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나의 웃음 버튼은
아직도 작동 중입니다.

by Amberin

나의 웃음 버튼은 아직도 작동 중입니다.


가끔 이유 없이 웃음이 터지는 날이 있다.

바로 오늘 같이 맑은 아침 햇살을 받는 날이면

그냥 웃고 싶어진다


문득 머릿속에서 ‘톡’ 하고 튀어나온 한 장면이

나를 무장 해제 시킬 때.

그 장면은 대부분 아주 사소하고, 엉뚱하며,

남들이 보기엔 별것 아닌 순간일지도 모르지만,

내게는 진심으로 웃긴 순간들이다.


한 십 년 전의 어느 날 오후.

평소처럼 피아노 수업 중이었다.

아이들이 피아노를 치는 방에서는 보통 건반 소리가 일정하게 들려오는데,

그날따라 한 아이의 방에서는 한참 동안 소리가 나지 않았다.


‘요 녀석 또 산만해졌군’

그런 생각이 스쳤고, 나는 조용히 문을 열고 안을 들여다보았다.

아이가 고개를 숙이고 웅크리고 앉아있었다.

혹시 우는 건가? 해서 조심스럽게 아이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 아이는 하얀 양말을 신은 채,

발가락 사이사이에 노란 고무줄을 하나씩 끼우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도 아주 진지한 얼굴로, 엄청 중요한 일처럼 몰입해서.


고무줄은 양말 위로 쫙쫙 늘어났다가

또 탁, 풀어지기를 반복했다.

노란 줄이 발가락 사이를 무늬 놓으니 새로운 신발 같았다.


피아노는 안 치고 발가락에 고무줄 끼우고 있는 모습이

어찌나 웃기던지 큰소리로 한참을 웃었다. (눈물이 나고 있을 정도로...)

한참을 웃다 보니 다른 아이들도 와서 구경하더니 함께 깔깔거리며 한참을 웃었다.


나에게 큰 웃음을 준 그 친구에게 고마워서,

“선생님 이건 꼭 사진으로 남기고 싶어!”

“웃고 싶을 때마다 보고 싶다.”라고 이야기했더니

아이는 자랑스럽게 발을 더 들이밀었고,

나는 그 모습을 사진으로 남겼다.

지금도 그 사진은 웃음이 필요한 날을 위해 고이 남아 있다.


지금도 가끔 꺼내 보면 웃음이 먼저 터진다.

그 순도 높은 장난기, 엉뚱한 창의력,

그날 나의 웃음소리와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무엇보다 그 순간을 마주한 내 하루가 얼마나 귀엽고 사랑스러웠는지.

이런 웃음 버튼들은 꼭 그날만 유효한 게 아니다.

시간이 지나도, 감정의 결이 낮은 날에도,

불쑥 찾아와서 나를 구해주는 비밀 무기처럼 작동한다.


어느 날 전철 안에서 들은 낯선 아이의 대화가

생각보다 너무 철학적이어서 혼자 감동을 받기도 했다.

“엄마, 사람도 배터리 있으면 좋겠다.

충전하면 기분 좋아지는 거.”

그 말이 내게 너무나 기발하고 귀여워서

그날 하루는 충전된 기분으로 보냈다.


이런 장면들은 모두 내 안에 저장되어 있다.

슬플 때 꺼내 보는 웃음 저장소.


사실, 우리는 종종 감정을 '관리'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그것이 항상 거창하고 진지한 방식일 필요는 없다.

어떤 때는, 그냥 웃긴 사진 한 장.

어떤 때는, 친구의 어이없는 표정.

그런 사소한 기억 하나가 우울의 기세를 툭 꺾어준다.


내가 가라앉을 때, 혼란스러울 때,

이런 웃음 버튼은 내 감정의 숨통을 틔워주는 소중한 장치가 된다.


그것은 늘 곁에 있으면서도,

내가 찾지 않으면 조용히 숨어 있는 존재들이다.

그래서 주기적으로 웃음 버튼을 자주 눌러본다.


기억 속에서 꺼내보기도 하고,

사진첩에서 다시 꺼내 웃어보고,

친구들과 만나면 그때 이야기를 다시 해 보면서 함께 웃어보기도 한다.


그렇게 감정을 너무 붙들지 않고,

가볍게 웃으며 흘려보낸다.


웃음은 가볍게 시작되지만,

그 여운은 오래 마음에 머문다.

울음을 애써 꾹 참고 애써 견디는 날보다,

웃음을 떠올리는 순간이

마음을 더 부드럽게, 단단하게 감싸줄 때가 있다.


내 인생의 웃음 버튼은 지금도 대기 중이다.

발가락 사이에 낀 노란 고무줄처럼,

어디선가 나를 또 한 번 구해줄지 모른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그냥, 반찬이 없다고 했을 뿐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