배를 한 대 피웠다.
‘후….’ 뿌연 연기가 가로등 불빛에
스며들며 사라졌다.
일에 시달리고, 사람에 시달리고,
술 영업까지 했다.
집 앞에 도착하니 긴장이 풀렸다.
스르륵 눈이 감겼다.
그리고 갑자기 다리에서
뜨거운 고통이 몰려왔다.
그 뒤의 기억은 없다.
눈을 떴을 땐 차가운 응급실 침대였다.
새벽에 출근하던 차가 쓰레기봉투인 줄 알고
나를 밟고 지나갔다.
말도 안 되는 교통사고가 벌어졌다.
이 사고는 지금부터 15년 전,
뜨거운 여름의 온기가 사라지고
시원한 가을이 막 시작될 때의 일이다.
나는 유통회사에 다녔다.
낮에는 회사 안에서 일을 하고 저녁에는
영업을 위해 술도 마셔야 했다.
실적이 안 나오면 윗사람의 눈치를 보게 되고
동료들은 나보다 빠른 것처럼 느껴졌다.
저녁에는
친구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술 영업이 종종 있었다.
술 영업이 있는 날이면
사람들이 알만 한 브랜드 옷,
구두, 셔츠를 입고 출근했다.
사고가 있었던 날도 술 영업이 있던 날이라서
어김없이 잘 차려입고 출근했다.
출근길 버스에는 지옥이 따로 없었다.
네 정거장밖에 되지 않는 시간 동안
혹여나 구두가 밟힐까? 신경이 쓰이고,
셔츠가 어딘가에 걸려 올이 나갈까 걱정됐다.
회사에 도착하면 사람들의 복장만 봐도
저녁에 술을 마시는지,
안 마시는지 알 수 있었다.
다른 팀과의 경쟁은 실적만이 아니다.
자존심이 걸린 치장된 겉모습도 있었다.
누구 시계가 더 좋은지, 누구 구두가 더 비싼지,
시선은 쉴 새 없이 움직였다.
일이 시작되고 팀원들의 실적을 확인했다.
다른 팀들의 실적까지 확인하고 나면,
빨리 나가서 술이나 마시고 싶었다.
답답한 마음을 뒤로한 채 일에 집중했다.
저녁이 되면 퇴근이 아닌 술자리로 향했다.
친구라고 부르지만 사실상 업체 사람이다.
그 사람의 비위를 맞춰가며
술을 한잔 두 잔 따라 줬다.
그 사람이 웃으면 따라 웃고,
심각한 얘기를 하면
나도 심각하게 들어줘야 했다.
가식적인 웃음과
감정을 그 사람에게 보여주고
택시를 타고 집에 도착했다.
그리고
집 앞 계단에 앉아 담배를 한 대 피운 것이었다.
열심히 살아왔다고 생각했던 내 삶은
그때 피운 담배 한 대로
인생의 쓴맛을 봐야 했다.
사고로 병원에 3개월을 입원해야 했다.
사고가 났을 땐 가을이 시작되는 시기였는데
퇴원했을 땐 겨울이었다.
그동안 회사에 있던 내 책상은 사라졌다.
부서진 발목에 평생 쇠를 박은 채 살아가게 됐고
발목이 꺾이는 각도가 정상으로 나오지 않아
심한 운동도 하면 안 된다.
비가 오거나 습도가 높은 날이면
지금도 욱신거린다.
15년 전의 청목이에게
말해주고 싶다.
청목아
회사 생활 하느라 고생이 많다.
하루하루 버티느라
네 몸이 얼마나 지쳐 있었는지
나는 이제야 알 것 같다.
그런데 사고 났던 하루가
네 인생에 그렇게 큰 상처를 남길 줄은
그땐 몰랐겠지.
지금의 나는, 그날의 네가
조금만 더 자신을 아껴줬으면 좋겠어.
그때의 너는 잘못 산 게 아니라
너무 열심히 살았던 것 같아.
열심히 살았던 하루의 피곤함을
담배 한 대로 풀려했던 너의 마음도 알아.
그래도 그날 담배 한 대가 남긴 상처보다는
힘들더라도 치열하게 살아갔던 시간이
더 행복한 시간이라는 걸,
네게 말해주고 싶어.
그러니까 담배 피우지 말고
그냥 집으로 들어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