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졌지만, 달라지지 않았다. 자궁이 없어도 나는 소중하니까
20대 중반까지만 해도 결혼을 하면 아이가 있다는 건 당연한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2018년,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회사에서 다양한 인생들을 마주하며 생각이 바뀌었다.
나의 첫 사수는 임신 중이셨고, 세 달 뒤 출산 예정이었다. 그녀가 출산과 육아 휴가를 내고 회사를 잠시 떠났을 때, 대체 인력은 채용되지 않았고, 그녀의 업무는 나와 유관부서에서 나누어 맡게 되었다. 그녀가 육아 휴직을 마치고 돌아올 즈음에는 대표가 그녀의 자리는 없는 거라 생각한다는 얘기를 팀장님께 들었다. 그녀는 돌아왔지만, 그녀의 자리는 늘 불안했다. 결혼 전에는 육아와 일을 병행하는 워킹맘들의 삶의 무게를 지금보다 더 실감하지 못했지만, 퇴근 시간이면 제시간에 퇴근해 눈치를 보며 아이를 데리러 나가는 그녀의 모습이 참 안쓰러웠다.
팀장님께서는 두 아이의 아빠였고, 외벌이셨다. 귀여운 아이들의 모습을 사진과 영상으로 보여주시며 행복해하셨지만, 두 아이가 있는 가장의 무게도 늘 느껴졌었다. 타 직종에서 이직하셔서 연봉을 낮춰 입사하셨고, 주말에는 원래 일하셨던 업종으로 아르바이트를 하셨다.
그리고 회사에는 미혼과 기혼, 그리고 아이가 있는 기혼뿐이라고 생각했던 내게 새로운 인생이 눈에 들어왔다. 우리 부서의 40대 신부장님께서는 아내분과 고양이 두 마리와 함께 살고 계셨고, 40대 총무팀 부장님도 아내분과 두 분이서 살고 계시는데 주말마다 아내 분과 캠핑을 다니는 게 낙이라고 하셨다. 두 부장님 모두 아이가 없었다.
'아이를 낳는다는 건 필수가 아니라 선택이 될 수도 있구나.' 그때 나는 딩크족을 알게 됐다.
사실 처음부터 아이를 무조건 낳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은 아니었지만, 남편과 결혼을 준비하면서 우리 둘의 생각은 아이를 낳지 않는 방향으로 흐르고 있었다. 아이를 낳지 않으려는 이유는 다른 분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좋은 부모가 될 자신이 없었다. 아이들을 귀여워하고 좋아했지만, 키우는 것은 확실히 다른 문제라고 느껴졌다. 하고 싶은 대로 해야 직성이 풀리는 내가 과연 아이에게 좋은 부모가 될 수 있을까? 남편과도 서로 살아온 방식과 생각들을 맞춰가는데 종종 어려움이 있는데,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들을 아이에게 강요하지 않고, 아이의 기질을 존중해 주는 좋은 엄마가 될 수 있을까? 확신이 없었다. 내가 나의 방식을 아이에게 고집하고, 그러지 않는 아이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고, 아이에게 상처를 줄 게 겁이 났다. 이것도 실패가 두려워 그 상황 자체를 피해버리는 나의 비겁한 모습 중에 하나였을까. 진지하게 고민했던 적도 많았지만, 결혼 3년 차까지도 우리의 생각은 바뀌지 않았고, 시간이 지날수록 오히려 딩크족으로 살아가겠다는 마음의 확신만 들뿐이었다.
근데 내가 올해 3월 자궁내막암으로 자궁적출 수술을 받은 것이다.
딩크족이었으나, 아이를 낳을 수 없는 몸이 되었다.
뭐가 변한 걸까?
지난 3월, 자궁적출수술 전 주치의 교수님께서는 임신 계획이 있는지, 자궁 보존을 원하는지를 물어보셨고, 우리는 단호하게 '적출을 원한다'라고 말씀드렸다. 아이 계획이 없었기 때문에 미련도 없었다. 자궁 안에 있는 암 덩어리를 자궁과 함께 하루라도 빨리 꺼내버리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자궁 없이 지낸 지 5개월이 지난 지금 내 마음은 어떨까? 자궁이 없는 건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내가 의식하지만 않는다면 생리를 하지 않는다는 것 말고는 크게 달라진 건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날이 갈수록 상실감이 스며들기 시작했다.
