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창백한 푸른 점 / 칼세이건

The Pale Blue Dot

by 사피엔



ㅡ 창백한 푸른 점 앞에서 삶을 보다



“이 책은 나에게 기도였고, 노래였으며, 정밀한 떨림이었다.”

몇 해 전, <코스모스>를 읽고 난 뒤 내 안에 오래 남은 문장이다.

그리고 나는, 마침내 그 ‘푸른 점’ 앞에 섰다.


<창백한 푸른 점>


그 이름만으로도 우주의 침묵이 느껴지는 이 책은

내 삶의 지도를 다시 펼치게 만든다.

이곳에서 나는, 먼지 같은 존재로 살아가는 우리가

얼마나 찬란하고 얼마나 잔인한지를 동시에 깨닫는다.





어떤 기억은 시간이 흘러도 놀라울 만큼 선명하다.

위, 사진,



"무엇으로 보이나요?"



저 까만 허공의 한 점 티끌이 뇌리에 박혔던 그날 그 순간을, 나는 명료하게 기억한다.


그것은 암흑과도 같은 내 무지의 장막에 한 줄기 섬광이 번쩍였던 충격이었고 전율이었다. 머리를 고압 전류에 강타당한 그날, 내 안의 무지는 비로소, 무한에 대한 경외와 함께 깨어났다.

단숨에 알라딘을 소환. 이틀을 고대한 끝에야 나만의 우주를 품에 안듯 소유한 칼세이건의 <창백한 푸른 점> 그리고 <코스모스>


크고 두터운 책은 깨알만 한 글자들과, 아름답고 신비로운 사진들로 가득했다. 오랫동안 메말라 있었던 내 가난한 지성과 결핍한 영혼은 당장이라도 충만한 은총을 거두어들일 것처럼, 혹은 우주의 비밀 한 조각을 성큼 손에 쥐기라도 할 것처럼 흥분과 기대에 잔뜩 가슴 벅찼고 두고두고 설렘에 들떠 있었다! 뇌회로를 자극하는 분자들의 속삭임을 나는 언제나 두 팔 벌려 환영(갈망)한다.


그러나, 과학적 소양이란 걸 손톱만큼도 갖추지 못한, 상당한 수준의 무식쟁이였던 나. 매번 절반을 못 넘기고 그림 감상 수준에 머물다 포기하길 몇 번을 반복했던지. 다시 한번 처절하게 무지의 장막에 고립된 채, 스무 살 때 철없이 펼쳤다 몇 장을 못 넘긴 헤겔의 철학서와 공자의 주역을 떠올리며 씁쓸한 좌절의 기억 또한 곱씹어야 했다.

마치 7만 년 전, 인지혁명 이전의 유인원에 빙의된 듯한 그 멍청한 기분이란.ㅠ


그러나 천문과학자 칼세이건의 매력은 절대 '시작'이란 걸 멈추지 않도록 끊임없이 독자를 격려하는 데 있다는 사실! 사랑에 빠진 자는 인내가 가능하다. 나는 칼세이건의 아름다운 문장들을 사랑했다. 그 곱고 친절한 문장들을.


드디어 <코스모스> 재수생 딱지를 떼고 <에덴의 용>까지 재밌게 읽고 나니, 웬걸! <창백한 푸른 점> 이 어렵지 않게 읽혔다.

(칼세이건의 <브로카의 뇌>는 절반 읽고 슬그머니 덮어놨다는...;;)

물론 불가사의한 천체와 우주에 대한 호기심을 과학책 몇 권으로 해결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어림도 없다.

중성자별, 물질과 반물질, 전하가 거꾸로 된 물질의 세계 등등에 관한 설명은 가히 외계어급이라 칼세이건이 살아 돌아와 더욱 자세히 설명해 준대도 나로선 한 소절도 알아먹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못다 한 '이해'는 나중으로!!



"그러나 지식은 무지보다 낫다.
힘든 진리는 마음을 달래주는 거짓말보다 훨씬 더 나은 것이다.
그래도 우주의 목적을 갈망한다면
우리 스스로 보람 있는 목적을 찾아 나서자."
<창백한 푸른 점>p75



여기에, 나와 당신이, 있다. 여기가 우리의 고향이다.



천문학자 칼세이건은 누구보다 뛰어난 시인이자, 지구행성에 다시없을 위대한 철학자일 것이다.


칼세이건의 <창백한 푸른 점>. 이 책에는 인문학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유명한 글귀가 있다.




그러나 유시민의 어투를 빌려 다시 읊어보자.


