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면의 소용돌이와의 사투

쏟아져 나올 듯한 생각들을 애써 삼켜내는 아이러니

by 별방구

내가 글을 쓰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생각이 터져 나올 듯 몰아치는 순간에 찾아오는 감당할 수 없는 불안감과 소용돌이를 긍정적인 방법으로 해소하기 위해서다. 그리고 일기를 쓰는 이유는 잡힐 듯 잡히지 않게 흘러가버리는 내 인생의 찰나를 그냥 흘려보내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내게 글을 쓰는 것과 일기를 쓰는 것의 차이를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답할 것이다. 글을 쓰는 것은 생각의 부유물을 나의 내면에서 꺼내 기록하는 것이고, 일기를 쓰는 것은 나의 보다 표면적인 시간을 기록하는 것이라고.


그러나 요즘의 나는 글을 쓰고 싶은 욕구와 고갈된 듯한 어떤 공허함으로부터 매일 매 순간 몸부림치고 있다. 글을 쓰고 싶지만, 어디선가 순식간에 몰려오는 먹구름처럼 찾아오는 고갈된 느낌의 공허함, 그리고 그로 인해 글을 끝내 써내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누가 들으면 대문호의 삶이라도 되느냐고 코웃음을 칠지도 모를 고민인 것 같아 어디에 털어놓기도 민망한 요즘 나의 ‘근황’이랄지, ‘상태’랄지.


고작 글쓰기 꿈나무 수준의 삶을 사는 나조차도 이런데, 책을 몇 권이고 내시며 십수 년째 글을 쓰고 계신 작가님들은 도대체 이런 불안감을 어찌 해소하실까. 그저 의자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은 채로 뭐라도 써내여만 한다는 그런 강건함으로 이겨내시는 걸까, 아님 정말 계속계속 쓸 이야기가 쏟아지시는 걸까. 뭐가 됐든 분명한 것은 그분들에게도 글이 안 써지시는 날은 분명 존재한다는 것이다. (괜한 추론이 아닌 실제로 존경하고 애정하는 작가님들의 에세이집을 읽고, 또 인터뷰를 찾아보며 인정하게 됐다. 그전까지 나는 정말 ‘재능’이라는 게 있다고 생각하며, 그냥 쓰면 되는 일이라고 애써 나에게 흐린 눈을 심어주었다.)


글쓰기,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그래, 한번 해보자

그리고 그것을 인정한 후로 나는 요즘 글을 오래, 그리고 잘 쓰기 위해서는 일종의 굳은살 만들기 훈련이 필요하다는 걸 깨닫고 모색하고 있다. 일단 지금으로서의 답은 그저 앉아서 키보드를 꺼내고, 메모장을 열고, 손을 자판 위에 올려두는 것 말고 다른 방법은 찾지 못했다. 새 메모장을 만들어서 반짝이며 나의 첫마디를 기다리는 화면 속 깜빡임으로부터 눈을 피하기를 몇 분째. 그렇게 도무지 무슨 글자로 어떻게 시작하지에 대한 두려움을 이겨내면, 그날은 이미 성공이다. 그러나 끝끝내 아무 말도 써내지 못할 것 같은 눈치 싸움에서 지는 날이면 나는 그냥 포기한다. 끈기가 부족하다고, 너무 포기가 쉬운 게 아니냐는 한심 섞인 말이 절로 나올지도 모르지만, 뭐 나를 더 괴롭혀봤자 오늘의 24시간 중에 괴로운 시간만 더 늘어날 뿐이다. 내일은 쓰겠지. 내일은 쓸 수 있어. 아니면 뭐 이따가라도. 내일도 안 써지면, 모레는 써지겠지. 그럴 거야. 그렇게 나를 애써 달래 보는 것. 그게 지금 나의 방식이기도 하다.


내가 글을 쓸 때의 간편 준비물 : 핸드폰과 매직 키보드

이렇게 간편하게 들고 다니며, 다소 가벼운 모습으로 글을 쓰는 이유는 언제 어디서든 글을 쓰기 위해서다. 노트북이 없어서, 가방이 무거워서 못 챙긴다는 터무니없는 핑계를 대지 못하게 미연에 방지를 하는 것. 덕분에 나는 언제 어디서든 늘 지니고 다니는 아이폰과 가벼운 매직 키보드만 있으면 글을 쓸 수 있다.(그러나 글을 쓸 준비와 글을 진짜 쓰는 건 또 별개의 문제라는 것.. 그래도 준비가 반이니까-.-!!)


