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할머니와의 만남
미션 : 할머니의 소설책이 출간되는 것을 도와라-!
해가 질 무렵, 서점 문 밖 너머로 걸어가시는 할머니 한 분이 걸음을 멈추고 서점을 들여다 보신다. 그리거 이내 나와 시선이 마주친다. 주저주저하며, 문 밖에서 안을 들여다보시길래 조심스레 다가가 편하게 들어와 둘러보셔도 된다고 말씀드렸다. 그랬더니 서점이냐고 물으시고는 나의 “네!”라는 대답과 함께 “음~ 알겠다“라고 하셨다. 이어서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영업시간을 물으신 뒤, 곧 다시 방문하겠다는 말을 남긴 채 유유히 언덕 위로 사라지셨다. 무슨 연유인지 알 수 없이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멀어지는 할머니의 뒷모습만 바라보다 이내 다시 가게로 들어와 자리에 앉았다.
그날 이후 며칠이 지나고, 할머니가 다시 찾아오셨다. 나는 유유히 사라진 할머니의 뒷모습 너머로 그날의 만남은 금방 잊어버렸고, 할머니께서 다시 과감히 서점으로 들어오셨을 때 나는 순간 누구신지 기억이 나지 않아 머릿속을 빠르게 돌려보았다. 그러다 저번에 잠깐 지나다 서점인지 물어만 보고 가셨다는 할머니의 말씀을 듣고 나서야 기억이 번뜩이며 떠올랐다. 그리고는 사실 이곳이 서점인 것 같아 뭘 좀 물어보고 싶어 온 것이라며 내게 책을 좋아하는지, 그렇다면 혹시 소설에 대해 조금 아느냐고 물어보셨다. 그래서 평소 내가 가장 좋아하는 분야가 소설이며, 이곳에도 애정하는 소설책들이 이렇게 있다고 말씀드렸다. 서가에 꽂힌 책을 흘깃 보시고는 할머니께서는 사실 지금 글을 쓰고 있다고 고백하시며, 어쩌다 우연히 생각 나 20년 전에 쓴 글을 최근에 다시 꺼내보게 되었다고 하셨다. 지금은 아득하게 느껴지는 20년 전에 쓴 그 글을 다시 꺼내어 읽어보니 새삼스레 책으로 내고 싶다는 생각이 드셨다고 한다. 그래서 직접 파일로 정리해 출판사에 메일을 보냈는데, 기쁘게도 출판사로부터 책으로 출간을 해보자는 제안이 담긴 답변을 받으셨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 20년 전에 써둔 소설을 조금씩 수정하며 출간을 준비하고 계시는 중이며, 그 과정에서 이래저래 요즘 젊은이들에게 인기 많은 소설과 책은 어떤 건지 궁금해 이렇게 물어보러 오게 되었다고 말씀하셨다. “멋지세요”라는 나의 말에 완강하고도 단호하게 자신은 대단한 작가나 글을 쓰는 사람은 아니며, 그렇기에 이리도 긴히 물어보게 되었다고, 모르는 게 많아 걱정스럽기도 해서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으시다고 덧붙이셨다.
그래서 나는 신기하고 또 반가운 마음으로 우리 서점에 있는 책을 소개해드리고, 할머니께서 궁금해하시는 최근 인기 많은 책과 작가, 요즘 소설의 흐름에 대해서도 말씀해 드렸다. 지극히 나의 주관적인 의견이긴 했지만, 나름대로 베스트셀러의 도서와 작가 등 수치를 기반한 정보도 함께 담아 말씀드렸다. 한참동안 최신 소설과 유행, 트렌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나서 할머니께서는 아직 소설을 출간하기 위해 준비하고 의견을 조율하는 단계라 새 소식이 생기면 전하러 곧 다시 오겠다는 말씀을 남기고는 유유히 떠나셨다.
그리고 한 2주일 정도의 시간이 흐르고, 할머니께서 다시 찾아와 주셨다.
