깃털 하나

by 몽당연필


나는 너를 잊지 못할 것이다.


다른 나무 한 그루조차 존재하지 않는 공터에 덩그러니 홀로 서 있는 나에게, 그 누구도 필요로 하지 않는 나에게 날아와 지저귀던 너를.


주변에 무엇 하나 없고, 먹을 수 있는 열매를 맺을 일도 없이, 그저 세월의 흐름에 따라 찬찬히 말라비틀어져 갈 일만남은 나에게 있어 유일하게 마음을 터 놓을 수 있는 말동무이자 벗은, 어렸을 적부터 어울려 지냈었던 너뿐이었다.


무기력하고 소극적인 나와 다르게 너는 언제나 활발하고 적극적이어서 주어진 삶을 충실히 살아가며 힘찬 날갯짓을 하는 존재였다. 너에게는 동고동락할 수 있는 많은 좋은 친구들과 너와 남은 여생을 같이 날아다닐 것을 약속한 짝도 있었다. 낙천적이면서도 때로는 엉뚱한 생각을 가지고 날아와 재잘거리는 너는, 나를 웃음 짓게 만들었다.


맛있는 열매도, 시원한 그늘도, 둥지를 틀 수 있는 단단한 기반조차 줄 수 없고, 재치와는 거리가 아득히 먼, 쓸모라곤 찾아볼 수 없는 나에게 아무런 이유 없이 쪼르르 날아와 종종거리는 발걸음으로 가지를 돌아다니며 노래하고, 자신이 바라보고 겪은 세상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주는 너에게 나는 고마움을 느꼈다.


그러나 홀로 있는 시간에 익숙해져 버린 나이기에, 너의 방문과 노래는 기쁘면서도 한편으로는 이따금 피곤함을 느꼈음을 고백한다.


나에게 있어 너는 유일한 친구였지만 어린 시절과는 달리 삶에 대해, 세상에 대해, 자기 자신에 대해, 자신의 주변에 대한 생각이 세월이 지남에 따라 어느새 서로 다른 결을 가지게 되었다.


어느 날, 평소와 달리 바람이 유난히 스산하게 불던 날.


그리도 재기 발랄하던 네가 힘없이 날아와 나의 가지에 앉았지만 노래하지 않았을 때, 언제나 즐겁고 활발할 수만은 없는 것이라 생각한 나는 너를 가만히 두었다. 이는 시간만이 해결해 줄 수 있으리라는 믿음에서.


활기를 잃어버린 너는 평소와 달리 유난히 나를 많이 찾아왔다. 이전처럼 혼자 즐겁게 노래하며 재잘대지는 않았지만, 너와 나에게는 곱씹을 추억거리가 많았다.


너는 나의 그 조그만 그늘에서 더 쉬고 싶어 했다. 그러나 너의 그런 간절한 마음을 헤아릴 만큼 나는 성숙하지 못했다.


불안과 좌절이 너의 마음을 좀먹어가고 있다는 것을 나는 자기 자신에게만 몰두한 나머지 미처 알아차리지 못하였다.


그렇게 너는 편히 있을 곳을 찾아 훨훨 날아가버렸다.


하늘에는 날아가고 있는 새들로 가득하고 너 또한 그런 날아가버린 새들 중 하나에 불과했다. 새는 언젠가 날아가기 마련이고, 내가 이곳에 있는 동안 무수한 새들이 하늘을 향해 날아오르며 나를 스쳐 지나갔음을 알고 있다. 그중 일부는 내 눈길을 끌기도 하지만 이는 살랑거리는 바람이 금세 사라지듯이 찰나에 불과했다.


이번에는, 그 아득해 보이는 날갯짓이 좀 더 내 가까이에서 일어났을 뿐이다.

그런 것뿐이다.

그저 그렇게 퍼덕이며 날아가는 새들 중 단지 이번엔, 그곳에 너도 있었다는 것뿐이다.


알고 있다.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네가 하늘을 향해 날아가며 미처 같이 떠나가지 못한 깃털이 가지에 내려앉은 모습이 자꾸만 눈에 걸려 시려올 뿐이다.


지친 날개를 퍼덕이며 날아가버린 너를 그리워하고 나를 자책해 본다. 그러나 네가 다시 돌아올 일은 없구나.


너의 친구들이 찾아와 나는 너의 가장 친한 친구이지 않았느냐고 묻는다. 그 물음은 예리하게 벼려진 도끼날로 변해 내 몸뚱이를 몇 번이고 찍어 누른다. 너의 가족과 짝이 구슬피 부르는 노래는 갈 곳 잃은 눈물이 되어 깊게 파여버린 날자국을 통해 미끄러져 들어와 쓰라리게 만든다.


나는 더 이상 노래를 듣지 못할 너를 위해 앙상한 나뭇가지를 비벼 노래한다. 들어주는 이 없는, 그 누구도 노래라고 생각지 못할 그 노래를.


너는 날아가버렸지만, 네가 날아가버린 하늘은 그 어느 때보다 푸르고 햇살은 포근하게 내리쬐어 자신의 화창함을 자랑한다.


날자국에서 오는 쓰라림은 이리도 선명한데도 저 멀리 보이는 평야에 활짝 피어난 꽃들과 옹기종기 모여 있는 나무들이 저마다 행복한 웃음으로 화창한 날씨를 만끽하는 것이 야속하게 느껴진다.


나는 너에 대해 무심했던 자신을 결코 용서할 수 없다. 너의 불안과 고통을 알아보지 못한 채 외면해 버린 나를, 네가 용서치 않기를 바란다.


이제 나를 찾아올 이는 없다. 나는 슬프지만 그럼에도 뻔뻔스럽고 비천하지만, 살아가고자 한다.

나는 여전히 뿌리로 양분을 빨아들이며, 비가 오면 게걸스레 물을 머금을 것이다.


하늘을 향해 날아가는 새들을 보며 나에게 날아와 재잘거리던 너를 생각한다.

광막하게 펼쳐진 하늘과 구름만을 바라보고 싶은데 나의 시야에는 언제나 다른 지나가는 새가 맺혀온다.


나는 오늘도 홀로 덩그러니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나는 그렇게 어제와 다름없는 오늘을, 일상을 보낼 것이다.


그러나 다시는, 가지 위에 앉아 노래해 줄 이는 없다.


내 앙상한 가지에는, 너의 작은 깃털만이 이따금 보일 뿐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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