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 순례기: 인도 히말라야 티베트 불교의 라다크 2

하늘의 정거장 라다크, 구름 위 하늘 호수 판공 초

by 재현



아무런 계획도 정보도 없이 이른 인도 히말라야 고원 마을 레(གླེ). 갑작스레 백두산 정상보다 천 미터는 높은 고산의 청명하면서도 희박한 공기가 낯설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뜻 밖의 곳에도 특별한 순간들은 이어졌습니다. 무작정 자전거를 빌려 티베트 불교의 라마들이 수행하던 곰파(དགོན་པ)를 찾고 인더스 강을 달린 순간.


즉석에서 만난 인도인들과 일행을 맺어 해발 4,000m 위의 하늘 호수 판공(དཔང་གོང་མཚོ)을 향해 떠난 여행. 그것들은 곧 평생 잊지 못할 즐거움이자 추억이었습니다.


“그날 나는 깨달았어. 이 심장은 쉽게 겁을 먹는다는 걸. 문제가 아무리 커도 심장을 속여야 해. 네 심장에게 말해 ‘친구, 다 잘될 거야 (All izz well).’ 이 만트라를 기억해. 여기서 정말 필요할 거야.”

फुनसुख वांगडू (Phunsukh Wangdu), 3 Idiots


삶이 꼭 예정된 대로, 원하던 대로 흘러가지 않더라도 그것에 얽매이지만 않는다면 어떤 길 위에서든 결국 저마다의 행복과 기쁨을 찾을 수 있을 거라는 걸.


인도 영화 세 얼간이의 상징 “알 이즈 웰”. 상황에 흔들리지 않고 주어진 행복을 잃지 않게 해주는, 그 자체로 삶의 불확실성을 즐겁게 마주하는 방법일 겁니다.





གླེ (2025.8.21)


라사로 가는 길은 단순한 여행이 아니었다. 그건 영혼의 순례였고 매 걸음마다 내면의 변화가 일어났다. 히말라야의 공기는 너무나 맑아서, 마치 생각 자체가 수정처럼 투명해지는 것 같았다. - 티베트 마법의 서 (Alexandra David-Néel)


히마찰 지역의 자연 재해로 원래 목적지 스피티 대신 레를 향했습니다. 비행으로 난생 처음 고원에 진입하자 극도로 희박한 산소와 세상과는 단절된 듯한 특유의 분위기가 이곳을 더 새롭고 긴장되게 만들었습니다.


혼란스럽고 스캠에 시달리던 델리와 달리 청명하고도 평온한 분위기에 마음은 훨씬 편안했습니다.



라다크는 인도 최북단 고원 지역이라 일반적인 유심은 작동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레에 도착하자마자 가장 먼저 라다크 전용 유심을 개통했습니다.


레는 원래의 여행 목표에서 기대했던 아주 오지의 분위기는 아니라 아쉬움이 남기도 하고, 정보도 계획도 없어 이제 도저히 무얼 해야 하나 난감하기도 했습니다.



이후엔 점심을 먹고 퍼밋을 발급받으러 갔습니다. 라다크는 국경과 매우 인접하여 대부분 출입이 제한되기 때문에 여행을 하려면 반드시 자치 정부의 허가증이 필요하고 복사본도 충분히 만들어 두어야 합니다.


희박한 산소 때문에 몇백 미터 되지도 않는 짧은 거리임에도 걷기조차 힘들고 숨이 몹시 차올랐습니다. 비행기로 레에 바로 들어온 여행자들은 보통 이틀 정도 고산병으로 인해 컨디션이 상당히 좋지 않다고 합니다.



사무실에 한국인 여행자 한 분이 연락처를 남겨두어 직접 만나진 못하고 카톡으로 간단한 인사를 나눴습니다. 라다크는 대중교통도 거의 없고 지역 간 거리가 멀고 험준하기 때문에 동행을 구하거나 현지 기사를 셰어할 수 있도록 가능한 많은 연결을 맺어두는게 좋습니다.



처음 머문 호스텔은 1박에 약 5천 원 정도였는데 안락하고 깔끔했습니다. 레에 특히 비행기로 이동하면 하루 이틀은 반드시 휴식을 취하라는 조언을 들은 터라 첫 날은 하루종일 얌전히 침대에 누워 책을 읽었습니다.