곧 표지 디자인을 골라야 하는데, 요즘의 책 표지의 트렌드를 모르겠다고 하시며, 물어보고 싶어 찾아오셨다고 하셨다. 그래서 곧바로 우리 서점에 있는 소설책들의 표지를 보여드리며 작가별, 출판사별 표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설명해 드렸다. 물론 완벽한 지식 혹은 정보가 아닐지라도 내가 알고 있는 것들을 바탕으로 최선을 다해 말씀드리고자 고민하며, 세세하고 친절히 설명해 드리고 싶었다. 대화 끝에 할머니께서는 이렇게 이야기를 나누니까 한결 마음이 편하다고 하시며, 20년 만에 작가라는 꿈을 마음속에서 다시 꺼내 책을 출간하게 된 이 과정이 참 막막하고 걱정스러웠는데, 덕분에 고맙다고 말씀해주셨다. 나는 오히려 이렇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 즐거워 그러지 않으셔도 괜찮다고, 되려 감사하다고 말씀드렸다.
할머니께서는 바로 우리 서점 뒤에 사신다고, 손으로 위치를 가리키시며 집을 설명을 해주셨다. 오며 가며 들리기 쉬우니 또다시 오겠다는 말씀을 남긴 채 떠나셨다. 나는 그저 물어보신 것에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내가 아는 것을 말씀을 드리고, 대화를 나눈 것뿐인데 이렇게 반갑고 또 고마워해주시니 괜스레 내게도 기쁜 마음이 일렁였다.
또다시 한 2주의 시간이 흘렀다.
표지 디자인이 나오셨다며 내게 보여주시고는 약간은 긴장된 듯도 보이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며 어떤지 물으셨다. 그래서 나는 그동안 봐왔던 수많은 책의 독자로써 쌓은 시각과 더불어 서점지기로써의 지극히 주관적인 의견을 더해 진심을 다해 고민하며 의견을 전해드렸다. 할머니께서는 내가 조심스럽게 건네는 말들을 정말 귀담아 들어주셨고, 굉장히 반겨주셨다. 그렇나 나의 주관적인 시선(?)이 담긴 의견을 반영하여 소설의 표지는 최종본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할머니가 가시고 잠시 나는 생각했다. 뭐랄까, 나는 편집자도, 작가도, 출판사의 일원도 아니지만, 이렇게 한 권의 책이 만들어지는 이 여정에 힘을 보태는 미지의 책방지기로써 과정을 함께하고 있다는 게 새삼 신기하게 느껴졌다. 실은 어떤 말을 한마디씩 뱉을 때마다 혹여나 나의 얕은 시각이,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 할머니의 소중한 책을 흐릿하게 만들까 봐 걱정이 되기도 했다. 그래서 할머니께서 내게 나의 생각을 물어보실 때마다 나는 잠깐의 순간에도 말을 몇 번이고 곱씹은 뒤 뱉게 되었고, 또 삼키고 다시 꺼내게 되었다. 물론 나는 아주 미세한, 이 어떤 끝자락의 과정 속에서 도움이라고 하기도 작은, 그런 손길을 보태는 것뿐이지만 말이다. 그러나 늘 고맙다고, 반짝이는 눈빛으로 내게 마음을 전하는 할머니의 말씀을 통해 나는 그런 알 수 없는 불안감을 이내 삼켜내 낼 수 있었다.
