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점지기가 책방에 머무는 반의 반나절의 시간
막상 책방지기가 되기 전까지 나는 ‘나’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한 것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바로 오랜 시간을 한 곳에 엉덩이 붙이고 있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소상공인의 기본 미덕이라 함은 꾸준함이다. 친절을 바탕으로 한 근면성실함. 그것이 바로 자영업자에게 가장 필수이자 기본이 되는 자세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내게 가장 취약하고도 허약한 부분이기도 했다. 공간을 꾸리기 전에는 별로 대수롭지 않게, 아니 전혀 고려할 문제가 아니었으나 막상 한 달 두 달이 지나자 서서히 나는 깨달아갔다. 자신의 가게를 지키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물론 모든 매장이, 서점이, 음식점과 카페에 주인장이 머무는 것은 아니다. 어떤 곳은 사장이 아예 보이지 않는 곳도 있고, 요일과 시간마다 번갈아가며 나타났다 사라지기도 한다. 그러나 이곳은 그럴 수가 없는, 애초에 그럴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공간이기에 오롯이 나의 시간으로 별방구의 시간을 채워갔다. 물론 혼자서 매일을 책임지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걸 느끼고는 고민 끝에 알바를 채용해보기도 했다. 운이 좋게도 내가 이곳에 있지 않아도 전혀 걱정이 되지 않고 오히려 든든하게 나만큼이나 이곳을 아껴주시는 아주 좋은 분과 함께하게 되었다. 그러나 식구가 늘어난다는 것은 나의 애정과 마음만으로 감당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책임을 지기 위해선 사장의 ‘몫’을 해내야 했고, 그 몫은 4평 남짓의 공간으로 채워가기엔 쉽지 않았다. 그렇게 최초의 별방구 정식 알바생이 되어주신 ‘매니저님’을 눈물을 머금으며, 떠나보낼 수밖에 없었다. 짧은 시간 동안 많은 손길을 남겨주신 덕분에 나는 남은 2년 남짓의 시간 동안 늘 감사한 마음을 잊지 않고 떠올리게 되었다.
그 후, 나는 다시 나의 시간으로 별방구의 시간을 온전히 채워갔다. 주 6일, 주 5일 출근을 하면서 나는 새로운 일상을 마주할 수 있었다. 매일 같은 자리에 있다 보면 매일 비슷한 시간에 움직이는 사람들을 볼 수 있었고, 비슷한 흐름의 풍경 속에서 포착되는 사사로운 변수를 포착할 수 있었다. 그 변수 속에는 ‘찬란한 하늘’도 있었고, ‘놀라운 구름 모양’도 있었으며, ’새로운 만남‘, ‘반가운 친구’가 있었다. 익숙한 일상 속에서 찾아오는 변수가 있기에 지루함보다는 안정감 속에서 느끼는 새로움이 있었다. 덕분에 원래도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에 마음을 쉽게 내어주던 나는 소소확행(소소하고도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의 삶을 실천할 수 있었다.
물론 아무리 사장으로서의 책임감으로 점철한 채 서점을 지킨다고 해도, 종종 일탈을 꿈꾸고픈 날도 있었다. 아무리 그런 일탈의 일렁임을 억눌러도 쉽사리 사그라들지 않는 날에 나는 우렁차게 의자를 밀어 재끼고 일어섰다. 그리고 성큼성큼 나아가 조명을 끄고 커튼을 닫고 문을 걸어 잠그고 나왔다. 그리곤 나를 둘러싸는 곳곳의 햇살과 바람과 여유를 만끽했다. 쉽게 말해 ’참지 않았고 뛰쳐나갔다‘고도 볼 수 있지만, 나는 나를 긍정적으로 토닥이고 싶으니 좋게 말해 ’쉬어가는 하루‘라고 하겠다. 아무튼, 이처럼 때로는 ‘주인장’의 특권으로 땡땡이를 치기도 하고, 조기 퇴근을 하기도 하며 일종의 워라밸(?)을 맞춰갔다.
엉덩이 붙이기에 있어서는 그리 성실하지 않은 사장이기에 얻을 수 있는 장점도 있었다. 엉덩이가 근질근질하면 계산대 위에 ’잠시 외출 중, 전화 주세요^^’라고 적은 메모지를 붙여둔 뒤, 나는 동네 한 바퀴 산책을 나섰다. 오후 4시쯤 괜스레 허기가 느껴지는 것 같을 땐 또다시 그 메모지를 붙여둔 뒤, 카일리 제너도 먹고 간 우리 동네 명물 떡볶이 맛집으로 향해 떡볶이에 순대, 어묵 국물까지 거나하게 먹고는 튀어나온 배를 통통 두드리며 돌아오곤 했다.
그렇게 근질거리는 엉덩이를 달리 듯 동네를 어슬렁 거리며 나는 가게에 있을 때는 미처 발견하지 못한 것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좀 더 후딱 갔다 와야지의 마음으로 안 가던 골목길을 따라 걸으며 발견한 ’빈티지숍‘과 선뜻 들어갔다가 만난 인연, 떡볶이를 먹으며 주인 할머니와 나눈 대화, 그림처럼 아름다운 구름 사이로 내리는 노을의 모습 같은 것들이 나를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내 두 눈에만 담기에는 너무 아까운 그런 순간을 발견할 때마다 나는 사람들과 나누기 위해 사진을 찍고, 글을 썼다. 사진 몇 장 속엔 담기지 않는 일순간의 모습일지라도 그저 흘려보내는 것보단 나을 거야라는 마음으로 하나둘 담아가다 보니 어느새 동네의 모든 길목 속엔 나의 애정이 어리게 되었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잔꾀를 부리며, 좀 더 나은 방향으로, 좀 더 버틸 수 있는 방식을 찾는 나를 미워하기도 하지만, 그로 인해 찾아오는 긍정의 면모도 봐주려고 노력하는 요즘이다. 여전히 나의 모난 구석을 미워하는 시간이 더 많지만, 그래도 이렇게 토닥일 줄 아는 것 자체만으로도 나름의 발전이라고 생각하며, 한번 더 이리 토닥여준다.
소상공인 자영업자의 삶은 꽤나 고되고, 또 무겁다. 물론 나는 그중에서 제일가게 가볍고 쉬운 버전의 삶을 지탱하고 있지만, 그 나름의 무게 속에서 열심히 사투를 하고 또 행복을 찾는다. 여전히 엉덩이가 근질거릴 땐 참다못해 벌떡 일어나 커피를 한잔 사러 간다거나, 밖으로 나가 내가 좋아하는 을지로의 골목골목을 바라보고 또 사진 속에 담는 나다. 그 또한 나의 시간으로 채워지는 별방구의 시간이기에. 내 몸이 그곳에 머무는 시간에만 별방구가 존재하는 게 아니라는 것을 분명하고도 확실하게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