글을 쓰기 직전, 텅 빈 메모장을 바라보고 있자면 차마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울렁임이 찾아온다. 모든 게 터져 나올 것도 같고, 아무것도 나오지 못할 것도 같은 실로 설명하기 어려운 느낌이다. 목부터 가슴까지 저린 느낌도 아닌 것이 두근거리는 느낌 같기도 하고, 몰랑거리는 느낌 같기도 하고. 분명한 건 어쨌든 뭔가를 쓰고 싶기는 하다는 거다. 그 불안감 속에는 내 안에 부유하며 형체가 불분명한 생각더미를 온전히 표현해내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과 더불어 글을 쓰는 도중 갑자기 더 이상 생각이 이어지지 않거나 다음 문장이 떠오르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단단히 자리하고 있다. 아마도 또 그 속에는 ‘잘’ 써야 한다는 스스로에 대한 압박과 부담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뭐든 하기 전에 머릿속으로 상상을 해보고 시뮬레이션을 그려보는 성격에서 오는 문제이기도 하다. 이런 성격을 잘 활용하면 준비성이 철저하고 좀 더 완벽한 결과물과 상황을 만드는 사람이 될 수도 있겠지만, 안타깝게도 나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 생각을 마구 펼쳐본 뒤 생각을 하는 그 과정에서 지쳐버리고 질려버리는 아주 나약한 형태로 분화되고 있다.


그러니 일기를 쓰기 전에도 누워서 미리 일기장을 채울 하루일과와 대화들을 정리해 보고, 음 이렇게 쓰면 되겠다는 생각을 마친 뒤에는 막상 그걸 쓰는 게 너무 고되고 지치게 느껴져 다시 무기력의 상태가 되어버린다. 책상에 앉아서 일기장을 펼치고, 펜을 쥐고, 좀 전에 정리했던 생각을 기반으로 오늘 하루를 기록하려는 그 모든 움직임이 너무나 버겁게 느껴지는 것이다. 그렇지만 여기서도 핵심은 일기를 정말 쓰고 싶어 함에도 이런 피로감으로 미룬다는 것이다. 미루기에는 꼭 내일은 써야지도 포함되는데, 그러다 보니 최악의 날에는 일기가 밀린 날짜들을 떠올리다 지쳐버려서 미루기.. 중고등학생 때는 밀린 일기를 먼저 쓰다가 결국 오늘자 일기에는 도달하기도 전에 손목이 아파 미루기.. 등등 오만가지의 핑계로 결국에 오늘의 일기 쓰기는 끝내 실패하는 최악의 경지를 경신하는 날도 많았다.


제발 대충 좀 살아보렴

뭐 대충 쓰는 성격도 아니고, 한번 썼다 하면 한 페이지는 기본이고, 두세 페이지씩을 꽉꽉 채워 쓰다 보니 하루 이틀 치만 써도 손목이 남아나질 않는 상태가 되어버렸다. 분명 쓰기를 미루는 것과 쓰고픈 말이 넘치는 건 별개의 문제다. 지난번에도 말했다시피 나는 한번 시작하면 끝을 못 내는 긴 글을 쓰는 사람이기에 그런 면모가 일기에서 제외될 리는 만무하다. 그러니까 이렇게 쓰면서도, 내가 참 답답하다.


기억은 ‘후’ 불면 사라지는 먼지 같은 것

알차고 기진맥진한 하루를 보낸 뒤 누워서 오늘의 시간을 돌이켜보면 너무도 생생하니 절대 잊지 않을 듯하지만, 인간의 기억력은 너무도 나약하고, 살아온 시간에 비해 뇌는 터무니없이 조그맣기에 정말 눈 깜짝할 사이에 이 하루에 대한 기억은 흩어져버리고 만다.


보이지 않는 내면의 것까지도

모두 담아두고 싶어 하는 무모한 맥시멀리스트

내가 일기를 늘 ‘쓰고 싶어’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결코 사사로운 것도 놓치거나 흘려보내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옛 것을 버리지 못하는 사람, 그게 바로 나다. 빵꾸난 잠옷바지도 쉽사리 버리지 못하는 나이기에 하루동안 내가 느낀 생각과 만남, 대화는 물론이거니와 내가 느낀 일순간의 생각부스러기조차도 버리고 싶지 않은 사람이다. 내가 오늘 쓴 일기를 몇 달 뒤, 몇 년 뒤에 흐릿해진 날 꺼내 읽으며 퍼즐 조각을 맞추듯 과거의 시간을 떠올리는 것은 무엇으로도 꺼내볼 수 없는 마음을 불러일으킨다. 그 경험을 해본 이상 일기에 대한 욕심은 버릴 수가 없다. 다만, 그 욕심과 몸의 움직임이 일치하지 않을 뿐. 일기를 쓰고 싶은 마음 vs 일기를 써 내려가는 몸의 움직임. 내가 느끼기엔 전자의 힘이 훨씬 큰데, 결국 이기는 건 후자인 날이 셀 수 없이 더 많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 형체를 부여한다는 건 그만큼 힘이 드는 일이라는 것인가.