날이 화창한 어느 주말, 맑은 날씨처럼 손님이 평소보다 많이 오고 간 날이었다. 손님들이 모두 떠나고, 잠시 서점 곳곳을 정리하고 있을 때 갑자기 무척이나 다급하게 누군가 서점 문을 연다. 고개를 돌려 보니 할머니셨다. 두 손에는 크고 묵직한 노트북을 들고계신 채 가쁜 숨을 몰아쉬며 내게 다가오셨다. 무슨 일이시냐고 여쭤보니, 도움이 필요하다고 하시며 노트북이 이상하다고 안절부절못하고 계셨다. 상황을 들어보니, 오래된 연식의 노트북은 최근 소설 출간 준비로 인해 밤낮없이 열을 올린 탓에 서서히 한계를 드러내고 있었으며, 그런 상태에서 하필이면 마지막 퇴고의 과정에서 이 녀석이 말썽을 부린 것. 이번 주가 마감기한이라 최종적으로 수정 작업을 하고 계신 중에 갑자기 노트북의 한글파일이 열리지 않으며, 무한 로딩의 먹통 상태가 되어버렸다. 모든 내용이 담긴 한글파일이 열리지가 않으니 아무것도 할 수 없거니와 파일이 펑하고 터질까 일촉즉발의 불안한 상태가 우리 앞에 놓여졌다. 자칫하면 심혈을 기울여 수정하고 다듬은 작업물의 최종본을 날릴지도 몰라, 할머니는 사색이 되어 계셨다.
그리고 상황을 들으며, 할머니와 눈을 마주치자 이내 나는 할머니가 얼마나 이 작업에 온 맘과 몸을 바치고 계신지 알게 되었다. 할머니의 왼쪽 눈은 충혈되다 못해 거의 핏줄이 다 터진 듯 부어계셨고, 몸은 지쳐계셨다. 마감 기한을 하루 남긴 작가의 불안과 초조, 피로가 모두 느껴지는 상태셨다. 그래서 나는 우선 할머니께 확인해 보겠다고, 괜찮을 거라고 말씀을 드리고 노트북을 찬찬히 살폈다. 자칫 나의 손길 하나로 파일이 모조리 날아갈지도 모를 두려움을 안은 채로 나는 노트북의 재가동을 간절하게 빌었다. 누군가 이런 사태를 대비해 남겨둔 듯한 메모장에 적힌 설명을 찬찬히 읽어보니, 노트북의 윈도우 정품 인증에 오류가 있었던 것이었다. 그리고 메모장의 설명을 따라 순서대로 진행하자 얼마 지나지 않아 한글파일의 에러 문제는 해결되었다. 침착한 마음으로 파일을 모두 안전하게 저장하고, 전원을 한번 더 껐다 킨 후 멀쩡한 상태를 확인한 후에야 할머니는 한숨을 고르셨다. 지금이 책을 내기 전 마지막 단계라 며칠을 밤새며, 이 작업에만 몰두해 계셨는데 갑자기 노트북이 이래서 너무 놀랬다고 설명하시며, 고맙다고 고맙다고 말씀하셨다. 괜찮다는 나의 말을 들으시곤 얼른 다시 마무리를 해야해서 가보겠다는 말과 함께 할머니는 다시 두 손에 무거운 노트북을 올리시고 빠른 걸음으로 언덕을 오르셨다.
그리고 한 시간쯤 후, 다시 할머니께서 오셨다. 디시 한번 고맙다고 하시면서 별거는 아니고, 직접 구운 고구마와 음료라고, 요즘 친구들이 뭘 좋아할지 몰라 탄산수와 두유, 두 가지를 모두 가져오셨다고 수줍게 건네주셨다. 일하면서 먹으라고 정말 별거 아니라고, 도와줘서 너무 고맙다는 말씀을 다시 한번 덧 붙이시고는 유유히 서점 밖 언덕길로 사라지셨다. 할머니께서 직접 구우신 군고구마는 무척이나 달았고, 맛있었다. 정감과 애정이 담긴 간식은 피곤한오후에 출출하던 나의 배를 포근히 채워주었다. 나는 그저 메모장의 설명을 보고 찬찬히 시도를 해보았을 뿐인데, 할머니께서 이리도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모습을 보니 함께 마음을 쓸어내렸다.