호스텔에서 유일한 룸메이트였던 인도인 비핀은 현대자동차의 인도 지부에서 일하고 있다고 하며 놀랍게도 부산 출신 한국인 여자친구가 있었습니다. 비핀은 저에게 이탈리아인과 일본인 여행자와 함께 몇 박 동안 바이크 여행을 가자고 권유했지만, 저는 바이크를 타본 적이 없어 아쉽게 함께하지 못했습니다.


라다크에서는 한동안 잠을 잘 때가 가장 불편했습니다. 산소가 부족해 자주 뒤척였고, 새벽마다 머리가 무겁게 짓눌리는 느낌에 눈을 뜨기도 했습니다.



སྤི་ཐུག་དགོན་པ་ (2025.8.22)


‘이곳이 당신을 감동시켰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라고 옆에 앉은 노승이 알듯한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하지만 영원한 건 없고 이 순간도 삶처럼 지나갈 겁니다. 중요한 건 당신이 그것을 어떻게 살아가느냐입니다‘ - National Geographic (2024)


어제 연락처를 알게 된 한국 분을 따라 현지 기사님과 몇 박간 더 먼 곳으로 다녀오려 했으나 고산병 때문인지 그분의 건강 상태가 심각하게 나빠져 있었습니다.


교통이 불편한 고산지대에서 멀리 여행 하려면 반드시 동행자를 찾아 새로 계획을 세워야 했는데 세 시간 넘게 헤매도 함께할 사람을 구하지 못해 불안했습니다.



어제 비핀이 동행자를 찾기 더 좋을 것이라고 추천해준 다른 호스텔로 체크인했습니다. 우연히 화이트보드에서 마지막 한 자리 남은 동행 모집 글을 발견했습니다. 동창에게 들은 판공 외엔 난생 처음 들어보는 곳들이었지만 한레는 별보기 좋은 천문 마을, 초모리리는 오지의 매력을 지닌 곳이라 하여 더 기대가 됐습니다.



내일부턴 알맞은 일정을 확정해, 마침내 후련한 마음으로 남은 하루를 보낼 수 있었습니다. 자전거를 빌려 인근 여러 지역을 혼자 마음 가는대로 돌아다녔습니다.


히말라야의 드넓은 한가운데에서 자전거를 타는 순간, 전혀 느껴본 적 없던 색다른 감각이 몰려왔습니다.



희박한 산소는 숨을 가쁘게 만들면서도 오히려 묘한 흥분을 주고 끝없이 펼쳐진 대지에 티베트 불교의 문화가 어루어진 풍경은 매우 경이로웠습니다.


히말라야의 탁트인 광할함과 고산 특유의 공기는 절대 직접 경험하지 않고서는 짐작조차 할 수 없는, 사진으로는 결코 담아낼 수 없는 감각이었습니다.



라다크는 파키스탄과 중국에 접한 국경 지대이기도 합니다. 카르길 전쟁 등에서 나라를 지킨 장병들의 희생을 기리는 전쟁 기념관 등이 곳곳에 세워져있으며 현재도 군사 기지와 검문소들이 배치되어 있습니다.



སྤི་ཐུག་དགོན་པ་ (Altitude: 3,307m)



레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스핏둑 곰파를 만났습니다. 곰파는 티베트 불교의 수행자인 라마들이 생활하며 경전을 공부하고 예불을 드리는 곳입니다. 15세기에 지어진 겔룩파 사원으로, 인더스 강 상류가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 불교 전승의 정통을 이은 수행 공간입니다.



자전거를 세워두고 안으로 걸어 올라가니 독일인 노부부와 이탈리아에서 온 여성 여행자 둘을 만났습니다. 노부부들은 평화로운 이곳에 자주 방문한다 합니다.



언덕 위에 층층이 쌓인 건물에는 오색 경전이 바람에 펄럭이고 적갈색 법의를 입은 승려들이 오갔습니다. 낡은 만다라 벽화가 가득한 법당 안은 버터램프의 은은한 불빛과 향, 독경 소리가 계속해서 울려퍼집니다.


예배당은 촬영이 금지였는데 안에서 책을 읽던 중 한 인도인 여성 분이 불상 앞에 무릎 꿇고 힌디어로 중얼거리며 오체투지하는 모습이 인상 깊었습니다.



곰파 주변의 마니차를 돌렸습니다. 경통 안에 새겨진 옴 마니 파드메 훔의 진언은 마니차가 한 바퀴 돌 때마다 독송된 것으로 여겨져 공덕을 쌓을 수 있다고 합니다.