"여기가 우리이 고향이다. 이것이 우리다. 우리가 사랑하는 모든 이들,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사람들, 당신이 들어 봤을 모든 사람들, 예전에 있었던 모든 사람들이 이곳에서 삶을 누렸다. 우리의 모든 즐거움과 고통들, 확신에 찬 수많은 종교, 이데올로기 독트린. 모든 사냥꾼과 약탈자, 영웅과 비겁자, 문명의 창조자와 파괴자, 왕과 농부, 사랑에 빠진 연인들, 모든 아버지와 어머니, 희망에 찬 아이들, 발명가와 탐험가, 모든 도덕 교사들, 그리고 모든 타락한 정치인들, 모든 슈퍼스타, 최고의 지도자, 인간 역사 속의 모든 성인과 죄인들이 여기 태양빛 속에 부유하는 먼지의 티끌 위에서 살았던 것이다." p26



다시 한 번 바라보면



새까만 공간의 티끌 한 점. The Pale Blue Dot.

창백한 푸른 점, 여기가 바로 우리의 고향인 것이다.


행성 탐사 우주선 보이저호가 지구로부터 37억 마일이나 멀리 떨어져 있을 때 칼세이건은 돌연 마지막으로 보이저호를 지구 쪽으로 되돌아보도록 방향을 틀었다. 이는 예정에 없던 일이고 많은 비용을 감수해야 하는 엄청난 일이었다고 한다.


그렇지만 그는 감행했고 보이저호가 뒤돌아 본 것은 이렇듯 외로운 점, 미미하기 짝이 없는 보잘것없는 지구였다.


저자는 말한다. 그 점을 얼마 동안 응시한 다음에 하느님이 이 먼지의 티끌에서 서식하는 1,000만 여 종의 생물 가운데 한 생물을 위하여 온 우주를 창조하였다는 것을 스스로 납득이 가도록 시도해 보라. 이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상상해 보라. 모든 것이 오직 하나의 종이나 인종 혹은 종파宗派를 위하여 만들어졌다고, 만일에 그것이 있을 수 없는 일처럼 느껴지지 않는다면 또 다른 점 하나를 찾아보라.


그곳에 다른 형태의 지적 생물이 살고 있다고 상상해 보라. 그들 역시 모든 것을 그들을 위해 창조했던 하나님의 개념을 소중히 간직하고 있을 터이다. 우리는 그들의 주장을 어느 만큼이나 심각하게 받아들일 것인가?


19세기 중엽 찰스 다윈은 생물이 한 종種에서 다른 종으로 순전히 자연스러운 과정에 의해서 진화할 수 있음을 설득력 있게 증명했지만 우리 인간은 여전히 특별하게 창조된, 스스로를 중요한 존재라고 생각한다. 우주의 창조자가 특별한 열성을 기울인 증거가 우리 안에 역력히 보인다는 신념과 우리가 우주에서 특별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는 생각, 그것은 어쩌면 망상이 아닐까? 지구는 그저 광활한 우주에 떠도는 외로운 점 하나에 불과할 뿐, 우리는 애초부터 방랑자였다고, 저자는 다윈의 말을 인용한다.


"겸손하게 인간은 동물로부터 창조되었다고 하는 편이 더 진실에 가깝다고 나는 생각한다" ( 다윈의 노트 기록 인용문 )


"그러나 만약 우리의 목적이 얄팍한 안심이 아니라 깊은 인식에 있다면,
이 새로운 전망은 우리가 잃은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가져다줄 것이다......우리는 수십억 광년의 공간을 뚫고 우주 대폭발 직후의 모습을 바라보며 동시에 물질 미세 구조의 비밀을 들여다본다. 우리는 우리 행성의 중심부나 우리 별(태양)의 불타는 내부를 들여다본다. 우리는지구 위 모든 생물들의 다양한 기능과 특성을 표현한 유전의 언어를 읽는다. 우리는 우리 종족의 역사에서 숨겨진 몇 장을 밝혀내고, 좀 고통스럽지만 우리 인간의 성질과 앞으로의 전망을 더 깊게 이해한다. 우리는 그것 없이는 모두 굶어 죽을 수밖에 없는 농업을 발명하고 개선한다.
우리는 수십억의 생명을 구할 수 있는 의약품과 백신을 만들어낸다. 우리는 광속도로 통신하고 지구를 1시간 반에 한 바퀴 돌 수 있고, 70여 개의 다른 천체로 수십 개의 우주선을 보낸다. 당연하게도 우리는, 우리가 달성한 업적을 기뻐하고, 인간의 시야를 넓힌 것을 자랑하고, 우리의 공적이 일면으로는 인간중심의 주장을 위축시켰던 과학 때문이라고 판단한다." p71





1977년 8, 9월 보이저 1,2호가 출발하기 전에는 태양계의 행성들에 대한 지식이 거의 없었다고 한다. 두 우주선은 다른 천체들의 경이로움과 우리 지구의 독특함과 취약함 그리고 시작과 끝에 관해서 알려주었고 태양계의 대부분을 넓이와 질량의 양면에서 우리에게 친근한 것으로 만들었으며 우리의 후손들이 살게 될지도 모를 천체들을 처음으로 탐험한 우주선이었다.