그렇게 잠깐 사이의 아찔했던 긴장감을 털어낸 뒤, 나는 그래도 참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다시 손님들을 맞이했다. 작가의 삶은 늘 이 ‘저장’과의 싸움인 것 같다. 나의 열 손가락이 바쁘게 움직여 써 내려간, 무수한 시간 사이로 지어진 글자들이 한 번의 오류와 에러로 순식간에 허공으로 사라질지도 모를 불안감. 그건 정말 악의 악이다. 그래도 이날의 절체절명의 순간에 끝내 ‘악’과의 싸움에서 이겨냈으니 참으로 다행인 하루가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약 한 달의 시간이 흘렀다. 할머니께서 드디어 책이 출간되었다며, 문자를 주셨다. 조금 이따 서점에 책을 들고 오시겠다는 할머니의 메시지를 보고 나는 조용히 설레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 시간 후, 할머니는 커피 한잔과 함께 서점으로 들어오셨다. 내가 무얼 좋아할지 몰라, 고민하다 사셨다며 달달한 아메리카노를 건네주셨다. 그리고 이어서 전해받은 이 여정의 주인공, 소설책이 눈앞에 나타났다. 몇 달 전에 본 그 표지의 모습 그대로 진짜 책의 형체로 나타난 이 녀석을 보자 나는 복잡 미묘한 마음이 들었다. 할머니께서도 진짜 이렇게 책이 나오니 참 신기하다고, 작가가 되어 기분이 참 몽실몽실 하시다며 미소를 머금은 채 말씀하셨다. 내일부터 온라인에 등록되어 대형서점에서 판매가 시작될 예정이라는 것도 알려주셨다. 그리고 한번 잘 읽어봐 달라고, 어떤지 정말 솔직하게 말해주면 좋겠다는 말씀과 함께 할머니께서는 후다닥 서점을 나서셨다. 나는 할머니께서 주신 달달한 시럽이 담긴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힘차게 책을 읽어 내려갔다.
책을 다 읽은 다음 날, 할머니께 연락을 드리자 금방 서점에 들러주셨다. 이미 글은 다 썼지만 나눠서 출시될 2권도 곧 출간될 예정이라 피드백이 무척 귀하다고 하시며, 주변에서도 이따금 연락들이 하나둘 오고 있다고 서서히 책을 출간한 게 실감이 나신다고 하셨다.
그렇게 또 한참의 시간이 흐른 뒤, 할머니께서는 드디어 2권이 출간되었다는 소식과 함께 책을 들고 서점을 찾아주셨다. 그 사이 할머니는 많이 달라지셨는데, 처음의 부끄럽고 수줍어하시던 모습에서 이제는 작가로서의 호칭과 대화를 어색해하지 않으셨다. 훨씬 당당하고 자신 있게 말씀을 하시는 모습이 조금 낯설기도, 신기하기도 했다.
‘꿈’이라는 건 그런 것 같다. 말로 꺼내기조차 조심스럽고 작게 느껴지던 무언가를 이루어내는 순간, 그전과는 다른 어떤 에너지를 만들어준다. 할머니의 ‘작가’라는 꿈을 이루내는 그 20여 년의 시간 사이로 나는 새삼 다시 그런 어떤 마음들을 느낄 수 있었다. 오래전에 남몰래 써둔 글을 놓지 않고 시간이 흘러 다시 꺼내어보는 것. 그리고 직접 출판사에 보내고, 책으로 만들어지기까지. 나는 때론 관찰자처럼, 때론 조언자가 되어, 또 때론 그저 동네 친구로서 할머니와 대화를 나누고 또 함께했다. 나는 또 한 번 책방지기로써 어떤 베네핏을 얻은 것처럼 별방구가 아니었다면 상상해보지 못했을 새로운 만남과 경험을 하게 되었다. 늘 새로운 만남과 예기치 못한 우연이 공존하는 곳, 평범한 일상 속에서 새로운 이들과의 낯선 이야기가 존재하는 공간. 의도하진 않았지만, 매일의 한 조각조각들이 일상과 이상 사이에 머무는 별방구를 그렇게 채워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