언덕 정상에서는 인더스 강과 끝없는 평원이 펼쳐져 불교에 관한 책의 글이 더 와닿는 시간이었습니다


고원의 곰파에서 말 없이 수행에 잠긴 승려들의 뒷 모습을 바라보며 우리 모두는 저마다의 짐과 고민을 안고 살아간다는 사실을 다시금 떠올리게 됩니다.



སིན་དྷུ་ (Altitude: 3,299m)



오토바이를 타고 온 인도 청년들과 대화를 하다가 다시 페달을 밟았습니다. 스핏둑 곰파 아래로 흐르는 인더스 강은 히말라야 설산에서 시작해 라다크 평원을 가로지르며 수많은 곰파와 마을을 이어주는 물길입니다.


산업폐수로 오염이 심각하다는 펀자브나 카라치의 인더스 강 하류와 달리 라다크의 상류는 빙하수 특유의 청명함으로 광활한 평원이 수면에 그대로 비쳤습니다.



길에는 황금 불상, 마니 돌무더기, 오색 경전의 깃발 등 불교의 오랜 흔적이 이어지고 저처럼 지나가던 여행자들과 가볍게 인사를 나누는 순간도 좋았습니다



한참 언덕을 올라 풍경이 탁 트이게 내려다보이는 아무도 없는 자리에 혼자 앉아 책을 읽으며 보냈습니다.




스피티 밸리에선 자전거를 빌려 고원을 탐험하던 순간이나 인더스 강 앞에 앉아 끝없이 흐르는 물결을 바라보며 시간을 흘려보내던 순간은 만나지 못했을 겁니다.


투명한 인더스 강을 내려다보며 구름 한 점 없는 하늘 아래 홀로 앉아 있었습니다. 사람 하나 없던 적막함 속 세상과 단절된 듯한 그 고요가 몹시 평온했습니다



희박한 산소 속에서의 고산 싸이클링은 예상보다 훨씬 고됐습니다. 힘겹게 돌아온 레의 호스텔에는 세 명의 인도인 친구들이 있었고, 특히 델리 출신이라는 하이델과는 라다크의 마지막 밤도 함께 보내게 됩니다.



དཔང་གོང་མཚོ (2025.8.23)


그리고 가장 소중한 것은, 당신은 시간을 갖게 될 것이다—당신의 서구 국가들이 그것을 추구하면 할수록 잃어버린 그 희귀하고 사랑스러운 선물을 - 잃어버린 지평선 (James Hilton)


어제 어렵게 찾아낸 일행과 함께 레를 떠나 히말라야의 깊고 높은 곳으로 향하는 날입니다. 일행은 모두 인도인으로 이름은 비카스와 사미, 크리슈나입니다.


라다크는 인도 내에서도 접근성이 떨어지고 고산병같은 위험이 존재해 여행지로 대중적이지 않다 합니다.



첫 목적지는 히말라야 높은 곳에 자리한 거대한 하늘 호수, 판공입니다. 가는 길목은 한쪽이 그대로 가파른 절벽인데도 안전망 하나 없는 구간이 많았고 군데군데는 아예 길이 무너져 있기도 했습니다.


길이 워낙 좁아 맞은편에서 차나 오토바이가 내려오면 언제라도 부딪힐 듯 아슬아슬했습니다. 그런데 기사 아저씨가 워낙 능숙하고 안정적으로 운전을 하셔 의외로 전혀 무섭거나 위험하다곤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ལྕང་ལ་ (Altitude: 5,360m)



판공 호수로 향하는 길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도로 중 하나인 창라(5,360m)를 통과합니다.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와 비슷한 고도로 숨 쉬기도 힘든 높이였습니다.


판공은 고도가 워낙 높고 험준한 곳에 위치해 있어 인도인들 사이에서도 평생 한 번은 가보고 싶은 버킷리스트로 손꼽힌다고 합니다. 이곳의 순간이 나에게만 특별한 경험이 아니라는 것이 더 의미 있게 다가왔습니다.


구면인 듯 했던 비카스와 사미는 며칠 전 델리에서 레로 가는 공항에서 서로 처음 만났다고 합니다. 모두가 이번 여행에서 거의 초면이나 다름없는 사이입니다.



창라 패스 정상 휴게소에서 비카스가 짜이 한 잔을 건넸고 다음 마을에서는 말없이 점심값까지 내줬습니다.



