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의 기원> 찰스 다윈 / 이미 다윈

무지렁이 진화 일기 1

by 사피엔


존재와 철학, 그리고 김밥 사이에서 의미를 찾다.


“대한민국은 다윈 후진국”이라던 최재천 교수의 말을 기준 삼아 줄을 세운다면,

나란 사람, 무지랭이 반열 100위 안엔 당당히 들지 모르겠다.


언제부턴가, 남모를 이 낭패감을 극복하고자

아무도 요구한 적 없는 결심을 입 밖으로 힘주어 뱉고 다녔다.

이름하여, 무지와의 맞짱 대결.


번역에만 14년 걸렸다는 대작 『종의 기원』을 책장 한 켠에 모셔놓고

1년간 발효시킨 끝에야

드디어, 아니, 겨우 “다윈 입성”을 했다.


하지만 21세기의 인류는 이미 진화라는 물줄기에서 쾌속 탈선,

이제는 스스로 신의 지위에까지 도달해버렸다.

그 마당에 150년 전 출간된 벽돌책과 굳이 맞짱을 떠야 하는 신세라니.


먹고사니즘 인생을 핑계로 선언 철회.

아니, 진화 포기라도 하고 싶었다.


여전히 다양한 핑곗거리를 찾아

내적 갈등만 진화 중이던 어느 날,

침묵 끝에 들려온 다윈의 목소리에서

기이한 다정함을 느꼈다.


괜찮다. 살아남은 자는 결국 조용히 적응한 자다.


그러니까, 내가 이 책을 읽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진화는 이미 시작된 셈이다.

어디서든, 아주 조용히.




1, 2장은 거의 ‘빅토리아 시대 애완동물 토크쇼’다.

비둘기, 오리, 개, 씨앗이 차례로 등장하고

비둘기 사육자는 아주 쿨하다.


“나는 원하는 깃털은 3년 안에 만든다.

머리랑 부리는 6년쯤이면 가능하지.”

— 『종의 기원』 p.76


이게 마술쇼가 아니라 과학이라니.


다윈은 이런 품종 개량의 세계를

자연선택이라는 거대한 우주 실험실로 보고 있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사람도 의도적으로 종을 바꾸는데,

하물며 자연이 그렇게 못하리란 법은 없지 않은가.”


그렇게 탄생한 건,

신이 만든 정원이 아니라

스스로 가지를 뻗어낸 생명의 숲이다.


씨앗 하나가, 가지 하나가

“일단 뻗고 보자!”며

수백만 년을 살얼음 걷듯 살아낸 기록.


일생을 관찰하고 기록했던 사람, 다윈.

“드디어 다윈!”이 아니라,

“이미 다윈….”


나는 아직 절반도 이해하지 못하고

자주 책장을 덮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우리는 이미 다윈의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



19세기 다윈이 비둘기를 순종과 잡종으로 분류했다면,

21세기의 나는 사람을 다시 본다.

똑같은 듯 전혀 다른 인간들.


비슷한 환경, 비슷한 유전자를 갖고 태어나

전혀 다른 방식으로 상처받고,

다른 방식으로 견디는 존재들.


비둘기 사육이 품종 개량의 핵심이었다면

나는 요즘, 내 감정을 품종 개량 중이다.


헛헛하고 시큰한 마음엔 온기를,

찌릿한 분노엔 거리두기를 접목하면서.


다윈은 자연선택이라 했지만 나는 감정선택 중이다.

더 넓게, 더 단단하게.


이것도 진화일까? 진화라 우겨도 될까?



그 옛날 원시 세포 하나가 "짠" 분열했을 그 찰나를 떠올린다.

우린 모두 아주 잠깐,

"동등한 생명의 역사" 위에 머물렀다 가는 존재들.

목적도, 방향도 없이 세상에 던져지면서 질문 없는 시험지를 받아 들고, '생존' 두 글자만 끄 적거린다.


그리고 언젠가는

"존재"라는 답을 써 보겠다고,

기어이 이 밤도 책상 앞이다.




* 이 글은 기존 <무지랭이의 진화일기>의 내용을 <찬란한, 잔인한> 시리즈 안으로 통합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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