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이로움 앞에서 나는 기꺼이 작은 점으로 남는다.
어느 장을 펼치든
인류의 역사와 물리학, 철학과 생물학, 그리고 신비 로운 우주와 미지의 세계를 한 편의 시처럼 감상할 수 있는 과학책. 칼세이건의 <코스모스>
1980년 출간 이후
줄곧 전 세계 과학 도서 1위의 자리를 지켜온 이 책 에 대한 동경은 우주의 비밀 한 조각이라도 가까이 하고 싶던 결핍한 내 영혼의 내밀한 갈망이었고, 빈 약한 지성이 오래도록 품은 기대와 설렘이었다.
꽤 오랫동안 '코스모스 재수생'이던 내가 2021년 처음 책을 완독한 이후로, 해마다 곁에 두고 재독, 필사까지. 나는 진심으로, 이는 바람, 떠나는 구름, 흔들리는 풀잎에게도 존경과 감사를 표하고 싶다.
우리를 밤하늘로 이끄는 칼 세이건의 언어는 정제된 시처럼 아름답고, 그가 조율한 세계는 부피, 질량, 밀도 - 그 어떤 것도 조화롭지 않은 것이 없다.
그가 만든 하나의 우주 <코스모스>
그것은 시대를 초월해 인류를 빛낼 지구 행성의 찬 란한 문화유산이라 해도 지나침이 없을 것이다. 그 의 지식 체계와 위대한 통찰은 우리를 자연스레 또 다른 세상으로 이끌기에 충분하다.
페이지를 펼친 누군가는 경탄의 한 걸음을 떼며 어 느 순간 "9와 4분의 3 승강장"을 지나 광막한 우주 와 마주하게 되었을지 모른다.
칼세이건의 <코스모스>는 그렇다, 마법이다.
시야는 시공간을 넘나들고 협착한 내면은 광활한 외부 세계와 정직하게 만난다. 기쁨을 경험한다.
20세기에 쓰인 책이 21세기에도 여전히 범우주적 통찰을 제공한다면, 이것이 마법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물론, 이 위대한 명문 대작엔 나로선 도저히 해독 불 가한 과학 규칙들이 요소마다 꽤 깊은 전문적 이해 를 요구하며 다채롭게 설명되어 있다.
그러나 이해는 나중으로 미루어도 좋다. 시작을 멈 추지 않는다면, 우리는 곧 칼세이건의 매력에 사로 잡히게 될테니까. 그의 고도의 지성이 얼마나 쉬운 언어로, 담백하고도 아름답게 발현되었는지 곧 감상하게 될 것이다.
<코스모스>와 <창백한 푸른 점> 양장본에는 눈이 휘둥그레질 만큼 신비로운 사진들이 가득 실려있다.
한 장, 또 한 장 넘길 때마다 마치 우주의 비밀 한 조 각에 손끝이 닿는 기분.
칼세이건과 함께 가슴 설레는 우주여행을 시작했는 가? 지구에서 우주로, 다시 먼 은하에서 행성과 행성으로.
그렇다면 그의 관점이 결국 여기, 우리 자신에게로 옮겨와 지구와 인류의 모습을 조망하고 투영하고 있다는 놀라운 사실을 알았으리라.
"인류는 영원 무한의 시공간에 파묻힌 하나의 점, 지구를 보금자리 삼아 살아가고 있다.
이러한 주제에 코스모스의 크기와 나이를 헤 아리고자 한다는 것은 인류의 이해 수준을 훌 쩍 뛰어넘는 무모한 도전일지도 모른다. 모든 인간사는 우주적 입장과 관점에서 바라볼 때 중요키는커녕 지극히 하찮고 자질구레하기까지 하다. 그러나 인류는 아직 젊고 주체할 수 없는 호기심으로 충만하며 용기 또한 대단해서...."p22
" 그러므로 안다는 것은 사람에게 기쁨이자 생 존의 도구이다. 인류라는 존재는 코스모스라 는 찬란한 아침 하늘에 떠다니는 한 점 티끌에 불과하다. 그렇지만 인류의 미래는 우리가 오 늘 코스모스를 얼마나 잘 이해하는가에 크게 좌우될 것이라고 나는 확신한다."p23
이 글귀는 다이어리를 바꿀 때마다 매번 필사하는 대목 중 일부이다. 흥미로운 것은 언제나 처음 듣는 사랑의 속삭임처럼 쿵쿵 쾅쾅 가슴이 벅차온다는 것이다.
