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림살이 좀 나아졌나?
어느새 제주에서 맞는 두 번째 겨울이다.
제주도는 눈도 안 오고, 눈이 내려봐야 당일날 바로 녹는다더니...
첫 번째 겨울에 기록적인 폭설을 맞이했었다 -_-;
과연 이번 겨울은 어떨지.... 살짝 긴장이 된다.
그냥 겨울에 어디 따뜻한 데 가서 한 달 살기라도 하고 올까 싶기도 하다.
제주로 이주를 결심할 때.. 사실 몇 군데가 더 후보지에 있었다.
지금 가진 돈으로 그냥 맘 편하게 놀면서 조금씩만 돈 벌어도 무방할 것 같은 곳.. 보라카이, 바누아투, 태국 등등... 만약 그때 그런 곳으로 갔으면 지금도 따뜻한 해변에서 룰루랄라 놀고 있었을 텐데..ㅜㅜ
그런 정말 엉뚱한 나라를 선택하지 못한 건 역시.. 아이들 때문이다.
교육 여건도 그렇지만 혹시라도 어디 아프면 병원을 어떻게 하나라는 걱정이 너무 컸다.
(돌이켜보면 그 선택은 나름 현명했다. 제주 와서 애들이 심각하게 아픈 적이 몇 번 있었고, 해외였다면 그걸 제대로 대처를 못했을 것 같다 )
제주 내려온 첫 해에는 제주도를 꽤 돌아다녔었다. 제주도는 1년 내내 이런저런 마을 축제가 있는 곳이다. 소규모 마을 축제들 구경도 하고, 예전엔 못 가봤던 관광지들도 돌아보고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2년 차에는... 백수의 이점을 최대한 활용해서 최저가 항공권 끊어다가 해외로 나돌았다.
(모두 따뜻한 나라들... 추운 거 너무 싫다 ㅜㅜ )
제주도로 와서 1년 4개월 정도가 지났는데, 여전히 딱히 돈을 벌고 있지 않다.
원래 1달에 책을 2권씩 써서 그 인세로 생활비를 해야지 했는데..
지금 몇 달에 1권씩 써내는지라 사실상 의미가 없는 수입원이 되어 버렸다.
한마디로 지난 10년간 열심히 벌어둔 돈 까먹으면서 살고 있다..ㅋㅋㅋ
원래 계산상으로는 제주도 와서 아무것도 안 하고 놀고먹어도 3년은 버틸 수 있었는데.. 펑펑 돈 쓰고 다니다 보니 백수로 놀 수 있는 기간이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참 신기한 게 딱히 불안하거나 하진 않다.
회사 다닐 땐 매달 나가는 생활비를 감안하면 회사 관두면 바로 길거리로 나앉을 줄 알았다. 그런데 아파트 다 팔고 제주도 시골로 왔더니 매달 나가는 고정 생활비가 크게 줄었고, 은행 대출이 0 원이니 그냥 없으면 없는 대로 살면 되지라는 생각도 든다. 딱히 여행 안 다니면 매달 나가는 생활비를 50만 원 미만으로도 할 수 있다.
(여담이지만 은행 대출이 0 원이라는 건 의외로 큰 안정감을 준다. )
대신 참 여유로워졌다. 납기에 맞춰서 열심히 일하는 대신 멍하니 하늘만 바라보고 있어도 되고, 애들 데리고 한량처럼 동네 한 바퀴 돌아도 되고, 예전엔 두어 시간이면 다 읽던 책을 3주 동안 보기도 한다. 옷은 제주 갈옷 3벌 사서 1년 내내 그 옷만 입고 있다. 신경 쓸 주위 시선도 없고, 어디 비교할만한 옆집 누구네 아빠도 없다..^^;
아니 여유로워졌다기보다는 좀 더 자유로워진 것 같다. 돈과 시간과 남들과의 비교 같은 것들에서 상당히 자유로워졌다. 이런 건 줄 알았으면 회사를 좀 더 빨리 그만 둘 껄 그랬다... 그리고 이건 굳이 제주도가 아니라 다른 시골 지역으로 갔어도 비슷했을 것 같다. (그러니 다들 회사 관두고 같이 놀아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