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이 아닌 걸까
아마 가장 힘든 이야기가 될 것이다.
모두가 잠든 어두운 밤이었다. 이 고요함이 꿈인 듯도 한데, 세상모르고 잠든 아이를 바라보니 이내 현실이다. 나는 울고만 있을 수는 없는 어른이었다. 모두가 내게 전화를 걸어왔고, 나도 이리저리 연락을 하며 그에게 갈 채비를 했다. 여기 내 아이는 어떻게 해야 할까. 내 아이도 겨우 만 여덟 살. 앞으로 함께 마주해야 할 장면들을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적어도 지금은 아니었다. 남편은 아이를 맡기고 뒤따라 오기로 했다.
십 분이 한 시간처럼 느껴지는 밤이었다. 누울 수도, 앉을 수도, 설 수도 없었다. 집 근처 장례식장으로 옮긴다는 연락을 받고 홈페이지에 들어가자, 빈소 명단에 익숙한 이름이 있었다. 꿈이 아닌 걸까. 꿈이길 바라며 눈을 감아보았지만 그대로 새벽이 온다.
“엄마, 왜 이렇게 눈이 부었어?”
“엄마 오늘 이모한테 좀 가야 할 것 같아. 복동이가 많이 아프대. 엄마가 가서 이모를 도와줘야 할 것 같아.”
“그럼 내일 콩쿠르에 엄마 못 오는 거야?”
“응, 엄마 없이도 잘할 수 있지? 끝나고 OO 집에 가서 하고 싶었던 파자마파티해.”
살아가면서 보통과 조금 다른 순간이 있다. 이상하리만큼 거부 반응이 없던 아이는 그즈음부터 분위기를 감지하고 있었던 걸까. 처음 보는 엄마의 어둡고 무표정한 얼굴 앞에서 딱히 대답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유난히 춥던 그날 아침, 아이를 서둘러 학교에 보냈다.
“엄마, 며칠 밤만 자고 올게.”
장례식장 건물로 들어서자 급히 오려낸 듯한, 어울리지 않는 사진 하나가 보였다. 온몸에 힘이 풀려 입구에서 주저앉았다. 이 계단을 내려가 이 가혹한 현실을 어떻게 마주해야 할까. 남은 이들의 가여운 얼굴을 마주할 자신이 없었다.
국화꽃 한 송이를 바치며 영정 사진을 바라본다. 내 아이가 입었던 옷을 입고 환하게 웃고 있었다. 순간 짧은 생각이 스쳐 심장이 내려앉았다.
‘우리 복동이, 이모가 새 옷을 사줬던가.’
지옥 같은 나흘이었다. 모두가 한마음으로 지옥을 보내고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흘 내내 와서 나흘 내내 울었다. 그는 현실을 부정하면서도 조문객을 맞아야 했다. 답이 없는 물음에, 답이 없는 답을 반복했다. 그러다 지쳐 잠깐 눈을 붙였다가도 눈뜨면 다시 지옥이었다. 큰 조카는 컵라면을 끓여 계속 사진 앞에 가져다 놓았다. 며칠 전 복동이가 “라면 한 입만”이라고 하자 저리 가라고 했었다고 한다. 작은 조카는 계속 편지를 써서 가져다 놓았다. 어쩌면 엄마보다 더 살갑게 지낸 어린 자매였다. 이 아이들의 깊은 상처를 어떻게 위로할 수 있을까.
그때 처음, 장례의 절차가 잔인하다고 느꼈다. 복동이와 함께 보내 줄 옷가지와 인형을 챙기기 위해 그의 집에 들렀다. 불과 하루 전 숨 쉬던 그들의 온기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 두 다리로 간신히 버티며 물건을 챙기는 그에게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러다 눈에 띈 스케치북 하나가 간신히 버티고 있던 나를 주저앉게 했다. 삐뚤빼뚤한 글씨로 내 아이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글자 쓰기에 재미를 붙인 복동이는 좋아하는 사람의 이름을 하나씩 적어 내려가고 있었는데, 그중 내 아이의 이름도 있었다. 아직도 꿈이 아닌 걸까.
입관식은 처음이었다. 너무 작은 아이의 입관식, 내 언니의 아이, 내 조카였다. 이 장면을 앞으로 내가 감당할 수 있을까 싶었지만, 그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함께해야만 했다. 작고 차가운 아이는 떠나기 전 사투를 벌였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우리는 돌아가며 인사를 했다. 인사는 끝나지 않았고, 장례지도사마저 눈물을 훔쳤다. 수많은 죽음을 맞이한 그도 이 죽음을 애통해했으리라.
발인 전, 유치원 선생님에게서 연락이 왔다. 휴일이지만 아침 일찍 문을 열어둘 테니 다녀가라고 울먹이며 말씀하셨다. 어울리지 않는 슬픈 모습의 차가 유치원 앞에 멈춰 섰고, 그를 부축하며 함께 들어갔다. 복동이 영정 사진을 들고 마지막으로 교실과 식탁, 좋아하던 새장 앞에도 가보았다. 방학이 끝나기를 기다리는 주인 잃은 칫솔에 이름이 씌어 있었다. 지금이라도, 정말 꿈이 아닌 걸까.
그다음부터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가루가 되어 흩어지는 그의 마음 앞에서 내 마음이 조각조각 찢어졌다. 얼마나 울었는지, 얼마나 아팠는지, 어떻게 그렇게 한 줌의 아이를 보낼 수 있었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이것은 과연 부모가, 한 인간이 감당할 수 있는 크기의 고통일까. 이런 고통을 안고도 인간이 살아갈 수 있는 걸까. 신이 있기는 한 걸까.
자식을 잃은 그와 장례를 치르며,
그때 나는 그가 죽는다고 해도 할 말이 없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