지적 세로토닌, 도파민이라는 여러 종류의 분자들이 내 측좌 뉴런을 활성화시켜 정녕 살아있음을 실감나게 하나 보다. 잠깐, 내 신경돌기와 수상돌기에게도 감사하고 싶다.
코스모스에 부유하다 우연히 들러붙은 원자와 분자 의 결합체인 우리가, 먼지같은 찰나를 살며 삶의 의 미를 갈망하는 이 모든 것조차, 우주적 관점에선 스치듯 사라지는 하나의 질문에 불과할지도 모르겠다.
오늘도 빈 강의실에서 칠판을 지우며 흘려보낸 깊은 한숨. 무너지듯 숙인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 보 면, 나의 오늘이 얼마나 작고도 찬란한 흔들림이었 는지 깨닫게 된다.
울고 웃었던 순간들, 별빛같은 모든 것들.
나만의 언어로 수놓는 우주의 풍경을 상상하는 순간, 우리는 모두 시인이 된다. 이 우주를 사랑하여, 심장 납작해지는 하루하루마저도 굳건히 살아내는, 시인.
<코스모스>를 세 번 읽는 동안 나는 칼세이건의 문 장에서 별빛의 온도를 느꼈고, 그의 비유 속에서 내 안의 미지가 고요히 깨어나는 걸 느꼈다.
어쩌면 무의미한 일상의 연장선에서 유레카! 몇 번 의 외침이 있었을지 모르겠다.
강조해 새기고 싶은 건, <코스모스> 이 책은 내게 단순한 과학책이 아니란 사실이다. 한 권의 책이 노래 가 되고, 기도가 되고, 정밀한 떨림이 되는 기적.
코스모스를 읽는다는 건, 이해하려 애쓰는 일이 아 니라 마음의 창을 열고 그곳으로 천천히 걸어가는 일, 수억 년의 시간을 손바닥에 펼쳐놓고, 그 안에 나를 놓아보는 일이다. 그리고 마침내 알게 되는 것 - 우리는 모두 우주의 동행자이며, 어쩌면 진하게 살 아있는 별들이란 것.
이 창백한 푸른 점 위에서 오늘도 심장을 쥐고 불안 에 떨며, 혹은 이마에 깊은 주름을 새기며 사랑하고 싸우고 숨 쉬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묻고 싶다. 당신 은, 생에 한 번이라도 코스모스를 만나본 적 있는가.
인간의 뇌에 존재하는 약 1000억 개 정도의 뉴런처 럼 우주에는 은하가 대략 1000억 개, 또 각각의 은 하에는 저마다 평균 1000억 개의 별이 있단다.
우리의 은하수 은하에도 대략 이 수만큼 별들이 존 재한다고 하니 태양처럼 생명이 사는 행성을 거느린 별이 어딘가에 또 있지 않을까?
대폭발의 아득히 먼 후손인 우리.
무한한 심연 코스모스의 어느 한 구석, 그중 우리 은 하에서도 이 외진 변방에 숨은 듯이 박혀 있는 우리 에게만 이런 행운과 기적이 찾아 오진 않았을 터.
물질과 생명의 기원이 코스모스라면 우리는 마땅히 코스모스를 이해해야 한다
우리는 무엇인가? 코스모스의 과거 현재 미래는 어 떤 모습일까? 우주의 시작과 끝이 있을까?
저 불가사의한 천체에서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우주엔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사차원 이상의 또 다 른 차원이 존재할까? 과연 이 우주에 지구인 말고도 다른 존재가 살고 있을까?
"인류는 우주 한구석에 박힌 미물이었으나 이 제 스스로를 인식할 줄 아는 존재로 이만큼 성 장했다. 그리고 이제 자신의 기원을 더듬을 줄 도 알게 됐다. 별에서 만들어진 물질이 별에 대해 숙고할 줄 알게 됐다. 10억의 10억 배의 또 10억 배의 그리고 또 거기에 10배나 되는 수의 원자들이 결합한 하나의 유기체가··•··· 그러므로 오늘을 사는 우리는 인류를 여기에 있게 한 코스모스에게 감사해야 할 것이다."p
556
우주 한 구석에서 의식의 탄생이라니!