영화 ‘나비효과’를 보고 난 후 나는 가능한 모든 날에 다이어리를 들고 다니려고 한다. 20살이 넘어서까지 나는 늘 일기는 저녁에, 집에서 정해진 일기장에 썼다. 그러나 평소의 나처럼 나중에 써야지 하다가 잊는 것이 아닌, 영화 속 주인공처럼 틈틈이 생각나는 것들을 적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물론 집에서 밤마다 하루 일과를 기록하는 식의 일기를 적는 일기장이 이미 존재했기 때문에 그걸 들고 다닐 수는 없으니, 휴대용인 새로운 노트를 하나 마련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이 행동의 실천은 일 년간 보류상태긴 했지만 말이다. 심지어는 당시 쓰던 일기장에 일기를 모두 채우고, 노트가 끝나면 그때부터 휴대용으로 일기 쓰기의 삶을 실천하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했다. 그러니까 늘 나의 문제는 생각이 너무 많다는 거다. 여전히 나는 일상의 모든 틈새 시간마다 기록을 하는 삶을 살고 싶었다. 그래서 늘 어깨가 구부정할 정도로 가방이 무거운 날에도 다이어리를 차마 빼지 못한다. 혹시라도 쓰고 싶은 순간에 노트가 없으면 너무 슬프니까 말이다. 그러나 밖에서 결국 쓰는 날은 10일 중 1일 정도가 될까. 놀랍게도 매일 출근을 하면 나의 테이블 위에 다이어리를 꺼내두고, 카페에 갔을 때도 제일 먼저 다이어리를 꺼내두는 데도 기록을 하지 않는 날이 더 많다는 것이다. 이 문제의 원인은 아까 앞에서 말했다시피, 그 어떤 쓰기에 대한 요동치는 마음에서 오는 미루기다.


때론 이 글쓰기를 미루는 마음이 일종의 귀차니즘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모든 것에 피로감을 느끼는 현대인의 고질병과 엇비슷한 무언가라고 해야 할까. 분명 하고픈 말은 있으나 이걸 꺼내는 게 피로하다는 게, 결국 그걸 노력하는 게 귀찮다는 거 아닌가? 결국 내 안을 더 들여다보면 그 조차도 부족한 나를 마주하지 못하는 어린 심리가 내재된 것 같다.


그러니까 다시 말해, 나는 두렵다. 노트를 펼쳐서, 메모장을 열어서 글을 쓰는 것에 대한 두려움. 글쓰기와 내외하는 것도 아니고, 낯을 가리는 것도 아니면서 늘 왜 이럴까. 겨우 두 달 남짓의 기간 동안 글을 써 내렸다고 내 안의 글 소재와 말들이 모두 소진된 건 아닐까 하고 걱정하는 나약한 마음마저 웃기다. 그러니까 오늘도 그렇게 글쓰기와 내외를 하다가 결국 밤 11시가 되어서야 커피 한잔과 함께 이런 한심한 나를 담은 글을 써낸 것이다.


오늘은 뭐라도 썼지만, 내일은 못 쓸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불안해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래도 오늘은 썼으니까.


오늘 썼으니 내일은 못써도 다시 그 모레는 쓸 수 있을 거야. 모레도 안되면 그 모레는 할 수 있겠지.


그럼에도 쓸 수밖에 없는 사람

스스로 당근과 채찍을 주며, 이렇게 써내는 글이 누군가에게는 피식 웃음을 주었으면, 아님 어디선가 나처럼 글을 쓰지 못하고 이 표현할 수 없게 내면의 몰아치는 어떤 요동을 공감하며 위로받기를 바란다. 그러나 그 누구에게도, 그 어떤 것도 전할 수 없더라도 나는 쓸 것이다. 내가 나로서 살아가기 위해 나는 쓰지 않고는 존재할 수 없으니. 하는 수 없지, 쓰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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