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훈련
더이상 국가에 정신이 보이지 않게 되었다.
그 말은 즉, 국가를 운영하는 근본 철학이 부재하다는 것을 실감한다는 것이다.
이 사회에 그럴싸한 슬로건은 넘쳐난다.
"공정한 사회를 위하여"
"약자와의 동행"
하지만 왜 그것을 추구해야하는 건지에 대한 근본적 논의가 없어졌다.
이제 국가는 정신이 아니라 감정으로 움직이는 기계에 불과해졌다.
"공정"은 최근 들어 뉴스 등에서 가장 많이 접하는 단어이다.
공정은 갑자기 절대적인 무언가로 추앙받게 되었다.
그렇지만 공정은 여러 사회정의중 하나에 불과하며,
공정을 위해 침해되는 다른 정의에 대한 언급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는다.
블라인드 채용은 얼핏 보면 사회 정의 실현처럼 보인다.
하지만 실제로는 한 쪽의 이익을 떼어다가 다른 한 쪽에 이전한 것에 불과하다.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대학에 진학한 학생들은
"그런 노력을 기업이 알아줄 것"이라는 사회적 약속과 교육자의 권유를 믿고
가시밭길을 선택했다.
또한 기업 입장에서 학력은 차별이 아니라 신뢰성 높은 자료이다.
학력은 성실성과 기초 학습 능력, 장기적 목표에 대한 지속성을 알게 해준다.
이걸 빼앗고 "모두 같은 위치에서 다시 경쟁하라"는
공정의 탈을 쓴 불공정이다.
좋은 대학에 진학한 학생들도 마찬가지로 국가가 권리를 보호해야할 대상이다.
하지만 세상은 공정이 불러일으키는 감정에 관심의 초점을 둔 채, 그들을 소외시키고 있다.
물건을 만들 때, 일류는 왜?를 먼저 생각한다.
왜 이 물건을 만드는가, 이 물건은 고객에게 어떠한 가치를 제공하는가.
한국에서는 현재 왜?라는 질문이 사라졌다.
추상적인 선의를 달성하기 위해서 여러 입법 활동을 펼치지만,
그것이 궁극적으로 어떤 사회를 만들기 위함인지에 대한 논의는 없다.
뜬구름 잡는 낙관주의만 설파할 뿐이다.
왜 공정을 추구하는 지 우리가 제대로 이해했다면,
열심히 공부한 학생들에 대한 보상책도 제대로 논의했을 것이다.
또한, 학력을 배제한 새로운 인사 채용 모델 실현이라는 부담을 기업에게만 부과하지 않았을 것이다.
정치는 이제 국민의 감정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선동장치에 불과하다.
블라인드 채용은 민주주의 제도로 포장되어 있지만,
그 실행 방식은 실상 전제 군주적 조치에 가깝다.
한쪽의 권익을 강제로 훼손해 놓고,
아무런 설명도, 보상도, 논의도 없이
“이것이 우리가 추구하는 정의다”라고 말하며 끝냈다.
학생들과 사회 초년생 구직자들에게
사전 동의 없는 희생을 요구하면서,
그저 “감당하라”는 방식은
민주의 껍질을 뒤집어쓴 일방적인 권력의 폭력이다.
몽테스키외가 부르짖던 법의 정신은 이제 한국에 없다.
애초에 없었다.
한국의 문화나 사람들의 풍속 등에 대한 고려 없이 일본 것 그대로 들여온 후과를 감당하는 중이다.
법이 있고 사람이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있고 법이 있다.
우리 국민은 어떤 사람들인지에 대한 논의와 함께 법이 만들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싱가포르를 예를 들면, 그들은 총리 독재를 받아들인다.
하지만 일반적 사람들의 입장에서보면 이상하게도 그들의 나라는 굉장히 부유하다.
왜? 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던져가며 만들어지는 법은 이제 없다.
표심을 위해 움직이는 폭주 기관차만 있을 뿐이다.
나는 국가가 시시해졌다.
위대한 정신의 산물이 아니라
그저 필요에 따라 이것 저것 기어붙힌 누더기에 불과하니까
어릴 적 나의 우상은 이제
스스로 망가져가는 괴물에 불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