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서 객석에 남아
그토록 잔인하다고만 여겼던 장례 절차가, 어쩌면 최선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흘의 시간을 주고, 정해진 절차에 따라 이제는 그만 보내야 한다고 선을 그어 버린다. 만약 그런 시간이 암묵적으로 정해져 있지 않다면, 열흘이고 일 년이고, 아니 십 년이라도 놓을 수 있을까.
남은 자들은 외로이 또 다른 지옥을 맞는다.
자식을 잃은 사람은 표현할 수 있는 단어조차 없다고 한다. 그는 떠난 자식 때문에 아팠고, 그의 아버지는 그렇게 아파하는 자식을 보며 마음이 갈라졌다. 인생의 순리가 그러했고, 순리를 거스르는 것이 얼마나 가혹한지, 우리는 알게 되었다. 나 역시 한 아이의 엄마였기에, 그 고통에 감정이입되는 건 피할 수 없었다. 내 눈앞에 펼쳐진 장면과 그 고통을 따라가다 보면, 나는 버틸 힘을 잃곤 했다. 내 눈앞에서 내 아이가 한 줌의 재가 되어 사라지는 건, 인간이 겪을 수 있는 가장 큰 고통이라고 여전히 생각한다.
이기적인 마음일 수 있지만, 그럼에도 그가 버텨 주기를 바랐다. 그의 곁에는 함께 상처받은 두 아이가 있었다. 언젠가는 그도 정신을 추슬러, 두 아이의 엄마로 살아내야 했다. ‘죽지 못해 산다’는 말이 이보다 더 적확할 수 있을까. 내게 그 두 아이는 그를 살릴 수 있는 일종의 안전망 같은 존재였고, 덕분에 그를 두고 내 삶으로 잠시 올 수 있었다.
몇 가지를 정리하고, 아이와 다시 오겠다는 말을 남긴 뒤 집으로 돌아왔다. 아이는 먼저 돌아온 아빠와 함께 나를 맞아 주었다.
“엄마, 복동이는 이제 괜찮아? 이제 열 안나?”
“응, 이제 열 안나. 엄마 없이도 잘 있어줘서 고마워.”
정말로 이제 열은 안나. 너무도 차가웠던, 어루만지던 작은 발이 생각나 또다시 무너진다. 조잘대는 아이 목소리에 고개를 들자 멈춰 있는 내 삶이 보였다. 다시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이 새삼 소름처럼 스며왔다. 시간은 멈추지 않고 계속 흐르고 있었다. 우선은 출근해 업무를 정리한 뒤, 휴가를 내고 아이와 함께 다시 갈 생각이었다. 오랜만에 침대에 몸을 눕히자 며칠 전 밤이 떠올랐다. 그날 밤엔 역시나 악몽을 꾸었다. 어디선가 끝없이 헤매는 꿈이었다. 그리고 같은 날, 아이가 잠에서 깨어 처음으로 자기 꿈을 또렷하게 이야기했다.
“엄마, 꿈에 복동이가 나왔어.”
“복동이랑 언니랑 이모랑 우리 집에 놀러 왔어. 언니랑 나는 같이 피아노 학원을 다녀왔고, 돌아와서 다 같이 집에서 밥을 먹었어.”
우리의 의식과 무의식이 뒤섞여 꿈에 나타난 것이리라.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순간 뜨거운 눈물이 볼을 타고 흘렀다. 복동이는 가는 길에 함께하지 못한 언니에게 인사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속으로 나는 혼자 그렇게 풀어냈다. 네 살 터울의 사촌 언니를 무척 따르고 좋아하던 복동이였다. 내 일이 정리되고 아이와 함께 복동이에게 가기 전까지, 아이는 평소와 다르게 복동이 이야기를 자주 했다.
“엄마, 복동이 이제 괜찮은 거 맞지?”
“엄마, 복동이 웃는 모습이 자꾸 생각나.”
어린아이에게 어떻게 이 이야기를 꺼내야 할지 답을 내리지 못한 채, 그 물음 하나하나가 내 심장을 크게 흔들었다. 마음이 무너지는 만큼 몸도 무너졌다. 간신히 버티던 중 나는 코로나에 걸렸고, 아이는 폐렴에 걸렸다. 그에게 얼른 가야 하는데, 서서히 몸이 주저앉고 있었다. 주변의 모든 것이 무너지고 있었다. 어린아이처럼 제발 가지 말라고 말하던 그의 슬픈 눈이 자꾸 떠올랐다.
이번에도 고작 사흘 동안 벌어진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