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해의 기록
결코 이겨내지 못한 계절이었다.
내 마음을 만지고자 끄적이던, 그해의 이야기다.
2024.03.19
슬픔과 고통은 더더욱 외로우면 안 된다.
2024.03.20
웃고 떠드는 순간에도 현실을 직시하면 몰려오는 공허함과 참담함으로 인한 괴리감이 지금 나에게는 가장 큰 고통이다.
2024.03.22
내가 좋아하는 작가의 포스팅을 보며 대부분 동의하고, 위안받고, 감탄한다. 오늘의 글 말미에는 “돌이켜보면, 이겨내지 못한 계절은 없었다. 결국 다 이겨냈다.” 그러나 오늘은 이겨내지 못하고 굴복하며 살아야 하는 어떤 상황들에 대해 생각했다. 지금 내가 마주한 현실, 그가 마주한 현실이 진실인지 거짓인지 모르는 지금. 순리를 거스르는 것들의 잔인한 고통에 대해 생각한다.
2024.04.02
웃든, 울든, 짧든, 길든 그에게 매일 전화를 한다. 어제는 형님네 이사를 도와주러 간다고 했었다. 가족들은 그에게 일부러 쉴 틈을 주지 않는다. 전화가 연결되자마자 “형님네 이사하고 밥 먹어. 오늘 괜찮아. 내일 전화할게.” 짜장면을 먹는지 단무지를 씹는 소리가 났다. 전화를 끊고, 괜찮다는 말과 단무지를 씹는 소리가 왜 그렇게 슬픈지, 나는 그 자리에 앉아 울어버렸다. 단무지를 씹는 소리가 그렇게 슬펐다.
2024.04.04
4월 3일, 어제는 복동이의 49재였다. 기독교식 장례를 했던, 종교가 무엇이든 이 아이를 추모하는 것이라면 상관없다. 어차피 하나의 의식이 끝나도 덜 슬프거나, 그 슬픔이 끝나는 것이 아니고, 그저 그렇게라도 기대어야 함을 알고 있다. 종교는 없지만 이번엔 믿고 싶다. 어떠한 심판도 받을 리 없는 이 작은 천사가 그저 원하는 대로 해주시길.
2024.04.17
매일 그의 안부를 묻는다. 오늘은 완벽히 무너져 있었다. 나도 목놓아 울어버렸다. 나쁘게 했던 말, 힘들다고 내뱉던 한마디까지 다 생각난다고, 죄스럽다고 했다. 나는 요즘 그럭저럭 살아가는 내가 죄스럽다. 계속 우리가 천벌을 받은 것만 같다.
2024.04.28
이번 봄의 주말들은 고요했다. 몇 번 나가보긴 했지만 근처 공원 또는 20분 내외의 거리였다. 갈 곳과 만날 사람들이 빼곡했던 지난봄과는 사뭇 달랐다. 큰 이유 중 하나는, 체력이 따라주질 않았다. 금세 피곤해지고, 어쩔 땐 무언가 듣는 것만으로도, 상상만으로도 피로했다. 모든 것이 부질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2024.05.06
아이의 장례는 비현실적이었다. 눈뜨면 지옥이라, 눈을 뜨고 싶지 않았다. 내 딸의 엄마이자 복동이의 엄마는 아닌 내가, 그랬다. 모든 장면은 모든 생각을 마비시키고, 공중에 떠 있는 것처럼 불편했다. 그와 모든 장면을 함께하고 고통을 나누고 싶었지만, 떠올리면 견딜 수 없이 불안했고, 내 고통은 당사자에게 미치지도 못한 채 생각을 끝내 버린다. 유일하게 내가 함께 보지 못한 장면이 있는데, 이렇게 토해내 봐도 달라지는 게 없어 시리다.
2024.05.06
인생에 슬픔이 스며드니, 주변 사람들의 슬픔이 드러난다. 누구는 어렸을 때 동생을 잃었고, 누구는 최근 사별을 했다. 누르고 누르며, 빚어가며 사는 거였다.
2024.08.31
남의 일도 아니고, 내 일도 아니다. 뉴스에서나 주변에서 보고 한순간 동하는 마음도 아니고, 나 자신에게 일어난 일도 아니다. 쓰다 보니 내 가족의 일이니 내 일인 것 같기도 하고, 그래도 그 마음 만 분의 일도 닿을 수 없으니 내 일은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이렇게 두서없고, 혼란스럽고, 비통하다 몇 달째.
2024.09.11
오늘도 그는 울고 있었다. 누굴 만나 정신이 팔려 있거나, 울고 있거나 둘 중 하나다. 곁에 있다면 그냥 아무 말도 안 하고 같이 있어 줄 텐데, 어떤 말을 할까 찾다가 그에게 물었다.
“금동이와 은동이가 없었다면, 생각해 봤어?”
(오늘의 눈물은 첫째도 한몫했기에)
“그럼 나는 없겠지.”
그래. 그 마음으로 살라고 했다.
오늘의 통화는 그렇게 끝났다.
2024.12.31
잔잔했던 일상이 두려움으로 뒤덮인 한 해였다. 인간의 삶이란 이렇게 위태롭고, 때론 잔인한 것이구나 실감했다. 그럼에도 빠르게 돌아가는 세상과, 때때로 웃고 있는 나를 보며 아이러니했다. 지금 우리가 이렇게 슬픈 이유는, 우리가 누군가의 ‘가족’이기 때문이다. 신은 인간에게만 생각할 수 있고, 기억할 수 있는 축복이자 시련을 주셨다. 나는 남은 자가 떠난 자를 보내고 기억해야 하는 방식이 얼마나 가혹한지 알고 있다. 같은 밤을 지새워 보았기에 이제는 남의 일이 아니다. 그들의 가족에게도, 그래도 살아갈 이유가 하나라도 있길 진심으로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