이 얼마나 경이로운 일이란 말인가.
별에서 만들어진 물질이 별에 대해 숙고할 수 있다 는 건, 얼마나 기묘하고 또 감동적인 일인지. 나는 오 늘도 교실 한편에서 수많은 원자의 결합체로 이루어진 아이들과 함께 지지고 볶으며 문학을 읽는다.
그러다 한 순간 녀석들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일 때, 문득 우주의 심연을 응시한 듯한 착각에 빠진다.
인간이 무엇인가를 이해하려는 그 순간, 별빛은 언 어가 되어 이렇듯 우리 일상에 감동으로 스며드는 것이다.
칼세이건은 코스모스에서 과학사의 위대한 스승들 과 그들이 살았던 당시의 시대적 배경에 대해 재미 있는 얘기들을 들려 준다.
기원전 5~7세기 무렵의 이오니아 그리고 기원전 3
00년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에서 과학적 사고를 꽃피 운 이들의 열정은 천문학, 물리학, 생물학, 인류학 등 의 발전에 무한한 원동력을 제공한 듯 보인다.
그중에서도 밀레토스의 철학자 탈레스는
"만물의 근원은 물"이라고 말하며, 신화의 세계를 벗 어나 자연 자체를 설명하려는 첫 시도를 남겼다.
그의 질문은 단순했지만, '우주는 이해될 수 있는 질 서'라는 믿음을 인류 역사에 처음으로 심어준 씨앗 이기도 했다.
그리고 수 세기 후, 알렉산드리아의 히파티아는 수 학과 천문학, 철학을 넘나들며 고대 지성의 빛을 이 어갔다. 그녀는 별을 사랑했지만, 그 빛은 광신과 폭 력의 시대 속에 너무도 조용히 꺼졌다. 그러나 세이 건은 그녀를 별들 사이로 사라진 마지 막 불꽃"이라 불렀다.
이들의 존재는 단순한 과거 역사 속 인물이 아니라, 오늘날 우리가 우주를 꿈꾸고 사유할 수 있게 해 준 흔적이기에 저 밤하늘의 별처럼 위대하다.
이처럼 인류는, 어둠 속에서도 늘 별을 바라보며 질 문을 멈추지 않았다. 그 지적 유산이 켜켜이 쌓여 오 늘의 우리에게 도달했고, 나 역시 그 계보의 끝에서 조심스럽게 작은 물음을 꺼내본다.
내가 이 우주의 일부라는 것을, 내 일상 또한 이 거대 한 이야기 속에 놓여 있다는 것 을 잊지 않기 위해서.
이 조용한 기록들이, 언젠가 나의 언어가 되고, 나의 수업이 되기를.
누군가의 마음을 두드리는 문장이 되기를.
아직은 별 하나 없는 밤하늘 같지만, 나는 매일 조금 씩 공백을 매운다.
포기나 절망은 잠시 미루고, 오늘을 살아내는 나만 의 방식으로.
차곡차곡 쌓인 이 말들의 곳간이 언젠가, 내가 꾸리는 작은 우주의 별빛이 되어주길 바라며.
"우리가 지구 생명의 본질을 알려고 노력하고 외계 생물의 존재를 확인하려고 애쓰는 것은 실은 하나의 질문을 해결하기 위 한 두 개의 방편이다.
그 질문은 바로 '우리는 과연 누구란 말인가?'이다." P50
이 마법 같은 문장을 품고 살아간다는 건 단순히 책 한 권을 읽은 게 아니라 내가 살아낼 하루의 지도에 나침반을 올려놓는 것.
자기 안에 우주의 심장을 심어놓는 것.
그래서
끝내 먼지처럼 부서질 우리 존재가 저 하늘 어딘가에 다시 찬란하게 빛날 내일을 마련하는 것일지도.
이 글은 오랜 시간을 건너온 감상문이다.
정직하고 찬란한 헌사. <코스모스>를 향한, 칼세이 건을 향한, 그리고 어쩌면 지성과 우주에 대한 내 자 신의 갈망과 열정 그 모든 것을 향한.
우리는 모두 별에서 왔고, 누군가는 별처럼 살고, 나 는 별처럼--- 이 자잘한 안간힘까지 별의 숨결에 새 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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