보이저 1, 2호는 목성과 토성만을 탐사하도록 설계되었다. 그러나 176년 만에 한번 오는 기회를 이용하여 해왕성까지 30년 걸리는 거리를 12년으로 단축하며 한 우주선으로 4개의 행성을 탐사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보이저 궤도의 정확성은 미국 동부 워싱턴에서 서부 에리조나까지 골프공을 쳤을 때 홀인원을 시키는 수준의 정밀도를 유지하는 것이라고. (이 비유는 어느 유튜브 방송에서 들은 듯한데 출처를 모르겠다.;;)


보이저 탐사는 현재도 여전히 진행중이며 두 우주선은 대략 2015년까지 지구로 자료를 보낼 수 있을 것이란 칼 세이건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어 약 2030년까지 지구와 통신 가능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수 백만 년 전, 동부 아프리카의 초원에서 사냥과 채집으로 살아가던 시절부터 우리 인간은 모험과 방랑을 꿈꿔 왔다! 그 욕구는 세 척의 배로 신대륙에 도달했던 콜럼버스에 이어 오늘날 우주 행성 탐험에 이르기까지 인류가 이룩한 찬란한 역사적 성과라 할 수 있다.


한때 별들은 우리 머리 위 드높은 곳에서 빛나는, 도달 불가한 신비한 세계 그 자체였다. 그러나 아폴로 우주선은 하늘 위 까만 달에 인간의 발자국을 새겼고 어느 먼 앞날엔 유인 우주탐사선이 화성과 다른 행성의 지표면에 인간을 닿게 할 수 있으리란 걸 오늘날 우리는 충분히 상상할 수 있다.


어쩌면 광속도에 가까운 이온 우주선으로 이웃별 여행을 즐기는 태양계인(?)들이 우주에 가득한 날이 올지도 모른다. 우리의 조상이 보이저를 상상하지 못했듯 우리 상상을 초월한 후세대의 새로운 기술에 기반한 미래. 과연 인류는 앞으로 어떤 세상을 개척할까? 자멸을 피한 슬기롭고 운 좋은 인간들이 만들어갈 세상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기껏 한 세기를 살지 못하는 인간 개체는 결코 한 치 앞을 관망할 수조차 없겠지만, 어느 정도는... 알고 싶다.









지금 인류는 그들에게 접근할 수 있는 많은 거대한 지식과 공업 기술을 구비하고 있지만 오직 과학과 탐험만을 위해 인간이 직접 천체에 진출할 가능성은 적어 보인다고 저자는 예측했다. 유인 탐사는 막대한 비용뿐만 아니라 정치적, 국제적 목적이 크게 결부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아직까지도 여타 많은 고려해야 할 문제들을 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류가 추진하는 현대 과학은 꾸준히 행성 탐험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듯 보인다.


"1997년에 착륙한 '소저너' 이래 화성에 탐사차를 계속 보내고 있는 NASA는 새로 개발한 피서비어런스Perseverance가 2월 18일 화성의 '제제로Jezero 화구' (지름 약 50km)에 착륙하는 데 성공했다고 발표했다.......제제로 화구는 35억 년 이상 전에는 호수였다고 생각되는데, 생명의 흔적이 남았을 가능성이 있다. 피서비어런스에는 암석을 굴착해 샘플을 채취하는 기능이 채용되어 있고, 앞으로 발사되는 다른 탐사선을 이용해 지구로 가지고 돌아오는 미션도 계획되어 있다. 이 미션으로 인류는 지구 이외의 장소에 생명이 존재했다는 확실한 증거를 얻을 수도 있다." (아이뉴턴 5월호 참고)







인간의 능력으로 유인 우주여행을 하고 화성에 기지를 조성하거나 소행성을 재조성하는 등의 비약적 성과. 그것은 아직도 요원해 보인다.

한때 물이 풍부했고 기후도 온화했던, 지구를 닮은 화성이 무엇 때문에 지금은 불모지처럼 변하게 되었을까?


궁금하지만 나는 솔직히 우주 탐사대로부터 우주 어딘가에서 생물을 발견했다는 소식이 날아든다면 과연 반가울까 싶다.

(이 감정은 무책임과 책임의 경계 어디쯤에 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지구와 또 다른 세계에 대한 일말의 기대나 추구 혹, 내게 그런 게 있다면 가냘프기 짝이 없는 단 하나의 질문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우리는 과연 누구인가, 우리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삶은 대체 어떤 의미가 있는가!


한 가닥 의문은 깊은 내면에서 지극히 소심하게 시작됐지만 좀 더 객관적이고 물리적인 답을 찾고 싶었다. 그렇게 먼지처럼 떠돌다 만난 별 <창백한 푸른 점>



어쨌든

독서의 즐거움이란 게 또 이런 것 아닐까?!







나는 오늘 어디로 향하고 있을까. 분명한 건, 내 시작은 저 '창백한 푸른 점"이란 사실.







**이 글은 네이버 블로그에서 이사 온 후 약간의 단장을 했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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