몇 주 전, 쌍둥이를 출산한 친한 언니의 아이들 옷을 사려고 아이들 옷가게에 방문했다. 나는 이 사이즈가 맞을까? 안 맞을까? 혼자 고민하다가 결국 옷가게에 함께 계셨던 어떤 분께 조심스럽게 물어봤다.
"제가 아이가 없어서요, 이 사이즈가 18개월 아이에게 맞을까요?" 예전에는 그냥 '아이가 없다' 그뿐이었는데, 이제는 속으로 '나는 아이를 못 낳는다'라는 생각이 동시에 떠올라 울컥했다.
오전에 아파트 둘레길을 산책하다 보면 유모차를 끌고 함께 걸어가는 또래 여성들을 마주칠 때마다, 아이의 손을 잡고 학교에 데려다주는 엄마, 아빠들을 볼 때마다, 병원에서 임신 가능성 없으시죠?라고 물을 때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먹먹함이 차올랐다. 남편이 친구의 카톡 프로필 사진을 보며 친구의 아이가 귀엽다고 할 때마다, 지나가는 아이를 보며 귀여워할 때마다, 가슴이 저미며 남편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나랑 결혼하지 않았다면.. 아이를 낳고 아이가 있는 행복을 느끼며 살았을텐데..'
'안 낳으려고 했잖아. 원하지 않았잖아. 근데 너 왜 그래?' 스스로에게 물었지만 쉽게 답을 내릴 수가 없었다. '선택'이라는 무게가 다르게 다가오는 걸까. 이제는 아예 선택지가 사라졌다는 사실에서 오는 묘한 상실감이 나를 지금 슬프게 만드는 것일까. 나는 상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던 것일까. 원하지도 않았으면서 잃고 나니 자기 연민에 빠져있는 모습이란.. 간사하다는 생각이 들어 스스로 혐오감까지 들었다.
근데 며칠 전, 암 진단을 받고 수술 전까지 썼던 다이어리를 펼쳐 읽어보고 깨달았다. 어쩌면 나는 상실을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는 중일지도 모른다. 나는 상실을 경험하며 비로소 나의 모든 것이 소중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평생 소중한 줄 모르고 살았지만, 내 몸에서 소중하지 않은 것은 단 한 개도 없었구나.'
수술 전에는 눈앞에 닥친 수술과 치료에만 집중해 상실이라는 감정을 마주하고, 다독일 여유가 없어서 몰랐던 것이다.
누구나 예상치 못한 고통의 순간을 겪을 수 있다. 그때 우리는 자신의 모습을 안쓰럽게 바라보며 오히려 스스로를 더욱 불쌍한 존재로 만들기도 한다. 내가 나를 안쓰럽게 보면 볼수록 나는 세상에서 가장 불쌍하고 불행한 사람이 된다. 몇 달 전 일기를 보니, 암 덩어리가 자궁 내에만 국한되어 수술로만 끝난 나의 상황에 한없이 감사해 놓고, 이제는 자궁이 없다는 상실감에 일상과 삶이 흔들리고 있던 것이다.
나를 가장 망가뜨릴 수 있는 것도, 가장 따뜻하게 감싸 줄 수 있는 것도 모두 나 자신이었다. 이제는 자기 연민이 아니라 자기 자비로 나를 안아줘야지. 나아가 남편과 나. 이제는 정말 '우리 둘이서만 살아갈 삶'을 더 소중히 여기면서, 불행이 아니라 불굴의 의지로 하루하루 더 즐겁게. 이렇게 나는 내게 닥친 고통과 상실의 아픔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상실을 대하는 마음의 근육을 만들고 있다.
딩크족이었지만, 아이를 못 낳게 되었다.
'괜찮아! 나에겐 또 다른 행복한 삶이 있어! 자궁이 없는 나도 너무 소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