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일, 5시 22분

고요했고, 외로웠고, 서늘했다.

by 수하

3월 1일 새벽 5시 22분 기차였다.

그에게 다시 가기까지 꼬박 보름이 걸렸다.


우리는 온몸으로 이별하고 있었다. 그 보름 동안 나와 아이는 많이 아팠고, 의사의 허락 끝에 간신히 구한 기차표였다. 몸 상태는 여전히 좋지 않았지만, 빨리 다시 와달라던 그의 말이 계속 귓가에 머물렀다. 아이에게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망설이고 있는데, 잠들기 전 아이의 한마디에 내 마음이 다시 깊게 가라앉았다.


“엄마, 빨리 가서 복동이 웃는 모습 보고 싶어.”


평소에는 복동이보다 언니를 더 챙기거나, 그런 표현을 잘하지 않던 아이였다. 이상했지만 이해가 되기도 했다. 엄마의 갑작스러운 부재와 짙은 슬픔은 감추려 해도 감춰졌을 리 없다.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슬픔 한가운데에 아이를 내려놓는 일이 쉽지 않아, 가슴이 뛰었다. 결국 또 밤을 꼬박 새웠다.


그러나 오늘은 꼭 말을 해야 했다.


“세상을 살다 보면 기쁜 일도, 슬픈 일도 있잖아. 넌 언제 가장 슬플 것 같아? 아니, 사람은 언제 가장 슬플 것 같아?”


기차에서 내리기 30분 전이었다. 대답을 마음대로 예상하고 질문을 늘어놓았고, 아이는 내가 예상한 답을 내놓는다.


“그렇게 되었어. 우리 가서 더 많이 슬픈 사람을 위로할까?”


나는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걸까. 고작 초등학교 2학년 아이의 세계는 이 비극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아이는 어쩌면 어렴풋이 짐작한 건지, 눈만 끔벅이다 몇 마디 되묻고는 얼굴 가득 눈물을 쏟았다. 아이의 울음은 소리가 없었지만, 나에게 그 어떤 울음보다 컸다. 아이는 ‘그래서 그랬구나’ 하며 퍼즐을 짜 맞추는 듯하다가 다 소용없는 듯 다시 울어버렸다. 기차 안이라 큰 소리를 내지 않으려 애쓰는 아이, 그 모습에 찢어질 듯 울던 두 조카의 얼굴이 겹쳐 보였다. 나는 아이를 품에 안고 조용히 토닥였다.




그들의 시간은 보름 전에 멈춰 있었다.

고요했고, 외로웠고, 서늘했다.


“복동아, 언니랑 같이 왔어. 늦어서 미안해.

부디 엄마 너무 아프지 않게 도와줘.”


미처 남기지 못한 말을 복동이 곁에 내려놓았다. 잠시 현실을 잊은 듯, 아이들은 그곳에서 뛰어놀았다. 나는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2024년 2월을 끝까지 단단히 붙들고 살자.


3월이 되었고 모든 것은 다시 시작되었다. 나는 다시 웃기도 하고, 화내기도 하고, 미워하기도 했다. 그러다 혼자 있는 시간이 되면 대부분 애도의 시간을 보냈다. 칼로 베인듯한 고통 속에 외로울 그를 떠올렸다. 혼자 있는 시간은 어쩔 수 없이 출근길 또는 퇴근길이라 아침부터 눈물이 가득 차 출근하는 일이 많았고, 퇴근하면서는 모조리 내려놓고 울부짖었다. 주말에는 대개 낮잠을 청했고, 그와는 매일 아침저녁으로 통화하며 이기적으로 안도했다. 밥을 먹다 남편과 함께 울기도 했고, 놀란 아이에게 양해를 구하기도 했다. 아이는 틈틈이 나를 웃게 했고, 함께 울어주었다. 그렇게 나는 내 아이의 존재를 쉴 새 없이 확인했다.


아이는 한동안 복동이 이야기를 자주 꺼냈다.

복동이는 사촌 언니의 꿈에 자주 나와 주었다.


나는 그의 안부를 걱정하며 하루를 시작했다.

가여운 당신은 그저 그 자리에 있어 주시기를.

신의 뜻이 있다면, 부디 그 뜻으로 우리를 감싸 주시기를.


3월이었고, 한 달이 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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