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첫 거짓말

과거의 나에게 해주고 싶은 말

by 이청목

내가 살던 곳은

영등포구 도림동이었다.


어릴 적 우리 가족은 단칸방에 살았다.


밥을 짓는 것도

연탄불에 해야 하던 시절이었다.


풍로를 처음 샀을 때,

편하게 밥을 할 수 있어서

좋아했다던 엄마.


재래식 화장실은 밤이면 무서워서

가지도 못했다.

그래서 각 집에 요강을 놓고 살았다.


내가 5살, 누나가 초등학교 1학년일 때

엄마와 아빠는 맞벌이했다.


지금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누나가 학교를 가면,

엄마는 내 머리 옆으로

구구단 카세트테이프를 켜놓고 출근했다.


“엄마 다녀올게, 누나 오면 같이 놀아”


이 일은 이, 이이는 사, 이삼은 육.

그 당시 나는 구구단이 노래인 줄 알고

매일 따라 불렀다.


엄마까지 출근하고 나면 나는 늘 혼자였다.


자나 깨나 누나가 언제 오는지

애착 베개를 끌어안고,

집 앞 골목 어귀에 앉아 있었다.


하교 시간이 되면

누나는 친구들과 함께 왁자지껄 떠들며

골목 위에서부터 내려왔다.


친구들과 노는 누나를 방해하면

혼날까 봐 눈치를 보며 조심했다.


어쩌다 누나 친구들이 같이 놀아 주면

해가 떨어지는지도 모르고 놀만큼 재미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누나도 겨우 여덟 살이었다.


같은 환경에서 자란 아이들끼리

삼삼오오 무리 지어 술래잡기도 하고,

다방구도 했다.


동네 골목이 놀이터였다.

전봇대에 손을 대고 술래잡기를 했다.


골목에서 놀아도 무서울 게 없었다.


우리 옆집은 숙이 누나 할머니,

그 옆집은 주인 호랑이 할아버지,

앞집은 숙이 누나네 집이었다.


이미 동네 사람들이 누군지 다 알았다.


밖에서 실컷 놀다 보면

엄마들이 하나씩 불러 댄다.


“누구야~ 밥 먹어 얼른 와라.”


엄마한테 하나씩 불려 가다 보면

누나랑 나만 남았다.


누나는 내 손을 꼭 잡고

털래털래 집으로 들어갔다.


집에서부터는

누나는 나랑 친구가 된다.

그 시간이 좋았다.


엄마는 늦게 오지만

고작 초등학교 1학년밖에 안 된 누나에게

안정감을 느꼈다.


어느 날이었다.


엄마가 일찍 왔다.

누나와 나는

방 안에서 술래잡기하며 놀았다.


내가 술래여서 눈을 감고 숫자를 셌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눈을 떴을 때 누나는 없었다.


숨을 곳은 단 하나 장롱이었다.

문을 열어 누나를 잡았다.


내 손을 뿌리치려는 누나를

이겨 보겠다는 마음으로

온 힘을 다해 밀쳤다.


쿵! 누나는 문짝 모서리에 부딪혔다.


누나가 나를 보며

여기 어떻게 됐어? 피나? 하고 물었다.

피가 살짝 고였다.


누나가 앞으로 나랑 안 놀아 줄까 봐

겁이 났다.


그리고 밖에서 밥하고 있는 엄마한테

혼날까 봐 거짓말을 했다.


"아니 피 안 나…"


얼마나 됐을까?

누나 눈 밑으로 피가 흘렀다.

무서웠다.


내가 거짓말해서 잘못되는 건 아니겠지.


어? 야 피나잖아.

누나는 울면서 엄마를 불렀다.


엄마는 누나를 보고 놀래서

둘러업고 병원으로 달렸다.


천만다행으로

눈에 큰 문제는 없었지만,

눈 밑을 몇 바늘이나 꿰매야 했다.


상처 부위가 조금만 높았으면,

큰일 날 뻔했다는 의사 말에

나는 풀이 죽었다.


앞으로 누나가 안 놀아 주겠지.

엄마한테도 혼날 텐데.


누나가 시뻘건 피를

눈 밑에 흐르게 한 것도 미안했고

거짓말을 한 것도 미안했다.


그땐 혼자가 될까 봐 거짓말을 했다.


엄마는 혼내지 않았다.


누나는….

가끔 나를 머리빗으로 때리긴 했지만

훈계라고 생각한다.


내 인생에서 기억은 그때부터 시작됐다.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상처를 준 것.

처음으로 거짓말을 한 것.

혼자가 되고 싶지 않은 마음.



5살의 나에게 말해 주고 싶다.


청목아

그날 많이 무서웠지.


누나가 다친 것보다,

혼자가 될까 봐 더 무서웠을 거야.

그 마음, 알고 있어.


그때의 너는 잘못한 아이가 아니라,

혼자 남겨지기 싫었던 아이였어.


그러니까 너무 오래

마음에 담아 두지 않아도 돼.


그리고 청목이가 놀란 만큼

누나도 많이 놀랐을 거야.

빨리 엄마한테 말하고,

누나가 피나기 전에 '호' 해주자.


아! 그리고 엄마가 틀어준 구구단 노래

끝까지 잘 기억해

학교 입학하면 칭찬 많이 받을 수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