6시간이 넘는 긴 여정으로 인도 친구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가장 흥미로웠던 건, 인도 내 지역 끼리도 언어와 문화 차이가 유럽의 이탈리아와 프랑스만큼이나 크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모두가 영어로 대화하길래 저를 배려해 주는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남인도 출신인 크리슈나와 북인도 출신인 비카스는 서로 모국어가 달라 사실은 영어가 아니면 원활히 소통하기가 어려웠던 것입니다.


크리슈나는 IT 개발자, 사미는 인테리어 디자이너, 비카스는 컨설턴트로 관광지로의 인도가 아닌, 현대의 인도를 살아가는 청년들의 일상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판공으로 가는 길에는 히말라야 고산지대의 동물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목초지에는 야크들이 풀을 뜯고 있었고 토실토실한 마못도 아주 가까이서 보았습니다.




དཔང་གོང་མཚོ (Altitude: 4,350m)



인도 음악이 흐르는 차 안에서 창밖의 히말라야 산맥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으니, 어느새 광활하고도 영롱한 푸른 빛의 호수가 보였습니다.



숙소는 2인 1실이었고 크리슈나와 함께 방을 썼습니다. 열악한 인프라로 따뜻한 물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뱅갈루루에 사는 크리슈나는 케랄라 정글과 고아 해변 등 북인도와는 전혀 다른 남인도 이야기를 들려줬습니다.



광활한 산맥의 압도감과 숨조차 가쁘게 만드는 고원 위에 바다처럼 펼쳐진 호수는 이질적이면서 신비로운 감동을 안겨줍니다. 어렵게 도착한 판공의 풍경은 마음 깊은 곳에 울림을 줄 정도로 감동적이었습니다.


이곳에 오기 전 블로그에서 누군가 판공을 보고 지금 당장 죽어도 여한이 없다는 감정을 느꼈다고 쓴 글을 본 적이 있습니다. 삶을 포기하려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 이곳에 오면 이 풍경 앞에 다시 살아갈 힘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혼자 호숫가에 앉아 시간을 보내기도 하고 이내 함께 온 인도 친구들과 주변을 구경하다 저녁을 먹었습니다.


비카스는 영국에서 샀다는 차 티백 한 묶음을 건네주었습니다. 말없이 차와 점심을 사주고 늘 잘 챙겨주는 젠틀한 친구였습니다. 사미는 항상 친절하고 다정했고 크리슈나는 친근하면서도 배려심이 정말 깊었습니다.


인도 영화의 상징적 장소를 좋은 인도 친구들과 함께했다는 사실이 그날의 특별함을 더 빛내주는 듯 합니다.



다음 날 아침, 크리슈나가 일출이 시작된다며 저를 깨워주었습니다. 그 때 듣고있던 애플 뮤직에서는 AKMU의 시간과 낙엽이라는 노래가 기억에 남습니다.


판공의 풍경은 아름답거나 웅장하다 정도가 아니었습니다. 제 인생을 깊이 돌아보게 하고 정말 눈물이 날 정도의 감동을 지닌 경관이었습니다. 지금껏 많은 곳을 경험해 왔지만, 오직 그 풍경만으로 이토록 깊은 감정을 느껴본 것은 난생 처음입니다.


그저 살아있다는 사실과 그 안에서 누릴 수 있던 작은 여유만으로 이렇게 크게 다가올 줄은 몰랐습니다. 간혹 세상이 강요하는 기준과 비교, 욕심 속에 흔들리던 마음조차 이 고요함 앞에서는 한없이 작아 보였습니다.






비행기에서 내려 처음 마주한 히말라야 고원의 그 압도적인 장엄함과 경이로움은 평생 잊을 수가 없습니다.


자전거로 인더스를 가로지르고 끝없이 흐르는 물결을 앉아서 바라보던 기억. 즉석에서 만난 인도 친구들과 하늘 호수로 향한 것도 사실 그게 어떤 곳인지조차도 잘 모른 채 떠났기에 오히려 더 강렬했을 지 모릅니다.


불안과 걱정이 많던 나의 내면 속 위축을. 목표 지향적 인 삶을 살았던 조급함을. 이제는 삶의 불확실함이란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믿을 수 있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계획에 없던 내일을 두려움이 아닌 설렘으로 마주할 때, 세상이 이토록 상쾌하고 자유로울 수 있구나.


All is Well. 모든 것은 잘될 것이기에, 불확실성에 휘둘리지 않고 지금 이 순간을 온전히 살아갈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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