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사고 친 사람과 책임지는 사람이 따로 있는 세상

사고치는 사람이 죗값을 치르지 않는다.

by 헤르메스의 편지

‘주인이 잘못하면 하인이 매를 맞는다’는 말이 있다.
조선시대처럼 신분제가 엄격했던 시절,

높은 자리에 있던 양반이 죄를 지으면 벌은 하인이 대신 받았다.

법으로 정해진 것도, 제도로 규정된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현실은 법보다 강했다.
체면, 권력, 위계 같은 이유로 그런 부조리는 조용히 넘어갔다.


이런 일이 과거에만 있었던 일이라면 좋겠지만,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방식이 더 교묘하고 정교해졌을 뿐이다.


뉴스를 보다 보면 어이없을 때가 많다.
회사의 돈을 유용하거나 무리하게 확장을 시도해 회사를 위기에 빠뜨리는 건 대개 경영진이다.

그런데 정작 고통을 떠안는 건 말단 직원, 협력사, 소비자다.

회사가 클수록 정부가 개입해 국민 세금으로 그 피해를 메우려 하기도 한다.


물론 경영진도 책임을 진다.

문제는 성공할 때는 경영진이 그 달콤한 열매를 무한정 먹으면서도,

정작 실패할 때는 실제로 책임져야 하는 범위보다 적게 책임진다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배째라고 나오면 일개 개인이 그 엄청난 뒷수습을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까?)


이런 모습을 볼 때마다 묻게 된다.
왜 사고를 친 사람이 아니라

결정에 아무 권한도 없었던 엉뚱한 사람들이 피해자가 되는가.


최근에 문제가 된 홈플러스 사태도 같은 구조다.

(난 홈플러스를 자주 이용하기에 홈플러스 경영난 뉴스는 꽤 충격적이었다.)


2015년, 사모펀드 MBK파트너스가 홈플러스를 인수한 후에
단기적인 고수익을 얻기 위한 목적으로

본업인 유통업은 뒷전으로 밀어놓고, 부동산으로 돈을 버는 전략에 집중했다.

전국 주요 매장의 알짜 부지를 매각하며 막대한 수익을 올렸다.


그 결과는 뻔했다.
매장 폐점, 정리해고, 물류 시스템 약화, 서비스 품질 하락.

직원, 소비자, 지역사회가 고스란히 피해를 떠안았다.


하지만 사모펀드는 “합법적 투자였다”며 당당히 빠져나갔다.
남은 것은 해체된 조직,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 공동화된 지역뿐이다.


이익은 위로 향하고, 고통은 아래로 떨어진다.
책임은 사라지고, 피해는 책임지지 않아도 되는 이들의 몫이 된다.


정치도 다르지 않다.


어떤 정치인은 특정 정책을 밀어붙이며 박수를 받는다.
‘정의’를 내세우고, 사람들의 분노를 자극하고, 정치적 이익을 챙긴다.
하지만 그 정책이 진짜 효과를 낼 수 있는 현실성이 있는지,

나중에 어떤 부작용이 나타날 것으로 예상되는지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그리고 그런 관심 없음은 정치인만의 문제가 아니다.
일반 국민도, 언론도 대부분 그 뒷이야기엔 관심이 없다.
표면적인 현재의 감정에 반응하고, 당장의 사이다 발언에만 열광한다.
정책의 부작용이 현실화될 즈음엔 이미 시선은 다른 뉴스로 옮겨가 있다.


정치인들은 이 구조를 잘 안다.
그래서 ‘어차피 아무도 오래 기억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용한다.
성과는 자기 몫, 부작용은 남의 몫.
성과와 책임이 분리되는 구조가 반복된다.


결국 정책 부작용의 피해는 또다시 아무 힘도 없는 이들이 짊어진다.

부작용의 피해가 걷잡을 수 없이 커져서,

대중들의 관심이 다시 뜨거워지면
후임 정부나 말단 공무원이 전면에 나서고,

국민의 분노는 ‘지금 그 자리에 있는 사람’에게 쏟아진다.
정책을 설계하지도 않았고 결정하지도 않았던 사람들인데 말이다.


상황이 되면 정치인들은

다시 이 사건이 새로운 정치적 손익으로

작용할 건수라는 냄새를 맡게 되고,

누가 이 사태의 범인인지 대대적인 책임공방을 시작한다.

이 경우에도 진실을 가리는 데 집중하기보다
‘어떤 정치인과 정당이 손해를 보느냐 아니냐’를 기준으로

사실관계를 교묘히 왜곡시키고, 논점을 흩어버린다.


결국 사람들 사이에 퍼지는 건 진실이 아니라,

인기 있는 사람이 말하는 이야기다.


직장도 이 구조에서 자유롭지 않다.


어떤 프로젝트가 실패했을 때, 책임져야 할 위치에 있는 사람은 윗선이다.
방향을 정하고 자원을 배분하고 의사결정을 내린 사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로 그 실패에 대해 곧바로 비난받고 타격을 입는 건, 아랫사람들이다.

윗선의 잘못된 판단, 무리한 목표 설정, 탁상공론식 전략이 문제였음에도
보고서를 작성한 주니어, 메신저 역할을 맡은 중간관리자가 공격을 받는다.


프로젝트가 실패하게 되면

실제 의사결정을 내린 윗선은 이미 사라지고 없거나,

유체이탈 화법을 써가며

자신은 모르는 일 또는 자신이 결정한 일이 아님강조하기도 한다.

그리고, 상황을 살펴보고 문제를 개선하겠다는 식으로 발언을 하면서

교묘하게 아랫사람들을 후려친다.


프로젝트가 성공하면

자신이 한 일을 몇 배나 크게 부풀려가며

여기저기서 숟가락을 얹어대지만,

프로젝트가 실패하면 이러한 진풍경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이런 풍경을 보다 보면,

조직 안에서도 진짜로 책임지는 사람이 점점 사라지는 이유를 알 것 같다.


가끔은 생각이 많아진다.
이익을 보는 사람과 고통을 받는 사람이 다르다는 건, 그냥 인류 역사에서 자연스러운 일인가?
세상이 원래 이렇게 작동하도록 만들어진 건가?


하지만 또 한편으론 이런 생각도 든다.
이 불합리함에 분노하는 사람이 늘어날수록,
직접적인 피해자가 아니어도 고통에 공감하고 목소리를 내는 이들이 많아질수록,
그 사회는 조금씩 정화되기 시작할 것이다.


나는 집단지성의 힘을 믿는다.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부조리를 감지한다.
정치적 극단에 빠지지 않은, 차분하고 이성적인 다수는
누가 진짜 책임져야 하는지를 알아본다.

그리고 그에 근거하여 정치인과 정당을 선택한다.
그 선택들이 모이면 사회 전체의 방향이 정해진다.


세상의 구조가 완전히 바뀌지는 않더라도,
그 구조가 더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굴지 못하게 만들 수는 있다.

그 힘은 부조리에 대한 관심, 분노, 그리고 공감에서 시작될 것이다.


그리고 직장이라는 구조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나를 지킬 수 있는 최소한의 감각이 필요하다.


말을 아껴야 할 때와 나서야 할 때를 구분하고,

무리한 책임이 떠넘겨질 조짐을 미리 감지하며,
내가 한 일과 하지 않은 일을 스스로 기록하고 증명할 수 있어야 한다.

사람 좋은 이미지로는 아무도 나를 지켜주지 않는다.


그래서 감정보다 사실, 관계보다 구조를 먼저 보는 자의식이 필요하다.

이것이 내가 말하고 싶은 지혜다.


분노에만 머물지 않고, 나 자신을 덜 다치게 만드는 현실적인 방어감각.
그게 쌓이면 언젠가 나도,

그리고 나와 같은 위치의 누군가도
좀 더 공정한 구조 안에서 일할 수 있지 않을까.


나는 그렇게 믿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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